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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Apr 30. 2024

어떻게 30년동안 늙지를 않아?


    엄마는 올해 만68세. 7여년간 꾸준히 다녔던 경전철 청소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나이탓이었다. 액면가로 보자면 10년은 더 일할 수 있었지만, 근로기준법에 따라 시청에서 관리하는 청소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엄마는 실업급여를 타야겠다고 하며 실업급여카드에 들어갈 증명사진을 찍어왔고, 나는 황급히 예전에 찍어두었던 엄마의 예전 증명사진 더미를 꺼내며 감탄을 그지못했다. 


"어떻게 30년동안 늙지를 않아?"


    이런 사람들을 뱀파이어라고 하던가. 주름은 인생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고통의 깊이만큼 주름이 패이는 것이 아니었던가? 고통의 깊이만큼 패이는 것이 주름이라면 뼈가 보일정도로 패여야 하는 엄마의 인생.


    남편과 아들을 암으로 보내고, 거기에 딸까지 암에 걸렸는데 사위마저 사고로 아기가 되어버린 지난날.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견딜만한 젊은나이도 아니다. 시련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한 나의 암 진단소식에는 충격을 적잖게 받고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 마치, 뇌가 더 이상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필사적으로 밀어내는 것 처럼. 


    엄마는 종종 아빠와 남동생을 회고하며 말한다. 


“나 혼자서는 그 일들을 다 해내지 못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 그런데 그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엄마는 42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보낸 후 닥친 외로운 시간속에서도. 배운 것이 별로 없어 청소일밖에 할 수 없었지만 아들의 병원비를 벌겠다고 12시간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아들을 간병하기위해 병원에 가는 버스안에서 쪽잠을 청하며 버틴 7년. 뇌병변 사위를 간병하겠답시고 온갖 욕설과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무껍질처럼 말라가는 딸의 모습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을 때에도. 엄마는 혼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하느님이 존재했다. 그분이 있다고 믿는 힘이 누구보다 강했다. 신은, 고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연찮게 찾아온 고통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존재라고 믿었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가슴속에도 새길 수 있도록 내어주었기에 엄마의 얼굴은 한결같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당연스럽게 성당을 다녔다. 내 고통을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함께해준다고 믿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 하면 속물 같으려나.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그러니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러니 괜찮다는 믿음. 


    엄마의 동안의 비결은 믿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명과, 이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믿음, 그리고 내게 닥친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한 손길이라 생각하는 감사하는 마음들이 필요하다. 사실, 내 마음을 뒤흔드는 오지라퍼들도, 결혼을 하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들도, 내 일에 토를 다는 상사마저도. 나와 함께 하기 위해 한마디 건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옆에 있다고 말을 건네어보자. 그것은 되려 나를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일지도 모른다. 힘들어 죽고 싶고, 미칠 것 같다면, 기회에 현실을 벗어나서 주위를 둘러봤으면 좋겠다. 아마 누군가가 내가 했던 것처럼 손을 내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실을 매우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엄마의 동안의 비결은 믿음이었다. 그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나는 격하게 공감하며 당신의 믿음을 닮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 역시, 불혹에 어울리지 않는 동안을 자랑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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