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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전적 개량은 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마이클 샌델의 ≪완벽에 대한 반론≫ 리뷰


I. ≪완벽에 대한 반론≫ 핵심 요약


   생명공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간 복제는 물론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한 인간 능력의 향상이 가능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비치료적 목적의 인간 유전자 조작에 대해 윤리적인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런 감정을 이성적인 논거를 통해 뒷받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에 마이클 샌델 교수는 유전적 강화에 대한 윤리적 불편함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이 과연 타당한지를 살펴보는 것을 저서의 핵심 과제로 삼는다. 


   유전자 조작 허용 여부에 대한 정치적 공론에서 자주 동원되는 논거들은 대부분 자유주의 사상을 토대로 한다. 먼저 자율권 논거는 인간 복제 및 유전자 조작이 아이의 '열린 미래에 대한 자유', 즉 스스로 인생의 방향성을 선택할 자유를 침해한다고 본다. 부모가 아이의 유전적 구성을 설계함으로써 인생의 방향성을 미리 정해버리는 것은 자율권 침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 복제에 대한 논의에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지만(가령 생태 윤리학자 한스 요나스는 복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찾아나갈 권리를 박탈당할 수 있음을 '무지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을 통해 설득력 있게 주장한 바 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능력 개선욕구 자체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인간은 본래 자기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자유가 애초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또 성인이 되어 스스로가 유전적 강화를 선택하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정성 논거는 유전적 강화 기술에 대한 접근 기회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을 때 인간 사회가 두 개의 계급, 즉 기술의 혜택을 받은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양분될 위험성을 지적한다. 유전자 조작 기술에 힘입어 초인적 능력을 얻은 특권층의 탄생은 인간의 평등존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또한 유전적 강화 자체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따라서 기회의 불평등한 분배는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사회적 문제일 뿐 유전자 조작 자체를 금지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실제로 일부 정치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자유주의 우생학' 모델은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자율권 논거와 공정성 논거를 상당히 무력화시킨다. 나치정권의 만행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우생학과 달리, 새롭게 정립된 '자유주의 우생학' 모델은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개입을 배제하고 유전적 강화를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다. 법률과 제도를 통해 유전적 강화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기본권으로 확립하고, 강화 기술이 주는 이로움과 부담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한다. 또 뛰어난 지능이 삶의 모든 분야에서 도움이 되는 것처럼, 강화된 능력이 다목적 수단일 때 태아의 '열린 미래에 대한 자유'가 침해될 우려도 없다.


   결국 생명공학 기술을 통한 유전적 강화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사상에서 통용되는 개념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도덕적 술어들이 필요하다. 샌델 교수는 그의 사상적 기반인 공동체주의 철학에서 그 술어들을 발견한다. 즉 그는 유전적 강화의 문제를 '무엇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인가?'라는 가치론적 물음과 결부시켜 이해한다.


유전적 강화의 윤리라는 문제와 씨름하려면, 현대 사회에서 거의 간과되고 있는 문제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바로 자연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문제, 주어진 이 세계에서 인류가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이런 문제는 거의 신학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에 현대의 철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새로운 힘을 갖게 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다. (샌델, p.24)


   그렇다면 샌델 교수가 제시하는 '인간이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는 무엇일까? 바로 누군가의 삶을 '주어진 선물로 인정하는 태도'이다. 삶을 주어진 선물로 인정하는 것은 두 가지 마음의 습관을 함축한다. 첫 번째는 특정 존재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존재의 성장을 바라는 것이다. 이때 특정 존재는 타인이 될 수 도 있고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두 가지 층위는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윤리적 주체는 존재의 타고난 모습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성장을 위해 '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과 끊임없이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자유의 모습이기도 하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능력 강화라는 우생학의 요구는 '지배하고 틀에 맞춰 내려는 태도''선물에 대한 감사의 태도'를 완전히 억누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왜 도덕적 문제를 발생시키는가? '맞춤 아기'를 설계하려는 부모는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양육의 본질을 망각하기 쉽다. 또한 유전자 조작으로 훈련 없이 근육을 강화하려는 운동선수는 "자연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하는" 스포츠의 본질을 실현하기 어렵다. 이를 보다 일반화하면, 우생학적 욕구로 인해 인간은 겸손, 책임, 연대의 측면에서 부정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스스로의 통제 하에 놓이는 삶의 영역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성취에 대해 겸손함을 느끼기 어렵게 되고, 과도하게 증폭된 선택의 책임으로 인해 고통받게 되며, 자신의 운명에 우연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보다 불운한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상실한다. 샌델 교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동체는 결코 살만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II. ≪완벽에 대한 반론≫의 의의와 한계


   ≪완벽에 대한 반론≫은 유전 공학 기술이 야기하는 윤리적 문제들을 온전히 다루기 위해 '인간성의 본질'이나 '주어진 세계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와 같은 형이상학적 물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자유주의 우생학'에 대한 윤리적 고찰에 있어 자유와 권리, 공정성과 같은 보다 일반적인 논의의 틀과 구별되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저자가 '자유주의 우생학'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유전적 강화가 현대 주류 정치 담론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 있음을 균형감 있게 설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논의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유전적 강화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과제의 어려움을 직시하게 만든다.


   저자가 바람직한 인간 실존의 양식으로 제시한 '삶을 주어진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 논의의 신학적, 형이상학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좋은 것은 좋기 때문에 좋다' 형식의 반증 불가능한 주장은 보편적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지만, 저자의 통찰은 타인과 인격적인 사랑을 나누어 보았거나 스스로의 자연적 소질을 계발하려고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지만 그 모든 인생들을 관통하는 '좋은 삶'의 본질은 몇 가지로 추려질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오히려 형이상학적 논의를 배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비극이고, ≪완벽에 대한 반론≫은 그 물음을 일깨우는 훌륭한 각성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완벽에 대한 반론≫이 형이상학적 담론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반증 가능성을 중시하는 사회학자나 법학자들의 정책 및 제도 연구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법률은 도덕적, 종교적으로 중립적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샌델 교수의 주장이 자유주의 우생학의 다양한 시도들을 금지하는 입법의 근거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법률이 특정 종교적, 도덕철학적 관점을 표방하면서 이를 모든 개인의 삶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법률은 오히려 ‘근본적인 가치를 형성할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김현철, p.141 참조). 즉, 다른 사람의 사유를 방해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해악에 대해서 법이 간섭할 수는 있지만 개인의 자율적인 가치 형성 과정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삶을 주어진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호하자는 숭고한 목적이 실제 입법의 목적으로 작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비치료적 목적의 유전적 강화'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를 원한다면 다른 입법의 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우생학의 유혹 앞에 위태롭게 방황하고 있는 모든 윤리적 주체들에게 ≪완벽에 대한 반론≫은 삶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을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며, 그것만으로도 본 서적은 이미 존재 이유를 달성했다고 판단된다.



관련 글: '개량되는' 것과 '성장하는' 것의 차이 (brunch.co.kr)



<참고문헌>

김현철, <이른바 ‘존엄사’ 법안의 분석과 평가-생명윤리법적 관점에서>, <<입법학연구>> 6, 2009, pp. 141-163.

샌델, 마이클, ≪완벽에 대한 반론≫, 이수경 역, 서울: 와이즈베리, 2016. [Sandel, Michael, The Case against Perfec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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