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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 선 도피자 Mar 12. 2024

젊은 과학자의 명상록(2)
-뭣도 모른 채 물리학

'수용소 군도'. 사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너무나도 자주 들어본 책이기에, 부끄럽지만 읽어보지도 않고 내 글의 서두를 장식하고 싶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솔제니친이라는 러시아의 문학가가 구 소련 시절 운영되었던 노동교화소 '굴락'에 수감되었고, 이를 계기로 자신이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내용들과 그곳의 생활을 기록한 글이다. 


자신의 삶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단 과거의 경험들은 세월의 풍파를 맞고 미세한 감정과 섬세한 사고의 선들이 뭉툭해져 버린다. 아름다운 조각상이 파도에 침식되어 윤곽만 남아버리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더해 지금 되돌아봐도 아픈 기억들은 그야말로 쳐다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니, 아무리 멀리서 바라본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을까? 그러니 회고록은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 글이다. 어쨌든, 갈 길이 멀다. 


물리를 하겠다고 직접적으로 결정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물리 선생님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물리학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탐구하는 것에 욕심을 가지고 있어 왔다. 이 개념의 학문적 궁금증은 처음으로 점, 선 면의 개념을 배웠을 때 느꼈던 모순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더 이전으로 되돌아가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열이 날 때마다 눈을 감으면 눈앞에 나타나는 잔상들을 쫓아다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쨌든, 어린 시절 고등학교 선생님의 한마디에 치기 어린 결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앞으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탐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고등학교 때는 오로지 "물리"라는 과목만 공부하려고 하고 대학에도 물리학과 말고는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허세였던 게, 나는 이해도 하지 못하는걸 열정만 가지고 책을 읽어댔지만(글자만 읽었다.), 반면 진짜 똑똑한 친구는 다른 과목들도 열심히... 그리고 물리도 아주 잘하더라...

그렇게 대학에 와서 꿈에 그리던 물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수학에는 재능이 별로 없어서, 수리물리를 정말 못한다는 것이었다. 개념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에는 자신 있다. 수식을 따라가면서 물리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까지도 할만한데, 수식을 직접 풀어내는 건 영 소질이 없었다. 나는 천상 문과 체질이었던 것인가... 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탐구하는 물리학(입자물리학)을 공부할만한 재목이 안된다는 것을 대학교 2학년에 깨달았다.


그래도 어떠냐, 기왕 물리가 재밌어서 시작한 거,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 학부연구생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 문제를 전문연구원 복무를 통해 해결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과거에 원소주기율표를 다루면서 화합물을 합성하는 것에도 흥미가 있었던지라(고등학교 이야기지만, 생략) 물리학계의 3D 업종에 발을 들이게 돼버렸다. 고체물리학 중에서도 화학 물질들을 다루면서 결정형 샘플을 만들고 분석하는,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물리학계의 3D 업종이다. 

결정(crystal) 사진

어쨌든 그때부터 박사학위까지는 매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잘 되는 듯싶었다. 내가 낸 아이디어로 석사 때 실험, 분석까지 하면서 논문도 써봤고, 전문연구원도 좋은 기회로 잘 마무리하는 듯싶었다. 그런데 대학원생활, 특히 박사과정생이 모두 그렇듯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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