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여행 #1 - 뉴욕의 여름, 호텔도 에어비앤비도 아닌 서블렛
6월에 아이랑 19일짜리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 애틀란타공항 출발로, 뉴욕(미국) 4박 - 나이아가라 폴스(캐나다) 2박 - 캘거리/밴프국립공원/재스퍼국립공원(캐나다) 8박 - 시카고(미국) 4박 일정이었다. 나이아가라 폴스까지는 아이랑 둘이 다녔고, 밴프/재스퍼는 아이 아빠와 접선해 캠핑카를 탔고, 시카고는 고교/대학 후배네와 함께였다. 2월부터 준비해서 그런지 다소 긴 여행이라 비행기를 대여섯번 타서 그런지, 당분간 여행은 안 다녀도 될 듯하다. 평범한 여행이었지만, 알뜰여행 팁이 될 만한 부분들은 정리해보려 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수행'(隨行 혹은 修行)에 가깝다. 여행 예산도 훅 올라간다. 일단 인원도 늘지만, 부부끼리는 갈 수 있었던 좁고 허름한 숙소가 고려 대상에서 아예 사라진다. 청결도도 더 신경쓰이고, 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공간도 더 넓은 곳을 선호하게 된다. 체력 문제로 위치도 큰 변수가 된다.
뉴욕 숙소를 찾을 때 처음 고민했던 건, 위치냐 쾌적함이냐였다. 뉴욕 관광지 대부분이 맨해튼에 몰려있으므로, 숙소도 맨해튼 내에 있으면 좋다. 문제는 호텔이 너무 비싸고 좁다는 것. 맨해튼은 에어비앤비도 선택의 폭이 좁고, 평점이 낮다(집주인이 함께 거주해야 하는 식으론가 규제가 생겨서 에어비앤비가 많이 줄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맨해튼 이동에 버스 30분 이상 걸리는 대신 넓고 편해 보이는 뉴저지 쪽 독채를 예약했다. 여행 날짜를 앞당기면서는 집주인과 다른 층을 쓰는 브루클린 쪽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그 즈음 앞서 뉴욕에 다녀온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4인가족이 서블렛으로 여행비용을 아꼈다고 했다. 서블렛(Sublet)은 세입자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세를 주는 걸 말한다. 집주인이 모르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개인간에 금전이 오가기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이걸 여행에 활용할 생각은 못 해봤는데, 뉴욕 쪽은 워낙 거주비가 비싸다 보니 수요와 공급이 다 있다.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여름방학에 한국에 다녀오거나 휴가를 가는 기간에도 집이나 방을 세 놓고, 짧으면 며칠에서 몇달까지 뉴욕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방을 구한다.
4월 즈음부터 미준모, 미여디 등 네이버 카페와 헤이코리안(https://rent.heykorean.com/rent/list/1)에서 임대날짜와 여행기간이 맞는 곳들에 연락을 해봤다. 아무래도 방을 내놓는 사람 입장에서는 숙박기간이 최대한 긴 사람을 구하는 게 이득이다 보니, 조건이 맞는 집을 쉽게 구하기는 어려웠다. 집 전체를 빌리고 싶은데, 방은 이미 사람을 구했다며 거실 쉐어를 제안하는 곳도 있었다(뉴욕 부근은 방 말고 거실에도 파티션을 치고 침대를 놔서 집을 쉐어하는 경우가 많다).
적합한 숙소를 찾지 못하던 상황에, 다시 호텔 예약을 했다. 아이랑 4박이면 맨하탄 숙박이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맨해튼은 금토 숙박이 비싼 편이어서, 금토와 일월을 나눠서 예약했다. 2박은 타임스퀘어 근처 호텔 중에 그나마 덜 좁은 곳으로, 나머지 2박은 맨해튼 남쪽 금융지구로 잡았다. 손더(https://www.sonder.com/)에서 킹베드 스튜디오가 괜찮은 가격에 나왔고, 프로모코드를 적용했더니 1박 250불대 정도 됐던 것 같다.
5월 중순쯤 다시 헤이코리안즈에 들어갔더니 첼시 쪽 스튜디오가 올라왔다. 영어로 연락을 달라고 해서 문자를 보냈더니, 자기는 한국인이고 중국인 친구가 세를 놓는데 위치가 매우 좋다고 했다. 실제 사진을 받았는데 사진 속 짐은 다 빠질 예정이고, 에어매트리스와 의자와 냉장고 정도만 남길 예정이라 했다. 일단은 예약하기로 했었지만, 날짜가 다가와 다시 연락해보니 에어매트리스는 나 때문에 사는 거고 그 집은 장기임대를 생각하고 짐을 빼는 거였다. 그집 말고 월스트리트 쪽 자신이 거주하는 집도 쉐어할 수도 있다고 알려왔는데, 아이와 함께다 보니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아서 다른 집을 또 찾기로 했다.
헤이코리안즈 맨 위 게시물에 롱아일랜드시티의 스튜디오가 보였다. 살고 있던 사람이 남자인 듯한데 꽤 깔끔해 보였다. 지하철로 1정거장이면 맨해튼이고, 역까지 도보 가능했다. 주방과 밥솥은 물론 쌀까지 사용해도 된다 했다. 1박 100불에 디파짓 100불x박수이고, 신분증을 교환하면 된다고 했다(내 지인은 변호사여서인지 계약서도 썼다고 했지만, 일단 큰 금액이 아닌지라 그대로 오케이했다). 4박 숙박비는 미리 입금하고, 대신 디파짓은 숙소 입실 후에 보내도 될지 양해를 구했다. 집주인도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내 퇴실날보다 며칠 늦게 자신이 집에 돌아오는데, 그때 집 상태를 확인하고 디파짓을 돌려줘도 되느냐는 거였다. 서로 오케이했다.
여행 첫날 라과디아 공항에서 미리 깔아둔 Revel 앱으로 전기차를 불렀다(아직 뉴욕 주변에서만 가능한 앱인 듯한데, 프로모션 할인이 있었다). 숙소 앞에서 거주자 친구에게 열쇠를 받아들고 집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다. 이 집은 뷰맛집이었다. 서블렛을 올린 사람들 중 뷰가 좋다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 분은 그런 말 한 마디 없이 방 사진 몇 장만 올렸더랬다. 그런데... 뷰가 이랬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앞에 공원이 있어서 밤에 산책하러 나가기도 좋았다. 침대도 편하고, 테이블과 소파와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모든 공간이 넉넉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다른 층에 공용으로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참 편한 구조였다.
이 정도의 방을 1박 100불에 잘 수 있다니... 땡잡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만 주로 가능할 것이고, 사기꾼에게 잘못 걸릴 수도 있다는 위험은 있겠지만, 다시 여름에 뉴욕에 간다면 서블렛을 먼저 찾아볼 것 같다.
오래 전, 남편과 함께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 저렴이 호텔에 묵었었다. 위치는 좋았지만, 침대를 제외하면 짐가방을 펼칠 공간이 거의 없고, 욕실도 매우 좁았다. 창문은 방음이 안 되어 침대가 거리 한켠에 놓여있는 듯했다. 에어컨마저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대 숙면은 거의 불가능했다.
내가 그때도 서블렛을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이번엔 괜찮은 숙소 덕분에 정말 편안한 나흘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