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코스(표선→남원) 5
올레길은 가리마개에서 바닷가를 더듬으며 나아가 토산리에서 일주동로를 지나쳐 내륙으로 들어갔다. 민속해안도로를 따랐던 깔끔한 길의 인공미는 이곳에서 사라지고 이어짐과 끊김 그리고 변신의 숲길이 가진 자연미를 드러냈다. 일주동로까지 길은 골목 같기도 숲 속 오솔길 같기도 했다. 가리마개에서 방파제 근처까지 길은 골목으로 변해있었다. 길의 왼쪽은 나무 난간이 쭉 이어졌고 바다로 열려 있었다. 그럼에도 골목이 연상되었던 것은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과 창문 있는 벽과 담장 그리고 문 등 골목의 요소들 때문이었다. 이 길에서 기분 좋은 개방감과 정감 어린 폐쇄감을 동시에 느꼈다. 꽃들이 피어있었다. 송엽국, 다육이, 참꽃마리, 금계국, 인동덩굴. 꽃들을 보는 사이 골목 같은 길은 벌써 끝났다. 바닷가로 내려간 길은 방파제 근처에서 둥근 지붕의 집 뒤쪽으로 방향을 급하게 틀었다. 아담한 숲의 오솔길이었다. 나무들이 엉킨 짧은 터널을 지나면 변함없이 시원한 바다가 펼쳐졌다. 다정큼나무가 있고 길 양옆으로 난쟁이 돌들이 길을 호위하고 있었다.
호위가 끝난 곳부터 잘못된 마침표 같은 공사로 길은 어수선했다. 거칠게 드러난 맨땅과 주변의 낡은 시설들에서 스며 나온 녹슨 쓸쓸함은 다시 시작된 나무들의 오솔길에서 부스러져 갈색 솔방울들로 길 위로 떨어졌다. 오솔길은 확 트인 바다를 다시 보여주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외로웠다. 한적해서 그런가? 두 개의 돌탑도 소통되지 않는 고립감에 외로워 보였다. 너머의 바다는 차갑게 다가왔다. 마음이 변하니 풍경의 온도와 정서도 달라졌다. 검은 아스팔트 길은 대나무숲 길로 변했고, 대나무숲 길은 다른 나무숲 길로 변신하며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NH농협은행 제주수련원의 앞마당을 지나 바로 바다로 내려갔다. 둥글둥글한 작은 현무암들이 짧은 해변에 길을 만들어 안내했다. 카카오맵은 이곳이‘해병대길’이라고 가리켰다. 올레는 4코스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세화 2리의 옛 이름, 가마리의 해녀 올레는 ‘세계 최초의 전문직 여성’으로 불리는 제주 해녀들이 바닷가로 오르내리던 길이다. 이어지는 바다 숲길은 제주올레에 의해 35년 만에 복원되었다. 이 길을 만들 때 해병대 장병들이 도와주어서 ‘해병대길’이라고도 불린다.
길을 만든 해병대 장병의 도움을 기리기 위해 ‘해병대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스틱을 사용했다. 잠깐 방심한 사이, 발이 접질렸기 때문이었다. 심하지 않아서 통증은 금세 사라졌다. 그동안 스틱을 사용하지 않았다. 움직일 때 무언가에 의지한다는 것이 싫었다. 늙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었다. 다가올 시간을 보면 지금이 제일 젊다. 그래서 젊다는 이유로 무리할 수 있다. 그러나 뒤돌아 지나간 시간을 보면 지금이 가장 늙었다. 그러니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의해야 한다. 다가올 시간과 지나간 시간의 접점에 있는 현재의 표상인 나는 시간의 흐름을 나름 잘 살펴야 한다. 이번엔 어제의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무릎도 안 좋은데 발목마저 다치면 안 되기에 예방 차원에서 스틱을 꺼내 사용했다. 너무 편했다. 발과 무릎의 부담이 줄어드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올레가 끝날 때까지 평지든 오름이든 어디서든 함께하며 나의 또 다른 다리가 되어주었다.
둥근 현무암 길 끝에서 거친 길을 오르니 다시 숲길이었다. 호텔 소노캄 제주 외곽을 걷고 있었다. ‘소노’,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숲길을 벗어나면 이상향이 나올까? 군데군데 바다까지 흘러와 식은 용암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점점 나무에 가려진 하늘이 보이더니 토산 포구에 닿았다.
생각해 보니 복원되었다는 바다 숲길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가리마개에서 발 접질린 해병대길까지인지 아니면 이곳 토산포구까지인지. 또한 제주에 해병대가 있다는 사실도 의외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해병대는 제주방어사령부이었다 2015년에 12월에 해병대 제9여단으로 창설되었다고 한다. 더 궁금한 것이 있다. 이 길은 35년 만에 복원되었다. 역으로 생각하면 2008년 4코스가 개장되기 35년 전에 사람들은 이곳을 걸어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폐쇄되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검색해도 알 수 없었다.
토산 포구는 이상향이 아니었다. 너무도 고요하고 한산했다. 사람도 없었다. 포구라 주변에 마을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없었다. 마을도 사람도 없는 무인도의 포구 같았다. 올레길은 미련 없이 마을로 향했다. 갈림길이 있던 음식점에서 길은 일주동로에 바로 닿는 길을 포기하고 바닷가로 갔다. 바다의 중력에 끌리듯 지름길로 가지 않고 바닷가로 돌았다. 바닷길에서 점점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동로가 나왔다.
