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의 숭고함과 아름다움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영화를 전부 감상한 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본 리뷰에서는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여러 특징적 요소를 면밀히 분석하여 서술하였습니다.
<나우시카>의 배경을 간단히 요약하면, 인간이 오염시킨 지구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연과 이런 자정 과정에서 고통받으며 자연에 대항하게 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산산이 부서졌음에도 여전히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자연의 자정 능력엔 경외감이, 살기 위해 싸워야만 하는 인간들만 남은 미래의 상황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마스크가 없으면 금세 위독해질 정도로 오염된 부해, 푸른 풀밭이 아니라 누런 모래로 뒤덮인 세상, 엄청나게 거대한 곰팡이들(포자)의 모습과 회복하는 자연을 지키는 오무들. 매우 설득력 있고 디테일한 작품의 짜임새는 우리를 보다 잘 이해시키고, 이를 통해 안타까움을 한층 더한다. ‘진짜 있을 법한, 현실적이고 안타까운 미래’가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반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우시카>는 선형적인 플롯을 따라 전개된다. 주인공인 나우시카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중후반부부터 바람 계곡 상황과 나우시카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지만 금세 다시 큰 줄기로 합쳐진다. 이런 심플한 플롯은 독특한 캐릭터와 설정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감독을 대변하는 나우시카를 가능한 한 많이 보여주는 데 있어 최적의 플롯이기도 하다.
나우시카
먼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우시카이다. 나우시카는 <모노노케 히메>의 ‘아시타카’가 생각나는 완성형 주인공이다.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용기를 가졌으며, 모든 백성의 선망을 받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적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육각형 주인공이다. 이런 ‘완성형 주인공’의 장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행보에 의문을 가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나우시카는 감독 미야자키의 생각을 대변하는 인물이기에, 관객이 그 신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인물로 설정된 것이다.
또한 나우시카는 작중 유일하게 자연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인물이다. 모두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부해의 포자들을 직접 안전하게 기르기도 했고, 부해가 알고 보니 자연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자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한다. 자연과 생명을 향한 나우시카의 관심, 애정, 인내와 적극성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을 위해 필요한 태도를 보여 준다. 나우시카가 작중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보이는 희생들은 마음을 울린다. 이 작품의 주제인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목숨까지 주저 없이 내던질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나우시카는 관객에게 온몸으로 드러낸다.
즉 나우시카는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기에 최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우시카에겐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가진 선함 이상의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은 그녀의 생명과 자연을 향한 신념일 것이다.
크샤나
토르메키아의 지도자이다. 작중 등장하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이고, 마지막에 나우시카를 지켜보며 변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변화할 수 있음, 갈등이 상당 부분 해결되었음을 보여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 <나우시카>에서의 비중은 주인공 나우시카가 압도적이었기에, 다른 인물들에 대한 서술은 최대한 생략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한 고작 두 번째 작품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첫 번째 작품은 루팡 3세) 작품의 모든 요소가 매우 뛰어났다. 작화는 흠잡을 데 없고, 밀덕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감독인 만큼 각종 군용 기계의 빼어난 디자인을 잘 살렸다. 연출 또한 최고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페지테, 토르메키아의 전투기와 나우시카의 비행기가 함께 구름 속에서 다투는 장면은 비주얼부터 연출까지 정말 대단한 성취였고, 마지막 화해의 장면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명불허전 히사이시 조의 음악 또한 다른 모든 지브리 영화에서 그랬듯 <나우시카>를 더욱 빛낸다.
인간이 처참히 파괴한 자연, 그런 자연을 향해 목숨까지 내던져 가며 간곡히 사과하는 나우시카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오무(자연)의 화해. <나우시카>는 주인공인 나우시카의 희생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얼마나 숭고한 가치인지 보여 준다. 한 인물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켜내려고 하는 것이 자연과의 관계라는 사실은 공존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관객들에게 생생히 전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삶을 보여 준다. 노란 들판에서 춤추는 나우시카의 모습은 그녀가 그토록 바라 왔던 그것이었으리라.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연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우시카는 인간이 자연과 살아감에 있어 착취, 지배가 아닌 이해와 공존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기서 ‘함께 살아가자’라는 <모노노케 히메>의 대사가 생각났고, 미야자키 감독의 일관성 있는 자연관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나우시카처럼 희생하는 사람이 없어도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라는 것, 동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이용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편 자연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이게 미야자키가 <나우시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