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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아이 Mar 27. 2024

아버지와의 여행

나와 아버지 누구의 바람이었을까

아버지와 둘이서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엉뚱하게도 그곳은 '러시아'였다. 상상도 해보지 않았건만 어째서 그랬을까, 꿈이니까 그랬겠지.

우연히 거실에 놓여 있는 신문 꾸러미 사이에서 푸틴의 재선과 러시아를 다룬 헤드라인 기사를 보고는 ‘아... 이것 때문에 그랬구나’하고 생각했다.


사실 '여행'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짧은 장면이었다. 꿈은 언제나 그렇듯 모든 걸 기억에 남겨주지 않기 때문에 흩어진 조각들을 맞춰보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정신이 들고는 그 여운을 하루종일 잊지 못했다. '왜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내 마음 한편에 아버지와 여행을 하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는지 물어보게 된다.


꿈은 이랬다.


장면 1.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해외 출장 중인 것 같았다.

여러 말이 오고 갔는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너를 만나러 가야겠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비행기도 오랜 시간 타야 하고 혼자서는 힘들어서 어려울 텐데요"라고 내가 말씀을 드렸더니, 아내와 어머니께서 "잘하실 수 있을 거야"라며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장면 2.

아버지는 혼자서 북적거리는 공항에 계셨다. 오고 가는 인파 속에서 목적지 비행기 시간을 찾아보려는 듯 멀리 전광판을 응시하고 계셨다. 한 손에는 작은 가방과 다름 한 손에는 비행기표가 쥐어져 있었다. 이내 탑승구를 향하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장면 3.

전지적 시점으로 성층권에서 비행기 하나를 발견했다. 그 비행기는 해가지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몽글몽글 붉은빛을 머금은 구름 위를 올라타있는 듯 보였다. 비행기가 가까워지면서 창가를 통해 나의 시선이 기내 안으로 들어갔고, 창가에 앉아계신 아버지를 발견하였다.


장면 4.

아버지를 모시러 공항에 갔다. 아버지는 이미 출구 밖으로 나와 계셨는데, 검은색 재킷을 입고 가죽장갑을 낀 채 서있는 모습이 중년의 첩보 요원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아버지는 나를 보시더니 손을 들어 맞은편을 가리키며 "저기서 기차를 타면 되겠군"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손이 닿는 곳을 바라보니 르네상스 양식의 고전적인 건물들 위로 ‘러시아’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걸려있는 기차역이 보였다. 아버지가 길을 건너자 검은 비둘기들이 후드득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거리는 마치 전승기념탑의 회전 교차로 어디쯤인 것처럼 같았다.


장면 5.

아버지와 기차에 타고는 어디론가 이동 중이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는데 아버지는 꽤 유창하게 검표하는 직원을 상대했고, 주변 사람들과도 웃으며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면서 옆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금방이지!".



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는 지금 보다는 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왠지 내가 아는 아버지가 사실은 고독한 ‘킬러’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가락시장을 오가며 채소 도매장사를 하셨던 것 같다.


지난 베를린에서의 추억들이 포개져 나온 것 같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경험들을 해보고 싶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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