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왜 배관공이 돈을 잘 버는지, 나도 알고 싶지 않거든요
미국에서 돈을 잘 버는 직업이 배관공이란 말을 많이 들었었다. 미국은 손기술을 사용하는 일들의 인건비가 비싸고, 싱크대 음식물분쇄기를 쓰다가 잘 막혀서 그렇다고들 했다. 내가 사는 집 싱크대에는 스텐 거름망이 있어서 굳이 음식물분쇄기를 쓰지 않고 살고 있다. 오래된 집이니 혹시 변기가 막힐 땐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한 적은 있지만, 아직 현실이 되진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갑자기 세면대 배수가 느려졌다. 정말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됐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는 것도 아니고, 아 물론 머리 물기를 털다 좀 들어가긴 했을 거다. 그리고 가끔 물걸레를 좀 빨긴 했지만... 먼지와 머리카락이 좀 들어갔다고 막혀버리다니... 기가 막히려고 했다.
일단 구글 검색을 열심히 했다. 4가지 방법이 보였다. 대부분은 세면대 아래 P트랩까지의 구간이 머릿카락 등 오물로 막혔을 경우에 가능한 방법이다.
첫째, Drain Snake로 장애물 제거하기. 한국 지하철이나 다이소에서도 파는, 가시 달린 길쭉한 스틱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다만, 이 스틱이 배관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날카로운 부분에 자칫 손이 다칠 수 있다.
둘째, Drain Clog Dissolver(일종의 뚫어펑 용액) 붓기. 여러 번 하면 파이프 속이 부식되고 구멍이 날 수도 있다.
셋째, 세면대 아래 p트랩 분리하기. 막혀 있는 곳을 직접 열어 장애물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만약 막힌 곳이 P트랩이라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단, 오수를 받을 통이나 비닐을 잘 세팅해놓고 분리해야 한다.
넷째, Plumber(배관공)를 부르기. 이건 뭐, 100~250불까지 비용이 드는 것 같다. 전동기능이 있는 Drain Auger 종류를 사용하는 듯한데, 일반인이 하다간 자칫 파이프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중 몇 번째 방법을 썼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앞의 세 가지 방법을 썼고, 네 번째 방법을 쓸지 그냥 몇 달 참고 살지 고민 중이다.
웬만하면 첫째 방법으로 될 줄 알았다. 한국에서도 그럭저럭 효과를 봤던 방법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존에서 파는 제품 중 평점 4.3점짜리를 주문했다. 그런데...
건진 게 별로 없었다. 가장 긴 60cm짜리 긴 스틱은 끝까지 들어가지도 못했다. 아마도 우리집 세면대 배관이 급격하게 꼬여 있어서, P트랩 아래에서 건너편으로 못 넘어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스프링 달린 걸 샀어야 했나, 약간 후회했다.
기왕 칼을 뽑았으니 승부는 내야할 것 같았다. 아마존으로 Drano Max Gel을 주문했다. 뚪어펑 류 중에 가장 대중적인 게 Drano이고, 그 중 가장 센 게 맥스 겔이다. 다른 제품은 하룻밤 내내 부어놔야 하지만, 이 제품은 15~30분만 기다렸다가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된다고 했다. 아주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제품을 구매해서 반통을 부었다. 인터넷 어디서 1시간반을 놔두라고 본 것 같은데 파이프가 상할까봐 약간 불안해서 한 50분 정도 뒤에 온수를 틀어 물을 내렸다. 꼬륵꼬륵...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래도 영 시원한 물빠짐은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 며칠을 두고 봐도 여전했다. 물을 끓여서 부었어야 했나 후회가 됐다. Drano 뒷편에, 효과가 나지 않으면 두어 차례 반복해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플라스틱과 스텐 배관에 무리가 없다고도 적혀있다. 이 말을 믿어도 될지 고민이 되긴 했지만, 끓는 물로 한 번 더 해봐야지 생각했다.
2회용 Drano의 마지막 반 통을 쓰고 나서, 끓는 물도 효과가 없음이 확인됐다. 이제는 어떡하나 생각했다. 더 검색해 보니 가장 유명한 건 Drano지만, Green Gobbler나 Pequa가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때, 우리집 벽장에서 1회분 정도 남아있는 Drano를 발견했다. 그렇다. 이 집 배관은 예전에도 Drano로 뚫었던 곳이었나 보다. 이미 4회를 사용한 대용량 통이었다. 종종 막히는 배관이었겠고, 한 번에 잘 안 뚫리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총공세에 들어갔다. 이쯤 되면 배관과의 전쟁이다. 남은 Drano를 붓고, 1시간을 기다려 끓는 물을 부었다. 그리고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마음으로 예전 꼬챙이들까지 출동시켰다. 실컷 속을 후벼봤지만 여전히 끝까지 들어가지 못 한다. 그리고...
세면대 아래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막힌 곳이 아니라...
P트랩이...
뚫렸다.
싸늘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욕실에서 락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비상사태다. 일단 수건으로 닦고, 수건을 대놓고,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할지, 배관을 사다 교체할지 고민했다. 집에 몽키스패너 같은 공구가 없어서 손으로 배관을 분리할 수 있을지 일단 의문이었다. 한 달 전 아랫집으로 이사온 타사 기자 후배님에게 SOS를 쳤다. 펜치가 있다고 들고 올라왔다.
