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픔은 다시 사랑으로 다가와
제34 화
어둡던 원희의 얼굴이 희경을 본 순간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희경의 얼굴은 순간 굳어졌다.
초췌해진 원희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몹시 안쓰러워 보였다.
자신의 이별편지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거란 생각을 뇌리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미안했다.
한없이 미안했다.
원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은 후회가 되어 돌아왔다.
희경이 마음 아파할 동안 원희는 몸과 마음이 모두 상처가 되어 버린 현실 앞에 희경의
마음은 천근만근이 되어 버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죄책감을 느꼈다.
일주일을 굶고 술만 마셨다던 원희는 천천히 조금씩 짬뽕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희경은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까끌거려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한 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친구 대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직 서로가 아쉬움이 많은 것 같은데 당분간 좀 더 만나보면 어떨까? 그런 후에도 아니다 생각되면
그때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서로 싫어서 헤어진 것도 아니고... 안 그래?"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약속이나 한 듯 들고 있던 젓가락을 모두 동시에 내려놓았다.
희경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갈등을 했다.
어렵게 결정한 것이었는데 또다시 반복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망설여졌다.
원희의 집에서 만나는 것을 반대했었고, 또다시 반대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결코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았다.
원희는 아무 말 없이 짬뽕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대식은 원희의 밝은 얼굴을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제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풀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리를 비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제 그만 가 볼게. 둘이 얘기 잘해봐."
원희에게 기회를 잘 살려보라고 귓속말을 남긴 채 밖으로 나갔다.
원희는 희경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런 후에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 꼭 다시 만나고 싶었어. 아니, 보고 싶었어."
더듬거리듯 희경에게 말을 건넸다.
"나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
희경은 보고 싶었다는 말은 생략했다.
꾹 눌러 참았다.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희망고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원희는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될까?"
.................................
잠시 침묵이 흘렀다.
'힘들게 마음을 정리했는데... '
짧은 순간에 희경은 고민하고 갈등했다.
다시 만나게 되면 이제는 정말 헤어지기 힘들 것만 같아서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대답은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집안 반대는 어쩌고? 반대가 심한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조금 더 사귀면서 알아가다 보면 부모님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내가 설득할 자신 있어. 그러니 제발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줘. 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원희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솔직하게 말했다.
희경은 원희의 그런 태도에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마음이 다시 조금씩 열려갔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줘. 부탁이야."
원희는 쐐기를 박듯 다시 힘주어 말을 했다.
희경은 결심을 했다.
'그래, 다시 한번 만나 보자.'라고 생각했다.
원희에게 바로 말을 했다.
"그래, 우리 다시 만나 보자.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
희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원희는 활짝 웃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가 잘할게."
원희는 얼마나 좋은지 두 팔을 번쩍 들어 하늘로 향해 쭉 뻗었다.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의 환호성을.
희경도 원희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어색했던 표정은 온대 간데없고 원희에 대해 접었던 마음이 다시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걷는 길 위에 햇살이 가득 쏟아져 내렸다.
쏟아지는 햇살처럼 두 사람의 가슴에도 사랑의 빛이 가득 차올랐다.
두근두근 설레었다.
희경의 얼굴이 어느새 발그레 빛이나 반짝거렸다.
원희는 데이트 후엔 언제나 희경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희경이 대문 안까지 들어가고 난 후에라야 집으로 돌아갔다.
원희 어머니는 아들에게 희경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집은 어디고 뭐하는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등등.
원희는 운행에 다니고 있고 가까운 동네에 산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 호의적으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언제 한 번 집에 데려와라. 알굴 한 번 보자."
원희는 뛸 듯이 기뻤다.
"예, 그럴게요. 보시면 마음에 드실 거예요."
원희는 몹시 흥분된 상태로 희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말씀을 전했다.
한껏 들뜬 원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희경도 기분이 좋았다.
다행스러웠다.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았다.
원희 부모님 허락도 중요하지만 희경의 부모님 허락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원희는 아직 대학생이고 군대를 안 갔다 왔다.
모르긴 해도 희경의 부모님도 반대할 게 불 보듯 뻔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한편 오빠 영호는 동생 희경을 소개해 달라는 친구의 성화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친구에게 동생을 소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동생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또 소개한다고 해도 잘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잘 되면 다행이지만 자칫해서 잘못되면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차일피일 핑계를 댔다.
희경은 원희를 만나면서 생각도 많아졌다.
과연 인생의 동반자로 괜찮을지... 이모저모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고민도 많아졌다.
원희는 심성이 착했다.
희경은 그 순수함에 이끌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산적일 수도 있는데 적어도 원희는 그렇지 않은 듯하였다.
무엇보다 자상하고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마음에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림도 잘 그리고, 가끔 적어주는 시도 희경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사람이라면 적어도 속을 썩일 것 같지는 않았다.
희경은 날이 가면 갈수록 원희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 밖의 조건은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만나도 또 보고 싶을 만큼 사랑의 굴레는 더욱 단단해졌다.
한 발만 빠졌던 것이 이제는 두 발 모두 그 늪속에 빠져 버렸다.
원희는 외모와 달리 묘한 매력을 가진 친구가 아닌 남자로 희경의 가슴 한 편에 자리 잡았다.
*다음 화에 게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