일주동로를 건너니 낮은 벽돌벽에 파랑 바다가 보였다. 돌고래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잭 스페로우가 서 있는 FM 빈티지 카페에 돌면 길은 간간이 밭이 있는 집들을 지나 중간 스탬프가 있는 알토산고팡에 닿았다.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안내문이 붙은 알토산고팡에서 중간스탬프를 찍고 물을 마시며 표선해수욕장을 생각했다. 알토산고팡과 알토산 책방이 있는 토산 2리 노인복지회관 사이에는 빨간 동백꽃의 토산리 4·3 유적지 안내판이 있다. 토산리는 4·3 때 18세에서 40세까지의 남자들과 몇몇 젊은 처녀들이 끌려가 표선해수욕장에서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총살당했다고 한다. 지금의 아름다운 해변 모습과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묘사된 학살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당시 학살의 증거들이 밀물에 실려 썰물에 사라져 버렸지만 역사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진실이 증언되길 바랐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데리고 역방향을 걷고 있는 부부가 상념에 빠진 나를 깨웠다. 그들은 나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중간 스탬프를 찍은 후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런 것이 행복이겠지? 점심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알토산고팡, 문어라면이 유명하던데. 이전했다니. 더 가다 보면 다른 식당이 있겠지?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걸었다. 중간스탬프 옆에 6·25 전쟁 때 전사·순직한 토산리 출신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빨간 글씨의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길은 오르막이었고 평지부터 가로수가 길을 내다보고 있었다.
‘알토산 고팡’, 외래어 같기도 하고 ‘키토산’처럼 무슨 화학 화합물질 이름 같기도 했다. 토산리는 북쪽에 있는 토산봉에서 유래한 지명 같았다. 토산리가 중산간의 토산 1리와 해변 쪽의 토산 2리로 나누어지면서 위쪽에 있는 토산 1리는 ‘웃토산’으로, 아래쪽에 있는 토산 2리를 ‘알토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알-’은 ‘아래’가 축약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알토산은 마을 북쪽에 있는 토산망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서 표선면에서 가장 먼저 감귤 재배를 시작하여 다른 마을로 보급시킨 마을이기도 했다. ‘고팡’은 집 안에 있는 작은 창고로 금고 수준의 중요한 것을 보관했던 곳이라 한다.
마을 큰길 도중에 옆으로 길은 새어 내려갔다. 철로 된 봉 꼭대기에 서 있는 귤색의 ‘왓’이라는 단어가 나를 맞이했다. ‘왓’? ‘왓’은 ‘밭’을 뜻했다. 중간 스탬프가 있던 ‘알토산 고팡’이 ‘거리왓’으로 이전했다고 했다. 그럼 ‘거리왓’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리왓’은 ‘마을에 있는 밭’을 의미했다. ‘알토산 고팡’이 ‘거리왓’으로 상호명도 바꿔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말이었다.
이후 길은 거리왓이라 할 수 있는 감귤 밭길과 숲길 그리고 상단에 긴 받침이 있는 비닐하우스들의 길이었다. 비닐하우스 길은 드러난 파란 하늘과 함께했다. 건천인 송천의 다리를 건너니 거북이 형상을 닮은 마을이라는 신흥1리였고 담장에 빨간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두 번의 큰 홍수로 영천사 중심의 마을이 사라졌다고 한다. 송당모루, 섯모루, 고잘모루 논동산으로 새로이 마을을 형성한 분지는 셋 모루 때문인지 모든 도로를 삼거리(지금도 마을의 모든 도로는 삼거리다)로 만들었고 뱀의 횡포로부터 거북이가 지키는 마을이라 하여 방구령이라 했다. 뱀의 횡포 때문에 홍수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밭길은 큰 도로와 짧은 만남을 가졌고 다시 거리왓과 집들이 있는 마을 길로 들어가 두어 번 꺾으며 한가로이 나아갔다. 끝에 ‘자상한 하루’라는 조금은 허름한 카페와 만났다. ‘드립커피가 맛있는 커피책방’이라는 고딕체 문구가 창문에 무심히 붙어있었다. 그 무심함이 눈길을 끌었다. 책방인가? 보려고 가 봤지만 문은 닫혀있었다. 지도를 보니 바로 옆에 ‘알맞은 시간’이라는 카페도 있었다. 가만 알맞은 시간? 크로노스와 케이로스 시간이 떠올랐다. 크로노스 시간은 세상을 지배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시간이다. 케이로스 시간은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시간이다. ‘공부하기 좋은 때’라든가 ‘운동하기 좋은 때’라든가 같은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어떤 것의 ‘알맞은 때’가 케이로스 시간이다. 카페 ‘알맞은 시간’은 케이로스 시간을 가리켰다. 지금 이 시간, 올레를 걷는 것이 나에게 알맞은 시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마을 길에서 벗어나 도로를 따른 올레길은 두 개의 삼거리를 지나 일주동로와 다시 만났다. 이곳에서 식당을 검색했다. 근처에 중국집 한 군데뿐이었다. 제주에까지 와서 중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다시 검색했다.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냥 중국집에 들어갔다.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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