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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누나 Jan 22. 2024

미국 직장 내 괴롭힘, 난 거절한다

백인 '연진이'들끼리 왕따와 방관, 나는 가담하지 않을겨

미국 직장을 다니다 보면, 이직은 연봉을 높이고 싶으면 필수 불가결이다. 이직을 하지 않고 한 직장에서 5년 이상 다니며 승진도 2-3년마다 한 번씩 하지 못한다면 자기 커리어에서 도태되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한 회에서 2-3년마다 승진이 되는 케이스라면 매우 이상적이겠지만, 어느 정도 승진되고 올라가다 보면 한계치에 달한다. 회사에서도 자리가 열려야 승진을 시켜줄 수 있고, 승진할 때마다 최소 10-30%의 연봉을 상승시켜줘야 하니 적당히 승진시켜주지 않고 잘 달래 가며 직원을 데리고 있는 게 가장 경제적이다. 


그래서 신입, 대리, 과장, 부장까진 어느 정도 올라가더라도 그 이상 팀장(디렉터), 부사장, 이사로 올라가는 자리는 잘 생기지도 않고 직원들 간의 분란도 없앤다는 명목하에 아예 외부에서 데려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끔 한국 회사들에 대한 불만이나 나쁜 문화를 이야기하며 미국 회사가 부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한국 회사와 미국 회사 둘 다 일해본 나로선 두 나라 모두 중견기업 이상, 대기업 문화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어느 곳도 유토피아는 없다. 또한 야근을 하는 '티'를 안 낸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야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저녁 10-12시에 메일을 보내는 상사들도 가득하다. 그러면서 미국 회사에서는 이것을 '헌신(dedication)'이라고 칭송해 주며 칭찬해 주는 아주 블랙 기업스러운 문화를 가진 곳도 많다.


멘털이 흔들흔들

이렇듯 미국 회사에도 그들만의 회식자리, 문화, 파벌, 정치란 엄청나다. 한국처럼 눈에 띄게 보이지 않을 뿐, 주말에 같이 골프도 치러 다니고 서로 '그사세'를 만들며 이끌어주고 당겨준다. 외국인이거나 직급이 아주 낮아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직원들끼리나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까, 야망이 있고 승진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파벌 형성도 잘 되어있다. 


한국 못지않게 미국에서도 인맥, 동문, 동향 외 많은 것들이 이런 대기업의 사다리(corporate ladder)를 올라가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나도 직급이 낮을 땐 모르고 있다가, 여러 미국회사를 구르며 회사 내에선 친구인 줄도 몰랐던 사람들이 서로 개인 SNS와 사생활을 공유할 정도로 친하고, 몇몇 팀원들이 그들만의 동호회와 회식을 즐기며 내가 그들 눈에 들어 초대받아 갔을 때 그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끈끈함이나 전혀 다른 성격을 보았을 때 충격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이 모두 미국에서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는 브랜드와 대기업 내의 일이다. 그리고 윗선들은 이걸 눈감고 넘어가고, 개인의 선택이라고 넘기며, 불공평하고 부도덕한 일도 넘어가곤 한다. 한국의 대기업 횡포나 여기나 별반차이가 없는 걸 알았을 때, 역시 사회란 이런 거군 느낄 때도 많았다.


지금은 나도 많이 닳고 닳았으며, 이런 거에 여네도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내 할 일이나 잘하고 남한테 피해나 주지 말자라는 마인드로 살아간다. 그런데 1년 반쯤 전, 내게 큰 사건이 일어난다. 1년 반쯤 전, 연봉 30% 가까이 상승시켜 이직에 성공했다. 시카고에서는 멀리 있는 피츠버그의 대기업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들으시면 다 알만한 곳이고, 타주 이사 비용 역시 굉장히 넉넉했다. 1년 내 퇴사 시 전액을 돌려줘야 했지만, 어느 회사든 입사 후 1년은 적응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퍼를 수락했다. 나의 성장에도 도움 되는 일이었고, 다니던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없기에 과감히 퇴사했다.


스트레스엔 방귀 


긴 이야기를 짧게 간추리자면, 새로 이직한 회사 내 디렉터와 과장이 내가 이직하는 팀의 사원을 6개월 이상 괴롭히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직장 내 험담, 은근한 따돌림 등은 여러 회사에서 봐왔으며 종종 그 따돌림을 당하는 직원이 성격이 이상하다던지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었던 적도 많아서 가끔은 '따돌림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먼'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첫날부터 처음 한 달, 그 따돌림을 주도하던 과장과 디렉터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며 내가 목격하는 장면과 사원의 행동을 관찰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내 새로운 업무도 익숙해지려는 노력과 이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온몸의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두 달째부터는 확신이 섰다. 특히 과장이 주도하는 따돌림이었으며, 과장의 굉장히 부적절한 언사와 언행은 교묘했다. 대놓고 욕을 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 몰래 CCTV가 없는 구역으로 나가 나에게 내 아랫직원을 차갑게 대하고 업무 외 지시도 강하게 하며 그 직원의 태도를 고쳐놓을 것을 요구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엔 나의 승진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 협박했다. 게다가 디렉터는 이 과장과 개인적으로도 단짝이며 둘은 한쌍의 바퀴벌레 같은 사이었다. 


