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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변호사 May 21. 2024

28년을 버텨낸 우리, 사회에 남길 내공이 있다는 것.

그걸 서로 확인해 주는 활동을 해보자. 인정-가장 훌륭한 격려.

Q : 안녕하세요. 저희는 노수석추모사업회 집행부 입니다. 당신은 28년간 노수석추모사업회에 회비를 내 오셨는데요. 


사실 2006년 10주기 정도 까지는 어느정도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가고, 학교를 마치고 어떻게 사회생활 해야 하나 서로 맥주를 나눠마시며 많은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어느새 지금은 CMS회비를 내는 정도로 많은 회원들의 활동이 그쳐 있죠. 그렇다고 당신이 갑자기 노수석추모사업회가 싫어졌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에요. 뭐랄까, 생활의 근거지가 직장과 가정으로 옮겨가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진 고향같은 것이죠. 고향이 그립기는 하지만, 1년 혹은 수년에 한 번 그리울때 찾아가는 것이지, 자주 가지는 않잖아요. 자주 고향에 가면 고향사람들과 싸움이나 하기 마련일 수도 있지요.


그런 당신에게 묻습니다. 노수석추모사업회란, "노수석"으로 상징되는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려는 모임일 텐데요, 당신이 사회에 전파하려고 하는 - (엄기호의 표현에 따르자면, '전승'하려고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A : 민경인 읽는 사람들 사무처장이 2024. 2. 6. 노수석추모사업회 이사회 강연때 이사들에게 던진 질문이었지요. 사실 잘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후, 노수석이라는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을 계속 해봤습니다. 하나의 정답은 없을것 같아요. 제 생각은, '노수석이라는 한 희생자 개인이 가지는 가치 보다는, 노수석이 사회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을 기억하고 공익적인 사회활동을 계속해 보려고 노력했던 회원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것 같아요.


이수연(96)은 노수석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 학생운동 활동가로 살아가기도 했고, 대학을 마친 이후에는 대학교육연구소에 들어가 교육재정문제를 계속해서 연구하는 활동을 해왔지요. 지금은 가족과 건강상의 이유로 대전에서 대외활동은 안하고 있지만, 그는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될까"라는 무거운 마음도 한켠에 가지고 있습니다. 좀 편안해 져도 좋을 텐데 말이죠. 윤성일은 노수석의 동기로서, 대학이후 마포 지역사업가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25년 가량을 지역운동을 해 왔습니다. 이수연(92)는 추모단체연대회의 상근자로 오래 일하다가, 성남여성의전화 상근자로 자리를 옮겨 그곳의 대표로까지 일했지요.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는 황희준이나, 새로운사회를위한 연구원을 거져 최근에는 정의당 심상정의원실에서 일하는 이수연(00)까지, 노수석추모사업회는 "공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 버텨온" 많은 회원들을 품고있습니다.


만일 노수석추모사업회가 '노수석열사의 죽음과 제사를 함께한 공동체'를 넘어서,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할 가치가 있다면, 저는 이와 같이 "공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 말씀 잘 들었습니다. "버텨낸"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네요. 그냥 공적인 사회활동을 열심히 해 오신 것 아닌가요?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왜 "버텨낸"이라는 표현을 쓰시나요?


A : 제가 그랬나요? 아마도 무의식중에 그런 표현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기획단회의에 온 8명이나, 이사회 분들의 얘기를 들어 보아도, 사회를 전진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의제와 방향을 설정하고 활동을 해 왔지만 그 성과가 좋다고 할 수 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중적인 영향력이 커졌다던가, 저희들이 제기한 의제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던가...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성공했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던것 같아요.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진보'라고 한다면, 노수석의 죽음 이후 28년간의 저희들의 활동에서 느끼는 감정은 '진보의 방향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지만, 더 이상 진행할 에너지가 많지 않다'는 감각인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더 활동을 이어 나간다면, 그것은 의미는 있겠지만 나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 되겠죠. 내 활동이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되뇌어 보지만, 마음 한켠에는 이 활동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고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어찌 보면, 80년대에 형성된 진보적 세계관과 그 파생이념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저희들의 활동은, 그대로 유지하기에는 이와 같은 자기모순을 품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자기기만을 수반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Q : 그렇군요. 그래서 뭔가 이전까지의 담론이나 활동형식과는 다른 방식의 활동을 해 보고 싶으신 건가요? 남들이 욕하거나 말거나 뭔가 우리끼리 재밌는거 해보자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건가요?


