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댕기자 Jul 10. 2024

브로드웨이 뮤지컬 35불에 보기

2024 여름여행 #2 - 뉴욕 뮤지컬 라이온킹/알라딘 로터리티켓 당첨기

6월에 아이랑 19일짜리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 애틀란타공항 출발로, 뉴욕(미국) 4박 - 나이아가라 폴스(캐나다) 2박 - 캘거리/밴프국립공원/재스퍼국립공원(캐나다) 8박 - 시카고(미국) 4박 일정이었다. 나이아가라 폴스까지는 아이랑 둘이 다녔고, 밴프/재스퍼는 아이 아빠와 접선해 캠핑카를 탔고, 시카고는 고교/대학 후배네와 함께였다. 2월부터 준비해서 그런지 다소 긴 여행이라 비행기를 대여섯번 타서 그런지, 당분간 여행은 안 다녀도 될 듯하다. 평범한 여행이었지만, 알뜰여행 팁이 될 만한 부분들은 정리해보려 한다.




서울로 대학 원서를 쓰면서 꿈꿨던 건 뮤지컬을 원없이 보는 삶이었다. 실제 서울살이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뮤지컬 극장에 갈 수 있다고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돈과 시간의 여유가 더 중요했다. 타지생활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돈이 생겨도 그 돈을 뮤지컬 티켓에 척 하고 쓸 수 있는 배포가 없었다. '내돈내산'으로 뮤지컬을 보는 건 몇 년에 한 번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뮤지컬 극장이 많은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인근의 금요일 밤 풍경. 


아이와 뉴욕여행을 앞두고도 고민했다. 타지(미국)생활 중인 내가 '뮤지컬을 꼭 봐야할까, 본다면 몇 개나 봐야할까'. 여행이 뉴욕뿐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이아가라에 캐나다 록키 캠핑카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뉴욕에 오는 것은 아닌데, 뮤지컬을 안 보긴 아쉽다. 최소 하나는 보기로 결심했다.


아이와 보기 좋은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3대장은 <라이온킹>, <알라딘>, <위키드>다. 라이온킹은 아이들이 출연하기도 하고, 다양한 무대효과와 통로로 지나가는 동물 연기자들 덕분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알라딘은 지니 역할 배우의 원맨쇼에 호평이 쏠린다. 위키드는 'defying gravity'도 유명하지만, 'popular'의 코믹적 요소도 볼만하다(유튜브로 예습하다가 아이랑 함께 쏙 빠졌다). 연극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들>을 추천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영어실력이 미천한 우리에겐 난도가 높은 과제가 되시겠다. 


인기 뮤지컬을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려고 하면 1인당 200불이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공식 사이트들을 보다가 자리가 만석이 되는 기간은 아닌 듯하여 미리 예매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 기간이 다가오자 알라딘은 특정 시간대를 제외하고 97불에 오케스트라석을 파는 할인행사를 시작했다. 몇 달 전에 조회해본 가격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가격이 최선인가? 


물론 아니다.




예전 뉴욕여행 때 뮤지컬 두 편을 봤다. 극장 앞에서 추첨하는 로터리에 당첨되어 뮤지컬 <헤어드레서>를 25불에 봤다. 참 재미있는 뮤지컬인데, 참 웃긴데... 졸았다. 그것도 배우들 침 튀기는 맨 앞자리에서 졸았다. 시차적응이 안 된 여행 첫날의 비극이었다. 두번째 뮤지컬은 타임스퀘어 바로 옆 tkts 창구에서 할인티켓을 샀다. 50% 할인 공연이 좌라락 떠있었는데, 이름을 아는 게 <코러스>와 <컬러 퍼플> 정도였다. 두번째니까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날의 선택을 지금도 후회한다. 피곤한 여행자는 작품성을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면 안 된다. <컬러 퍼플>을 고른 우리는 암흑 속으로 빠졌다. 남편은 초반부터 헤어나올 수 없는 숙면상태에 취했고, 중반부터 헤드뱅잉을 했던 나는 아직도 줄거리를 모른다. 감동의 눈물로 무대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던 주변 흑인 관객들에게 너무나 민망했다. 


좋았거나 졸았거나, 일찍이 할인티켓의 맛을 봐버린 내가 정가 티켓부터 구매하고 여행을 떠나긴 쉽지 않다. 원하는 뮤지컬 3가지는 모두 온라인 로터리 티켓 응모가 가능한 공연이었다. 출발 전날부터 일단 도전해보고, 계속 실패하면 정가 티켓을 사기로 다짐했다. 


브로드웨이 로터리 티켓은 말 그대로 복권처럼 추첨하는 할인티켓이다. 당첨되면 다음날 뮤지컬이나 당일 저녁 뮤지컬을 가장 저렴한 자리 값의 절반 이하에 볼 수 있다. 남은 자리를 빼놓기 때문에, 좌석은 현장에 일찍 도착할수록 더 좋은 자리로 받는다. 


