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내리면, 그대를 먼저 떠올립니다

해외 직장생활, 다큐 말고 시트콤 · 크리스마스 특집

by 박주영

어제 하루 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도시의 소음이 푹신한 이불로 덮이듯 잦아들고,

캠퍼스 길목마다 발자국이 천천히 새겨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혼자 걸었습니다.

사각—사각—눈 밟는 소리가 마음의 속도를 낮췄습니다.


호수는 흰 가장자리를 두르고, 가지마다 얇은 설탕 옷이 입혀졌습니다.
그 풍경 앞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의 겨울, 모교의 눈 쌓인 돌담, 설악의 능선…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 정을 나누어 온 동료의 얼굴.


오랜만에 설경 사진을 첨부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캠퍼스가 이렇게 하얗습니다. 당신 생각이 나네요.”
답장은 곧장 왔습니다.
“박 교수님, 혹시 저 보고 싶었어요?”
“당연하죠.”
잠시 뜸을 두더니 기쁜 소식.
“임신했어요. 입덧이 심해 숨어 지냈어요.”
“축하해요! 몸 먼저 챙기고, 편해지면 우리 밥 먹어요.”

눈2.jpg 2025년 캠퍼스 설경 1

눈은 가끔, 소식을 데려옵니다.
멀어진 마음을 다시 이어 붙이고,

서로의 계절을 조심스레 확인하게 해 줍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저는 늘 대한민국을 떠올립니다.

연세대 캠퍼스의 긴 그림자,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포석 위의 눈,

집에 들어서면 퍼지던 국물 냄새.
먼 곳에서 일하고 살아도,

마음은 그 나라의 겨울에 늘 머무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설경을 브런치에 적어 독자님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은, 함께 볼 때 비로소 완성되니까요.


눈3.jpg 2025년 캠퍼스 설경 2

올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 저는 작은 확인을 끝냈습니다.
다듬어 제출한 보고서, 여러 번 고쳐 쓴 문장, 조금 더 단단해진 생활의 리듬.
크게 떠들지 않아도 되는 성취들이 조용한 온기가 되어 책상 위에 남았습니다.


독자님께 드리는 작은 카드

오늘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짧은 안부 한 줄을 보내 보세요.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 있다면, 함께 볼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마음이 추울 때는, 기억의 국물을 데워 드세요. 그릇은 우리 각자의 하루면 충분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평안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하얀 길 위에서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계절을 걷고 있습니다.

눈1.jpg 2025년 캠퍼스 설경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