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운
사진: Unsplash의Guillaume de Germain
이번 글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동안 세 명의 헬퍼를 겪으며 제가 경험한 것들과 느낀 점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처음 헬퍼를 고용하시려는 분들, 현재 헬퍼와 트러블이 있는 분들, 또는 한국에 계시면서 싱가포르의 헬퍼 제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이렇게 헬퍼와 지내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가볍게 참고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의 경험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Round #1 첫 번째 헬퍼 - 눈치제로 발랄한 그녀
그럼 저의 첫 헬퍼를 구하게 된 이유와 그 방법부터 얘기해 볼게요.
첫 아이가 4살일 무렵, 바야흐로 둘째를 임신한 때였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워킹맘이 아니고 하루종일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전업맘이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헬퍼를 구해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출산시기에 맞추어 천천히 사람을 알아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임신한 이후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 유치원 픽업을 했었어요. 업무 특성상 일반 회사보다 출근시간이 늦었던 남편이 아침 등원을 맡았고, 점심 이후에는 하원 시간에 맞춰서 제가 버스를 타고 아이를 데리러 갔답니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면 보통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진, 유경험자라면 거의 모든 분들이 치를 떠는, 입덧이란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아이 유치원은 버스를 타고 단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었지만, 그 잠시 동안 멀미가 나거나 현기증이 나서 힘겨웠던 때가 많았어요. 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는 버스정류장은 하필 푸드코트 바로 밑에 있었어요. 싱가포르는 동네마다 푸드코트가 있어 하루종일 각종 재료들이 볶이고 쪄지고 튀겨지는데요, 위층에서 풍기는 온갖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 냄새를 맡고 있자면 금방 속이 메슥거려 토하기 직전까지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이러다가는 유치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지겠다 싶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코를 막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첫째 아이 때 일주일 정도 잠시 스쳐 지나가듯 입덧을 겪은 것에 비해 두 번째 임신의 입덧은 더 힘들었어요. 먹덧, 토덧을 하며 고생을 하는 분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벼웠지만, 크래커나 누룽지 같은 걸 먹으며 거의 누워있었던 기억이 나요. 아이 유치원 픽업을 포함해 일상이 힘들어지자 헬퍼를 알아보기로 결심했어요.
I. 지인의 소개를 받자
마침 같은 콘도(싱가포르 내 아파트 개념)에 친한 언니가 요리, 청소, 아이케어 등 모든 면에서 만능인 훌륭한 헬퍼를 구해 큰 도움을 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헬퍼의 친구였던 저희 첫 번째 헬퍼 J양을 만나게 되었어요. J양은 이미 싱가포르에서 고용주를 만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일이 너무 힘들고 고되 반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트랜스퍼(기존 고용주가 있는 상태에서 계약을 파기하거나 재계약을 하지 않고 새로운 고용주와 계약하는 것)를 희망하는 상태였어요. 워낙 칭찬이 자자한 헬퍼가 자기 친구라며 소개해주는 사람이었기에, 믿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II. 트랜스퍼 헬퍼라면 그 이유를 꼭 묻자
또한 J양이 트랜스퍼하고자 하는 이유도 제법 납득이 되었어요. 그녀가 일하고 있던 집은 남자아이 세 명이 있었는데 부모가 둘 다 출장이 잦아 아이들을 모두 케어하는 것이 그녀의 주요 업무였어요. 문제는 아이들 중 한 명이 발달과정 중에 문제가 있었는지, 다른 형제를 때리는 것에 이어 그녀까지 때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헬퍼 관련해서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엄마들이 많이 가입한 네이버카페에서 검색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얘기 중 하나가 ‘힘든 집에서 일했던 헬퍼를 구하라’였어요. 여기에서 ‘힘든 집’이란 보통 어린아이들이 많거나, 가족구성원이 많고 집의 크기가 크거나, 휴무일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등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어요. 즉, 힘든 집에서 일한 헬퍼일수록 인내심이 많고 새 고용주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큰 불만 없이 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어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이 셋 있는 집에서 부모 대신 육아와 살림을 전담했던 그녀의 고충이 이해가 되었고, 쉽지 않은 신생아 케어를 잘해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III. 인터뷰에서 꽤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의 관문이 남아있었어요. 우선 미리 네이버카페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을 참조하여 인터뷰에서 물어볼만한 몇 가지 질문들을 추렸어요. 그중에는 남자친구의 유무를 묻는다든지 ‘이런 것까지 물어봐야 해?’ 생각이 드는 질문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라면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똑같이 질문리스트에 추가를 했답니다.
핸드폰 화면 너머 본 그녀의 첫인상은 아주 밝았어요. 인터뷰인데 긴장하기보다는 저를 만나서 너무 반갑다는 듯이 그녀는 계속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나갔어요. 또한 저의 질문에 모두 만족할 만한 답변을 했어요. 길지 않은 인터뷰였지만, 그녀의 밝은 첫인상이 좋았고, 우리 집에서 와서 일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었어요.
그렇게 그녀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어요. 우리는 낯선 집에서 지내게 된 그녀가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을 했어요. 사실 그때 제일 불편한 사람은 우리 부부였는지도 몰라요. 처음 헬퍼를 고용하다 보니,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는지, 헬퍼가 청소를 할 때는 뭘 하고 있어야 하는지, 내내 좌불안석이었어요. 우리가 음식도 나눠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주는 등 작은 배려를 해줄 때마다 그녀는 기뻐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어요.
다행히 아이도 그녀와 금방 친해져 너무 잘 놀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녀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에 탁월한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즐겁게 놀아줬고, 그녀도 진심으로 그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이에게 꾸준히 말을 걸어주고, 아이의 얘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었지요. 놀이터에서도 그녀는 인기쟁이였어요. 아이와 재밌게 놀아주는 그녀에게 다른 아이들이 다가갔고, 그녀는 그러한 아이들도 배제하지 않았어요.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과 놀아주면서도, 그녀는 항상 첫째 아이를 우선적으로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처음 몇 달간은 그녀가 와서 만족도가 너무 높았어요. 누군가 와서 설거지만 해줘도 좋겠다 싶었는데, 아이와 너무 잘 놀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유치원 픽업, 요리, 청소까지 해결해 주는 사람이 왔으니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한결 편해진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해요. 초반엔 만족도가 높았지만 그녀와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편한 마음도 커졌어요.
다음 글에선 그녀와 마찰이 생겼던 부분에 대해 풀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