이직한 회사에 전 회사 동료의 친구가 일을 하고 있었고, 내가 친하게 지내던 과거 회사의 과장님 전 팀의 디자이너가 나와 함께 일하게 되어 나는 금세 그들만의 인간관계나 정치질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여기도 마찬가지로 서로서로 파벌이 나눠져 있었다. 그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나에게 협박하는 과장과 디렉터가 굉장한 마이크로 매니저에 팀원들에게 공포스러운 존재로 다들 머리를 숙이며 못 본 체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물론, 이해는 갔다. 미국 회사 내에서 같은 직종과 직급 중에서 연봉이 탑 급이었고, 베네핏이나 보너스도 대기업 중에서도 빵빵한 편에 속했다. 그리고 이 지역 내에서 유일한 의류 산업체로 관련 업계 사람들 중 고향이 이곳이면 여기 말곤 프리랜서를 뛰거나 아님 다른 회사는 전무후무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가 있고, 가족이 있고, 직업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 회사에서 아무리 불공평하고 부도덕한 일이 있어도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고, 나도 이 팀이 아니라 다른 팀에 배치되었다면 눈감고 넘어갔으리라.


내 아랫 직원은 나와 비슷한 연배로 따돌림을 당하며 전혀 승진이나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친구였는데, 업무 능력은 출중했다. 굉장히 꼼꼼하고 분석적이며 미국인치고 아주 조용하고 잡담하지 않으며 맞은 일을 확실하게 끝내는 걸 좋아하는 친구였다. 또한, 미국인들 기준에서 내성적이라 보일 정도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말수가 없는 직원이라 다른 팀 직원들과도 크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만 가혹할 정도로 분 당 업무 보고, 다른 팀원들 앞에서 유독 그 직원만 콕 집어 발표시키기, 인사고과 평가 때 1:1 평가인데 그 직원만 다른 매니저 등을 대동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인신공격적인 부분을 '성장'을 위해서랍시고 코멘트를 한다던지..


하지만 과장의 괴롭힘 동조 압박과 밑에 직원이 한 번은 점심시간에 울면서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대단한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나 자신도 너무 힘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기 위해 과장과 디렉터가 요구하는 부도덕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이때부턴 기억이 흐릿하나, 변호사 선임을 위해 각종 증거 수집을 위해 수기로 작성한 타임라인과 하루하루의 일과만이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증명해 준다. 3개월 차에 들어섰을 땐 노동 변호사가 증거를 수집하고 준비하라는 내용을 토대로 차근차근 수집했다. 인사과는 회사 편이라, 내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준비할 수 있게끔 조언해 주었다.


스트레스엔 쉬는 게 최고야


변호사를 선임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평생 처음 겪는 형태의 회사 스트레스였기에 전 회사에 다니던 친한 동료에게 나의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 그러자 그 미국 동료가, "어? 이거 내가 친하기 지내던 동료의 이야기랑 똑같은데... 내가 한번 물어봐도 될까?" 하더니 다음날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그 동료의 친구가 겪은 일이 내가 지금 다닌 회사에 과장, 디렉터와 겪은 동일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친구와 통화해 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장장 2시간의 통화를 이어갔다. 


듣고 보니, 내 동료의 친구분은 이 회사에서 약 7년 전에 근무했으며, 당시 과장과 디렉터 역시 같은 팀에서 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괴롭혔으며, 수차례 직장 내 괴롭힘과 부적절한 언사로 인해 이 분은 직접 본인이 발 벗고 나서서 왕따/괴롭힘 피해자로 조사 요청을 하자 회사에선 여러 번 무시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결국 문제를 시인하고 소정의 보상과 이 일에 대해 함구하는 법적 서류 사인을 종용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함구 계약은 4년이었으니 말할 수 있다며 본인의 힘들었던 괴롭힘과 법적 대응을 공유해 주셨다. 듣다 보니, 내 밑에 직원이 당하는 방식과 똑같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세상이 좁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쓰레기 같은 직장 내 왕따/괴롭힘 주동자들이 아직도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점에 놀랐다.


