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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야 Feb 26. 2024

“지음”知音은 “지음”을 낳는다.

EXIT 15

 “Forte 포르테”를 "Piano 피아노“로 치면 안 됩니까?  

 “지음”知音은 “지음”을 낳는다.  

 
  

 “지음”이란 한자 그대로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말한다.   

 <열자>列子 <탕문편>의 일화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거문고를 잘 켜는 백아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면 친구인 종자기는

 그의 연주를 듣고 백아의 연주를 꿰뚫는 품평을 했다. 

연주를 들으면 펼쳐지는 계곡과 산, 백아의 심리 상태까지,

 백아의 모든 것을 알아주는 종자기가 백아는 너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종자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백아는 눈물을 흘리며 거문고를 부수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

 거문고를 더 이상 연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아는 종자기의 죽음 이후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 

이후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이라 일컬었다.   

   


 한 작가와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하나를 얘기하면 열을 캐치하는 순발력과 명민함에 

프로젝트를 하는 내내 즐거웠다. 

그가 던지는 아이디어를 내가 받고, 

내가 던지는 아이디어를 그가 받았다. 

우리는 작은 눈을 굴려 눈코입을 가진 눈사람을 만들어냈다. 

실화 베이스 스토리라 관련 사료 스터디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 내 많은 책을 읽어내야만 했고,

 팩트와 감성적 글쓰기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해야만 했다.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며 고시 공부하듯 

 부지런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은 작업실에서, 막히면 와인 한 잔을 마시며 토론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 순간이 참 행복했다.

프로젝트 말미 그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지음 知音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나야말로 지음을 만나 행복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암 소식을 전했다. 

백아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피아노와 이빨”이라는 피아노 공연을 간 적이 있었다.  

 피아니스트 윤효간 님의 공연인데 

기존의 피아노 공연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공연이었다.

 피아노보다는 소위 말하는 “이빨 까기” 

즉 관객 또는 토크 게스트와의 소통이 테마인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었다

. 공연은 비틀스의 “Hey Jude"로 시작했다.

 첫 연주를 듣는 순간 알았다. 

공연의 끝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걸. 

윤효간 님은 익숙한 팝에 이어

 익숙한 동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그가 그의 유년시절에 대해 말했다.  

 
  

 자신의 부친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육각성냥 “UN성냥”의 사장님이었고, 

유복한 어린 시절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목표가 모두 콩쿠르 입상이었기에 

콩쿠르 준비 버전의 FM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콩쿠르를 나갔는데 자신은 입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콩쿠르에서 모든 아이들이 다 똑같이

 피아노를 악상기호에 맞춰 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의문이 들었다.   

 “포르테를 약하게, 약하게를 강하게 치면 안 되나요?

 그럼 피아노에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피아노 선생님들이 줄줄이 관뒀다.   

 
  

 그날부터 그는 악상기호와 다르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크게 치라는 데서 작게, 작게 치라는 데서 크게 쳤다.

 페달을 누르라면 안 누르고 

옥타브도 한 옥타브씩 올리고 내리고 쳐봤다. 

피아노 옥타브를 내리다 보니 칠 건반이 없어

 피아노 나무를 계속 친 적이 있다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자기 필링대로 피아노를 쳐도

 피아노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음을 알았다고 했다.

 클래식보다 팝과 락에 관심이 생긴 그는

 누가 정해진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중학교 때 가출을 했고 17살 때 상경을 했다.

 나이트클럽 피아노 악사를 했고 집안과의 불화가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생각이 있으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고 싶어 공연을 기획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가발을 쓰고 밤무대 연주를 했고, 

이후 KBS 관현악단에 들어갔다. 

지치고 힘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피아노와 이빨”은

 사재와 기업, 지인들의 도움으로 유지되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런 그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하늘을 봤다고 했다.‘  

 “가끔 11시 방향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때마다 그만둘 수 없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그는 공연에 종종 게스트들을 직접 초대하는데 

각계각층에서 온 그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그의 공연을 보는 내내 격의 없이 유머러스하게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의 진솔한 매력을 느꼈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게스트를 직접 섭외해 질문을 하고,

 자신의 공연을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그가 어린 시절 방황으로 인한 회한 때문인지

 진심을 담아 그만의 방식으로 치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구절은 

그 무엇보다 울림이 강했다.   

   


 콘서트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난 그의 콘서트가 명맥을 유지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연 내내 그의 뜻을 알고, 

그가 치는 거꾸로의 음악이 

그 어떤 FM 클래식보다 감동적이라는 걸 깨닫는 관객들. 

그의 음을 알아주는 “지음”이 있기에 

그가 꿈을 잃지 않고 공연을 계속하는 게 아닐까.

 “知音”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거꾸로 살아가는 세상도 외롭지 않다. 

그리고 마법처럼 신기한 게, 나의 열정이 존재하는 한, 

그 한 명의 지음이 또 다른 지음으로 늘어난다는 걸

 그가 깨달은 게 아닐까.    



 “살아보니 거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여정 같더라고요.

 올라가다 보니 중간중간 들꽃이 보이고

, 그 꽃들을 쫓아 정상에 오르면 꽃밭이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올라가 보면 또 다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요.” 

피아니스트 윤효간 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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