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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마무라 Jan 22. 2024

슬플 권리도 빼앗긴 인생의 메마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2024.01.18 국립극장(달오름극장)

곱씹을수록 마음이 아파온다. 가뭄 뒤의 분수처럼, 눈물이 샘에서 일어난다.

연기는 눈물마저 메말라버린 노인들이 내뱉는 헛된 말들의 연속이었다. 이어령의 말이 생각났다. “늙은이는 죽고 젊은이는 늙는다.”

연극은 지루했다. 그러나 연출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치밀하게 의도된 지루함이었다. 지긋지긋한 삶에서의 권태, 고도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그 막연함은 연극 러닝타임 전반에 걸쳐져 있다. 테이프를 하도 반복해서 듣느라 이제는 늘어져 버린 것처럼, 습관이 되어버린 삶은 느슨한 관성이 되어버렸다. 그 점을 러닝타임 내내 피곤할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파토스가 없는 연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감정의 정화 또는 배설은 전무했다. 오히려 보고 나면 오만가지의 잡생각에 속이 체한 것처럼 가슴이 짓눌리는 기분이다.

이 연극은 리얼리티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관념의 이미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각각의 인물이 관념의 담지자인 동시에 그것의 화신이 되려고 분투하는 느낌이다. 관객은 지극히 무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인물을 신의 관점에서 피조물을 내려다보듯이 본다. 우스꽝스러움에 우리 모두가 웃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서 우리의 추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 창피함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니었는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무대와 객석 사이에 견고한 연극이었다. 아마도 관객들 자신들은 고고와 디디와는 다르다는 자기기만적인 암시가 친 장벽이리라. 어쩌면 신도 우리의 기도를 보면서 깔깔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눈에는 고고와 디디의 모든 것이 멍청해 보여 내내 비웃었듯이.

무미건조했던 연출과 연기. 그러나 신구 할아버지의 커튼콜에서의 눈빛이 내 마음에 잔상처럼 떨어지지가 않으면서 감정이 북밭 치는 건 어쩐 일인지.

분명 지루했는데,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건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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