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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얻고 빛을 잃다(2/2)

에잇투파이브

by 머신러너

애당초 육아를 하지 않는 육아휴직을 기획했던 것이 문제입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이 소중하니까' 혹은 '남자도 육아에 동참해야 하니까'와 같은 선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해서 창작자의 삶을 맛보고 싶었습니다.─'악용'이라고까진 말하지 않겠습니다. 육아를 하고 있으니 말이죠. 소심한 증거라면 돌잡이 아이가 엄마 품이 아닌 아빠 품에 안깁니다─직장 생활하면 '에잇투파이브'라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양쪽에 |8과 5|가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죠. 어찌나 단단하고 높은지 두드려 보아도 끄떡없고 올려다 보아도 목이 아플 정도로 끝이 없는 에잇투파이브입니다.

직장 생활 10년 넘도록 이 벽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작은 창작의 씨앗을 틔우기 위한 틈을 모색하면서 이 벽의 공고함을 느꼈습니다. 노트에 0시부터 23시까지 선을 긋고 8과 5(에잇 투 파이브)는 도려냅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창작 시간을 욱여넣어보았습니다. 5를 지나 퇴근길 여행이 시작되면, 집에 도착하는 5에서 7까지 두 토막은 메트로에서 열리는 북클럽(MBC: Metro Book Club)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두 세 토막은 가족과 함께합니다. 그리고 남은 11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어쩔 때는 세 토막 많게는 다섯 토막을 무엇이라도 만드는 작업에 썼습니다.

잠이 부족하여 몸이 힘드니 그제야 '에잇투파이브'가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네요. 그 벽 바깥쪽 세상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마치 무지개 쫓는 남자가 되어 월담하는 꿈을 꾼 것입니다. 그곳에 빛이 있을지 어둠이 있을진 모르지만.


육아휴직으로 에잇투파이브 바깥세상으로 월담했습니다. 확실히 밝은 빛이더군요. 어두운 새벽에 출근해서 다시 어두운 저녁에 퇴근할 때 느낄 수 없었던 비타민D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벽 바깥이라고 해서 창작의 꿈까지 밝히지는 못합니다.

'이론적으로' 아이를 등원시키고 하원하는 그 사이에 창작의 등불이 환하게 비칠 것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이론이지 실제는 아닙니다. 항상 공학에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작동해야 하는데 실제는 항상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연애를 글로 배울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론적으로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없는데 실제는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아이 등하원에서 느끼는 요즘입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가는 작은원은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한 달 이상이고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도 끽해야 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도 어린이집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나옵니다. 혹여나 아침에 일찍 깨서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잠들어 버리면 그날은 어린이집 땡땡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이 병원을 자주 가는지 몰랐습니다. 이틀에서 삼 일 후에 다시 내방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단골 멘트가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병원에 가면 적어도 한 시간은 옴짝달싹 없이 기다림입니다. 큰원이 감기에서 나을라치면 그다음 작은 원이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이렇게 두 원의 2인 감기 계주는 약 한 달간 지속됩니다.


이렇게 한 달은 창작하는 가게 셔터를 내리고 휴업입니다. 그곳을 비추던 전구에도 먼지가 쌓여서 빛을 본 지 오래입니다. 빛은 비타민D만 남긴 채 다시 켜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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