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년의 세월이 내 눈을 베고 있다.
짧은 글 시리즈
요즘 집을 보러 다닌다.
아이들이 커가는데 방 하나씩을 안 줄 수도 없어서 무리를 할 작정으로.
나는 우리 동네에 10년째 살고 있다.
한참 동안 재개발이 안돼서 폐가가 많은 동네였기 때문에 깔끔한 빌라에 사는게 괜찮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재개발이 시작되자 순식간에 1만 세대 입주 계획이 서고 정신없이 청약붐이 일어났다.
청약에는 다 떨어지고.
졸지에 모두가 벼락부자가 된 몇 년 전 그 시기,
나는 그렇게 벼락거지가 됐다.
폐가촌에 있던 애들 학교가 이제는 아파트촌에 있게 됐다.
우리 아이들은 이 빌라촌에서 저 아파트촌까지 걸어서 20분을 가야 한다.
엄마, 친구가 나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물어봐서 동은 없고 그냥 000호에 산다고 했어, 근데 걔가 신기하대, 어떻게 동이 없을 수 있냐고~ 웃기지?
아.. 하나도 안 웃기다.
한참 코로나 시기여서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갈 때는 매일 집에서 줌 수업을 했다.
반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자기 방이나 거실이 뒷배경이었다.
우리 애들은 마땅한 배경이 없어 급하게 작은 방 벽을 정리해 줬다.
행여나 폰을 들고 거실로 나와 우리 집안을 보여줄까 봐 절대 수업하는 동안 나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기도 했다.
참고로, 우리 집은 10년 넘게 도배를 안 해 벽지가 많이 누렇다.
빌라 전체에 압류가 걸려 이사도 못 가고, 건물주는 여러 사업을 말아먹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니 도배를 부탁할 곳이 없다. 보증금도 떼이게 생겼는데 내 돈으로 도배하려니 그것도 속이 쓰렸다.
그래, 이사 가면 되지.
A아파트 가고 싶었는데, 전세금이 없어졌으니 다른 아파트를 선택하다 보면 울화통이 터졌다.
그렇게 미루고 미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이 띵했다.
언제까지 이 집에서 살 거야! 움직여!
진짜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쳐댔다.
바로 퇴근길에 부동산에 갔고, 여러 집들을 봤다.
최종후보 1곳.
여러 부동산이 매매체결을 위해 눈독 들이고 있다는 그 집.
하지만 우리 형편에는 돈이 좀 모자란다.
그런데 욕심이 났다.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살다 보니 이렇게 욕심이 날 때도 다 있다 싶었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예쁜 편지지를 다운로드하여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너무 신파 같아 지우고, 너무 구체적이라 지우고, 너무 암울해서 지우고..
그렇게 단어 하나 고르고 골라서 정말 온 마음을 토해냈다.
안 슬픈데 눈물이 났다.
눈물은 압류 걸렸을 때 다 흘린 것 같은데, 다시 샘솟았다.
그 10년의 세월이 내 눈을 베고 있다.
그렇게 쓴 편지를 부동산 소장님에게 보냈다.
그 집주인에게 꼭 좀 전달해 주십사..
내 고민을 이제 그 사람에게 던졌으니, 결과를 기다리면 되는 거다.
안되더라도, 나는 집주인에게 편지를 쓰는 별난 짓까지 해봤으니 후회는 없을거다.
기다리고 기다려 오후 5시.
소장님 전화가 왔다.
사모님,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