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책을 좋아합니다. 소설 에세이 산문... 그 중에서도 만화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만화를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가 싶네요. 사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매달 나오는 은혜로운 신간도 여럿.
외에도 독립출판 서적도 모으니 이 많은 책이 다 어디에 꼽히나 저도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기본 판형의 책과 길쭉한 판형의 책.
애장판과 완전판과 특별판 그리고 한정판.
단권인 책과 권수가 많은 책.
완결난 책과 연재 중인 책.
아직 읽지 못한 책과 여러 번 다시 읽은 책.
방에 책장이 2개 있습니다. 이렇게 살 수 없단 생각이 들 때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모두 꺼내 다시 정리합니다. 기본 판형은 눕혀서 최대한 많이 쌓고 길쭉한 판형은 앞으로 꽂아 줍니다. 책장에서 약간 튀어나오는 그 순간 어쩐지 기묘하게 뿌듯합니다.
가로 세로 가로 세로 가로 세로
반복 작업의 연속
틈새에 한 권이라도 더 넣는 순간의 희열이란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얼마 전 또 책장 정리를 하다가 문뜩 한정된 책장에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책이 다치지 않게 딱 맞춰 정리하는 이 작업이 테트리스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줄이 완성되면 뿅 하고 사라지는 테트리스. 그러나 내 방의 책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쌓여요. 완벽한 테트리스를 위해 꺼냈다가 다시 빼고 그러고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
이 책이 여기 있었네
이것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
그리운 어린 시절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듯 질서 없이 마구 늘어져 있는 책더미 속에서 잠시 휴식처럼 읽는 독서의 맛이란. 어지러운 삶 속에서 느끼는 기묘한 평온함의 한순간 같습니다.
나만의 공간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 채웠다는 뿌듯함과 감당되지 않는 책들 사이로 비죽 튀어나오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 이 작가님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감사함과 묘한 희열감. 작품에 대한 잠시간의 질투와 그럼에도 나는 계속 이 일을 하겠지 생각하는 당연함. 영감을 주고받는다는 뜻을 들여다보곤 음식 없이 만끽하는 충만함.
오늘도 책장 가득 꽂힌 책들을 보며 테트리스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