다행히도 P트랩은 쉽게 분리가 됐다. 그리고 알게 됐다. 이 놈은 속이 썩어문드러졌을 뿐, 답답하게 안에 품고 있는 건 없었다. P트랩이 막혀서 물이 잘 안 빠지는 게 아니라는 것. 배수 문제의 원흉은 벽 속 배관에 있어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물빠짐이 빠르고 느리고가 중요한 게 아닌 상황이 됐다. 일단 파이프는 다시 막아놓고 배수 문제를 해결할지 말지 고민해야했다. 뜯어낸 J벤드 배관을 들고 홈디포로 달려갔다. 배관 지름이 1-1/4 인치인 금속 배관을 찾아서 두 배관을 합쳐 얼추 같은 길이를 맞춰서 돌아왔다. 한국에서 배관 만져본 일도 없는 아랫집 후배님이 오랜 시간이 걸려 배관 결합에 성공했다.
돈은 40불 이상 썼지만, 배수는 여전히 안 된다. 내가 뭔가 한 가지 더 해본다면 P트랩을 다시 분리하고 벽 안 쪽 배관에 Drain Auger를 사서 꽂는 방법이 있겠다만, 이미 여러 차례 화학물질을 머금은 안쪽 파이프가 온전할지 확신이 없다. 혹시라도 벽 속 파이프를 구멍내버린다면 대공사가 될 것이기에 지금 내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다.
관리사무소에 말해서 배관공을 부르거나, 남은 서너달을 그냥 참고 살거나... 창고에 있던 Drano를 썼다가 배관이 망가졌고, 겉으로 보이는 문제가 아니니 관리사무소에서 집주인에게 비용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을지가 궁금하지만... 아무래도 가능성이 낮은 것 같다.
이쯤에서 후회되는 것 하나는, 혹시 내가 벽장에서 드레이노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배관 교체에 들인 시간과 돈과 공은 안 썼어도 됐겠다는 정도다. 어차피 감수할 만한 불편이라면, 이 정도까지 하지는 말 걸...
그런데 우리집 벽장에 왜 Drano가 있었냐면...
이 집이 드물게도 퍼니시드(Furnished)이기 때문이다. 거실엔 쇼파와 티비, 서랍장이, 침실엔 침대와 이불이 갖춰져 있고, 협탁과 스탠드, 서랍장이 놓여 있었다. 벽장에는 크기별 수건과 약간의 세제, 청소도구, 교체용 전구, 드라이어와 함께, 드레이노(Drano)가 있었다. 아마도 전에 에어비앤비로 대여하던 곳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미국 소도시는 한국 같은 고층 아파트가 드물다. 그래서 처음에 미국의 아파트먼트(Apartment)들을 보면 놀란다. 한국처럼 집이 상하좌우로 붙어있긴 한데 저층-심지어 단층도-으로 넓게 퍼져있어서 그렇다. 2층짜리 집이 좌우나 앞뒤로 붙어있는 타운하우스(Townhouse) 혹은 타운홈(Town home)도 있다. 집이 달랑 한 채씩 따로 있는 경우는 싱글하우스(Single House)라고 부른다.
지금 내가 지내는 곳은 콘도미니엄(Condominium)이다. 콘도미니엄은 아파트와 유사한 형태의 건물이지만, 아파트처럼 한 회사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집마다 주인과 관리회사가 다르다. 콘도미니엄이 아파트보다 고급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내가 있는 곳은 규모가 작고 시설이 평범한 수준이다. 2층짜리 건물에 집은 8개뿐이고, 주인과 관리회사가 제각각이다.
1인당 가격이 꽤 비싼 대학생 기숙사형 아파트(Student Living)를 제외하고는 가구 딸린 집이 흔치 않다. 집들은 대부분 주방가구(냉장고와 스토브, 오븐, 식기세척기 등)외에 텅 비어있는 형태로 세입자를 맞는다. 살림은 통째로 무빙(Moving)을 받거나 하나씩 새로 장만해야 한다.
UGA 주변에는 한국에서 석사 과정이나 방문학자 과정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이전 방문자가 살던 타운홈이나 싱글하우스를 살림과 함께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UGA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Oconee County의 두 개 단지에 한국인들이 몰려 산다. 그 지역에 평점이 매우 높은 학교가 있어서, 학군이 좋다는 점도 그 동네를 택하게 만든다. 다만 학교에 한국 친구들이 너무 많아 영어 학습이 더디다고 한다. 나는 운전기피자라서 UGA 근처로 집을 구했는데, 이 인근 초등학교도 만족도가 높다. 대학 주변이고 학부모 중 석박사 재학생이 많아 인종이 다양한 편이다.
어쨌건 퍼니시드로 집을 구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귀국 때 절차가 한결 간편하다. 전기와 인터넷 등 유틸리티도 집주인이 가입하고 고정비용처럼 내는 형태라서, 따로 해지하지 않아도 된다. 차를 팔고, 내가 산 물건들만 주변에 나눔하거나 버리면 된다. 처음 정착 때는 힘들었지만, 돌아가는 길이 남들보다는 덜 험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