A :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사회단체인 참여연대의 회원이 1만 6,000명 이라는데, 그 회원의 70%가 50대, 60대라고 하더라고요. 40대도 별로 없고, 20, 30대는 거의 없는 것이 참여연대의 현실입니다. 다른 단체는 말할것도 없겠지요. 저희들이 지탱해 온 사회운동이 수명을 다했다는 감각을 다들 어렴풋이 가지고 있습니다. 2024년 총선은 그걸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기도 했지요. 정의당은 문을 닫게 되었고, 과거 2004년의 민주노동당 같은 활력을 조국혁신당이 보여주는가 하면, 개혁신당은 당대표선거에 70%의 당원들이 참여하여 활기찬 당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518 묘역 참배때 과거의 활동가들은 하지 않았던 모든 광주영령 묘역표지석을 청소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틀을 벗어난 재미를 추구해 보고 싶습니다. 민경인 강사도 지적했듯이, 의미/재미/성장의 조직을 만들자고 할때 재미란, 감각적인 재미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하는데서 나오는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반추하고 새 시대의 감각을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으니 [월례 독서(강사) 포럼/ 분기 독서(강사) 포럼]사업을 해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노수석추모사업회 활동 중에 가장 평가가 좋았던 사업이 [장학금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었다는 고백이 많습니다. 노추사의 사회공헌개인/단체 선정을 보통 하듯이 '노수석사회공헌기금 신청하세요'형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올해는 어떤 사회적 가치에 중점을 둘까'라는 기준을 토론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죠. 앞서 질문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노수석추모사업회 회원들 가운데 각자의 자리/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의 얘기를 드러내는 연속인터뷰를 기획하고, 이걸 모아서 책으로 남기는 사업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기획할 때, 앞서 말한 과거 우리의 담론에 대한 비평과, 28년간 버티는 과정에서 각자가 형성한 내공을 담아내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 인터뷰집은 꽤 의미있는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체로 28년간 진보운동의 한 사례집이자 평가집이 될 것이고, 만일 인터뷰가 의미있게 진행 된다면, 새로운 활동의 방향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요. 


Q : 네. 말씀해 주신 몇 가지 사업만 잘 해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듯 합니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 기존의 노추사는 재단으로 남고, 새 기획단이 사업단이 된다는 형식의 변화때문에 혼란이 있는 듯 한데요.


A : 노수석열사의 의미에 대해서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개인 노수석이 가진 가치를 확산하는 작업 보다는 노수석의 희생을 기억하고 버텨낸 사람들의 28년간의 작업, 그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자면 - 과거의 활동과의 단절이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열사"라는 호칭을 남기는 한,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것 아닌가, 이런 논의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열사의 기일을 진행하는 작업과 재정적 후원작업정도로 기존의 추모사업회의 역할은 축소하고, [노수석추모재단]형태로 전환하면 어떨까 고민했던 것이죠. 그리고 노수석추모재단이 100% 출원하는 사업단으로 [000000]이라는 새 사업단체를 출범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가치와 활동 위주의 토론이 되어야 하는데, [재단 - 신규 사업단]이라는 형식에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요.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되고, 그래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재단 - 신규사업단으로 형식을 변경하는 논의는 중단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그건 작당모의 기획단 논의에서 전혀 중심주제가 아니었거든요. 핵심은 '노수석이라는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죠. 


노수석추모사업회는 사실 2006년 10주기 이후에는 정체된 단체였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던 것을 2015년 권현준 사무국장이 [재학생과의 연결]을 핵심으로 리부트를 한 단체죠. 재학생들과 노수석프로젝트라는 사업으로 연결을 강화하고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예 재학생들이 이사장과 사무국을 맡는 형식으로 방향전환을 기획하기도 했었구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기존에 노수석열사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그동안 CMS로 조직의 근간을 이뤘던 기존 회원들은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면도 있었죠. 이걸 지적한 것이 김성훈 2019년 사무총장 이었구요. 김성훈총장은 그래서 다시 회원사업 위주의 활동을 기획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제대로 집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작당모의 기획단은 이제, 노수석프로젝트 위주의 활동에서 성과로 냈었던 [사업 중심의 단체]를 이어 가려고 합니다. 만일 96년을 직접 기억하는 사람들의 동문회처럼 활동의 중심을 가져간다면, 00이수연 같은 회원들이 참여할 공간은 적어지겠죠. 00이수연은 명시적으로 [사업중심의 단체]를 지향하기도 합니다. 이제 그 '사업'의 내용으로, 그동안 버텨낸 회원들의 내공을 담는 사업들이 시작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5년 정도 활동할 프로젝트가 확정되고 나면 회원들이 육아에서 해방되는 시점이 다가올 것이고, 그 때는 회원들의 참여도가 현재의 연세민주동문회 처럼 높아지면서, 또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걸로 생각됩니다.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더 얘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Q :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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