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view

열대왕사 :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Are you lonesome tonight?

by 별의별
xEQ-xLN5IvWVuFcA_GG2oedeBIc.jpg 영화 <열대왕사> 포스터 ⓒ 싸이더스


※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전개와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热带往事 열대왕사

내 멋대로 풀이하자면, 어느 한여름의 옛 기억 정도랄까.

요즘처럼 습하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땡볕 아래 문득 떠오를 법한 영화다

1997년 중국을 배경으로 생생한 로컬 감성,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 빈티지한 초록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감각적이다.


영화 <열대왕사> 스틸컷 ⓒ 싸이더스


에어컨 수리를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왕쉐밍은 무더위처럼 짓누르는 현실을 묵묵히 견딘다.

말수가 적고 감정표현도 서툰 그는 여자친구와의 관계 역시 어딘가 늘 붕 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던 도중 한 중년 남성을 상대로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망가게 된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옥죄이던 그는 죽은 사람의 부인-후이팡에게 접근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종종 곁에 머물고, 빚쟁이가 찾아오면 싸워서 쫓아내기도 한다.

교통사고는 어쩌면 그동안 소외된 인생을 살았던 그에게 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해 준 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사고 하나쯤 내지 않으면 타인과 정서적으로 연결될 기회조차 드문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피의자인 탕웨이가 경찰인 박해일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당신과) 얼굴 보고 말이라도 하려면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영화 <열대왕사> 스틸컷 ⓒ 싸이더스


후이팡 역시 오래전 자식의 죽음, 남편과의 불화,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으며 삶에 지쳐있는 중년여성이다. 그녀는 자식 같은 왕쉐밍에게 조금씩 마음을 기댄다.

사실 후이팡의 남편은 불법적인 거래에 연루된 사람이었다. 사고 당일, 왕쉐밍이 그를 차로 치기 전 그는 불법 자금 문제로 벌어진 다툼 끝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사건에 얽힌 인물과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던 왕쉐밍은, 결국 진범을 죽이고 자신은 감옥을 가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 - 출소하는 시점에서 그는 말한다.

"어쩌다가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사람들이 종종 묻는데, 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억이 뒤섞이게 된다. (일종의) 망각의 과정이다."

기억이 뒤섞인다는 그의 말처럼 영화는 여러 시점을 자주 오간다.

그리고 어쩌면 망각의 과정-이라는 그의 말처럼, 후이팡과의 관계 역시 그의 회상 속에서 마치 특별한 감정이나 구원처럼 조금 미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건은 사실이지만 감정의 기억은 좀처럼 신뢰할 수 없으니까.


출소 후, 교도소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후이팡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후이팡의 남편이 죽은 날 밤, 카페에서 남편이 장님에게 신청했던 노래는 평소 후이팡이 좋아하던 'Are you lonesome tonight'이었다. 이 영화의 부제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내심 서스펜스나 느와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노래 제목에 답이 있다.

한여름의 낮과 밤, 감정이 고갈된 사람들의 회상과 애매모호한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열대왕사> 스틸컷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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