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마무라 Jan 18. 202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맨발의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크리스티안 라이프 지휘)

바야흐로 비르투오소의 시대이다. 사실 과거에도 현란한 연주를 선보이는 피아니스트(예를 들어, 호로비츠)들이 일반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랑랑의 등장 이후부터 사람들은 더욱 ‘기교’를 칭송하게 된 것 같다. 

요즈음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여성 피아니스트를 꼽으라면 유자 왕,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 오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트와 나머지 두 연주자들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나는 우치다 미츠코, 마르타 아르헤리치,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3 대장’ 시대가 저문 후 엘렌 그리모를 거쳐 그 여성스러움의 계보를 가장 잘 이은 사람이 오트라고 생각한다. 유자 왕과 카티아를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또 싫어하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그 둘은 (좋은 의미에서) 클래식 계의 ‘별종’이다. 파격적인 의상, 천재적인 기교, 압도적인 힘은 대중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둘을, 그리고 그 둘의 연주를 칭송하는 관객들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의 본질이 감수성과 감정의 전달에서 차갑고 이성적인 테크니션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전환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건 아니지만 나는 음악에서 예술을 찾아야지 ‘기예’를 찾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자 왕이 지난 1월 카네기 홀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야닉 네제 세겐 지휘)와 라흐마니노프 ‘마라톤’을 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5개를 한 공연에서 연주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후대에 순전하게 음악적인 마일스톤으로 남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예술적 사건으로 보다는, ‘스포츠’, ‘서커스’로서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오트는 유자 왕처럼 레퍼토리가 넓고 유려한 ‘기예’를 선보이는 아티스트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트가 베를린 필과 합을 맞춘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듣고 그녀가 누구보다 음악의 본질을 건드릴 줄 아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섬세한 감정선은 그녀의 최고 장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내 감상은 착각이 아니었다. 내 최애 앨범 중 하나인 ‘Nightfall’에서 오트의 라벨과 드뷔시 해석은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나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번 KBS교향악단과의 협주에서 보여준 베토벤 3번 협주곡도 위와 같은 감상의 연장선을 자아냈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대중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우리들의 영원한 ‘레니’의 합작일 것이다. 그 둘은 베토벤의 강하고 남자다운 ‘German Sound’를 잘 포착해 냈다. 그리고 그 둘의 해석은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오트의 연주는 이와 전혀 달랐다. 예를 들어, 2악장 Largo의 도입은 지메르만의 ‘기계적 완벽성’에서 탈피한 내면의 감수성의 적절한 폭발이었다. 그렇다고 지메르만보다 힘이 렸다는 것도 아니다. 3악장 론도 중, 원래는 관현악과 독주부의 ‘티키타카’가 되어야 될 부분에서 피아노의 에너지가 전체 오케스트라를 심하게(?) 압도할 정도였다. 

작가의 이전글 짐머만 피아노 리사이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