나는 이 분의 이야기와 조언을 토대로, 노동 변호사와 계속해서 준비하며 회사에 따돌림을 당하던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더 이상 네가 왕따나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기도 어렵고, 그거에 참여하지 않음 내게 인사고과 불이익이 온대서 난 이 회사에 다니기 싫다고.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직원은 그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나도 이제 같이 싸울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 친구에게 나는 내 노동 변호사가 조언했던 이야기를 전달하며, 우리의 타임라인을 맞춰보자고 했으며 내가 인사과에 언제 갈지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고 나는 계획대로 인사과 고발, 인사과에서는 당연히 발뺌을 했고 과거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는 언질과 그 어떤 사인도 하지 않고 내 안전을 위해서 퇴사하겠다고 '통보'한 채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던 그 시절 그림도 웃기네 


회사 이사 비용을 돌려내라고 할까 봐 매우 걱정이 되었지만, 차라리 이사 비용 2천만 원을 토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회사는 못 다니겠고 이유도 없이 누굴 괴롭히는 건 더 못하겠다는 마인드로 그냥 회사 기물을 본사 1층 안내 데스크에 전해주고 바로 도망치듯 시카고로 돌아왔다. 다행히 3개월 짧은 기간 동안 있었던 일이라, 시카고 아파트도 그대로였고 전 회사에도 내 자리가 여전히 공석이기에 바로 전 매니저에게 연락해 내 원래 일자리로 리턴할 수 있었다. 


노동 변호사는 이 회사에서 이사 비용을 청구하려면 편지로 청구서가 올 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며 마무리가 되었고, 괴롭힘을 당하던 직원은 본인도 같은 형태로 케이스를 열었으며 내가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을 받고 퇴사할 거라며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나는 시카고에 돌아왔다.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고 지금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으며, 심지어 해당 기업에서 텍스 파일링을 잘못해서 내 마지막 월급 2주 치를 지불하지 않아 오히려 돈을 보내왔다. 그 회사와 연락하는 것도 싫어, 그 돈은 받지 않고 내내 무시하고 있지만 이제 2년이 다 되어간다. 4년이 지나면 그 어떤 청구도 할 수 없는 미국 계약서 법대로, 조용히 기다려 볼 예정이다.


이 최악의 기업을 퇴사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 말로는 내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괴롭힘을 당하던 내 밑의 사원도 퇴사했고, 동시에 3명 정도가 퇴사해 다른 팀에서 말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지나지 않아 내 개인 이메일로 괴롭힘을 당하던 아랫 직원 팀원이 내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한 장문의 메일을 보내와서, 딱히 감사인사를 받고 싶어서 한 일도 아니고 괜히 중간에 껴서 새우등만 터지는 경험이었던지라 괜스레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 답장을 미루다가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흐지부지되었다. 내가 굉장히 양심적이거나, 불의에 참지 못해서 도와준 것도 아니고 단순히 괴롭힘과 따돌림에 동조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이기심이 상황을 이렇게 이끌었는데 내가 감사인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왠지 좀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수박이나 먹으며 근심걱정 없이 살고 싶다


퇴사하고 나는 전 직장으로 연봉 10%를 올려(그래도 이직했던 곳 보다 훨씬 낮지만) 돌아와 잘 일하고 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여전하지만, 전 회사 직장 동료들의 환대와 익숙해진 업무를 해나가며 이직 전 연차까지 합쳐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와 같이 미국 내 직장 내 따돌림/괴롭힘 사건을 가까이서 겪으며 느낀 점은, 정말 부당한 일을 직장에서 겪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본인에게 피해 오는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지옥을 살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회사 일이 다 그렇지. 참아."라는 조언이나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라는 말로 넘겼다. 10명 중에 9명이 이런 반응이었고, 1명 정도가 본인 일처럼 나서서 자신의 전 직장 친구에게 연락해주고 했는데 이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이걸 직접 겪어보니, '아! 왜 드라마에서 피해자들이 자기 말을 무시하고 안 들어줬다는지 알겠구먼.'이라며 드라마나 영화 작가들의 현실 고증에 감탄했다. 


직장에서 이런 어려움도 겪어보니 다음엔 더 잘 처리할 수 있겠다는 묘한 자신감도 생겼다. 이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겪은 현실이라, <더 글로리>의 연진이에게 내려진 벌처럼 사이다 같은 전개는 아니고 찝찝한 끝마무리로 엔딩 된다. 미국인 '연진이'들에게 대단한 벌이 내리지도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그 회사에 잘 붙어있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퇴사를 했다. 그래도,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났고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며 잘 살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최소 남을 괴롭히며 살진 않겠지-라며 셀프로 칭찬도 하며 회사 생활에서 이런 일도 겪으며 한층 성장했다고 믿자라고 넘겼다. 


이번 주에는 우리 동네에 있는 큰 회사에서 이직 자리 면접이 생겨, 마지막 면접 단계를 남겨두고 있다. 이번엔 꼭 연봉도 많이 받고, 직장 내 괴롭힘도 없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는 기회였으면 좋겠다. 아니면 아예 프리랜서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데, 누구 나한테 돈 많이 주고 일 시키고 싶으신 분 찾습니다. 최소한 직장 내 분란은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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