코로나19의 영향인지 로터리 티켓 현장 추첨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온라인 로터리는 Broadway Direct(https://lottery.broadwaydirect.com/)에 현재 7개의 뮤지컬들이 올라와 있고, Lucky Seat(https://www.luckyseat.com/home)에서는 뉴욕을 선택하면 총 5개의 뮤지컬이 뜬다.  


브로드웨이 다이렉트에서 로터리 티켓 도전이 가능한 공연들.




출발 전날인 목요일 오전 9시, 경건한 마음으로 라이언킹과 알라딘 로터리 티켓에 응모했다. <라이언킹>과 <알라딘>은 오전 9시부터 3시까지 응모하면 3시에 추첨 결과를 알려준다. <위키드>는 응모 시간이 저녁 8시부터였던 듯하다. 


응모 직후에 확인 메일 2통이 왔다. 그리고 응모가 마감되는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자 통의 이메일이 왔다


THE LION KING (NY) June 7, 2024 8:00 pm: Lottery Results - STANDBY 

ALADDIN (NY) June 7, 2024 8:00 pm: Lottery Results - STANDBY


네? 스탠바이요? 내용을 보니, 당첨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당첨자가 1시간 내로 티켓을 사지 않으면 스탠바이 중인 후보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듯하다. 그리고 까먹고 있다가 메일을 봤더니 글쎄...


THE LION KING (NY) June 7, 2024 8:00 pm: Lottery Results - YOU WON!


이런 메일이 와있지 않은가! 깜짝 놀라 시간을 보니 티켓 구매 가능 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급하게 티켓 2장을 구매하였더니 수수료 포함 장당 35불, 2명 70불에 알라딘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행운이 내게 올 거였다면 로또를 샀어야 했나 싶었지만, 그래봤자 몇 등이나 되겠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짐짓 침착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ㅇㅇ아, 우리는 내일 라이온 킹을 볼 거야."


로터리 티켓으로 받은 라이온 킹 좌석의 뷰




라이온 킹 로터리 티켓으로 받은 좌석은 살짝 뒤쪽이긴 했지만 1층 오케스트라석이었다. 적당히 전체 무대를 조망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이대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도 로터리 티켓에 도전했다. 이번엔 이렇게 메일이 왔다.


ALADDIN (NY) June 8, 2024 2:00 pm Lottery Results: Try Again

WICKED (NY) June 8, 2024 2:00 pm Lottery Results: Try Again


아예 되는 날은 이렇게 오는 거란 처음 알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 다음날에도 도전했다. 그런데...


ALADDIN (NY) June 9, 2024 3:00 pm: Lottery Results - STANDBY


알라딘이 스탠바이가 뜨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근거리다가 또 한시간여 뒤에 확인했더니


ALADDIN (NY) June 9, 2024 3:00 pm: Lottery Results - YOU WON!


헐... 두 번 당첨이라니, 이거 흔한 건가요? 이번엔 Moma에서 시간 소모를 하고 좀 늦게 갔더니 자리가 3층이긴 했지만, 어쨌건 또 1인당 35불, 2인 70불에 알라딘을 보고 말았다.


<알라딘> 로터리 티켓으로 받은 3층 앞줄 좌석의 시야.




물론 로터리 티켓의 행운이 모두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여행 카페에서 봤더니, 나처럼 2개 당첨된 사람도 있지만, 몇 달을 도전해도 한 번도 안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처럼 뭔가 부족한 사람 말고, 있는 사람에겐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예산이 충분하다면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이트에서 바로 연결되는 브로드웨이 다이렉트나 티켓마스터 등에서 티켓을 구매해도 된다. 할인해주네 어쩌네 하는 사이트들 들어가 봐도 수수료 붙으면 공식 사이트보다 비싸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사 대리구매도 가능하다. 여행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예약비가 좋은 자리 값과 별로인 자리 값의 중간인 경우가 많다. 결국, 낸 돈에 비해 좋은 자리가 걸릴 가능성과 별로인 자리가 걸릴 가능성이 혼재한다. 가능한 가장 좋은 자리를 주겠지만, 후자가 걱정된다면 그냥 직접 예매하는 게 낫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당일 아침 극장 앞에 줄을 서서 Lush 티켓 구매도 가능하다. Lush 티켓은 일반과 학생 두 가지가 있다. (방문학자지만) 미국 대학 학생증이 있으니 더 저렴한 student lush 티켓도 가능할 듯한데, 시도해보지 못했다. 짧은 일정에 시간 낭비하기 싫은 탓인지, 주변에 직접 해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Lush 티켓을 TodayTix 앱이나 뮤지컬 자체 앱으로 구매 가능한 경우도 있다. 


체력이 충분하다면, 스탠딩 티켓도 있다. 줄을 서거나 온라인으로 스탠딩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공연이 일부 있다. 물론 애 딸린 관광객에게는 불가능한 옵션이다.


안목이 충분하다면, 타임스퀘어 인근 할인티켓 창구에서 당일 가능한 공연 좌석을 구매할 수 있다. 다만, 모두가 좋아하는 인기 뮤지컬 티켓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작가의 이전글 맨해튼 코앞에서 ‘1박 100불’ 실화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