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아이드소울 아니고요 브라운 아웃이래요
누군가
일이 얼마나 많았으면 좋겠어?
라고 묻는다면, 나의 답변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크게 관심 없을 테니 ㅋㅋ 알아서 답해보자면 일단 '0(Zero)'은 아니다. 미친놈처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0과 100중 굳이 택하라면 후자다. 아무도 안물안궁인 정답을 공개한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친한 동료랑 티타임 한 번 정도 하고,
네이버로 이런저런 가십 기사들 이십 분 정도만 보고,
집중해서 풀로 일하다 끝마치거나
10% 정도 일이 남았을 때 퇴근하는 것
이다.
세상천지에 이런 회사는 없다. 간혹 한 달에 하루 이틀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내내 이럴 수는 없을 거다. 아예 빡세거나 아예 놀거나, 둘 중 하나다. 그 둘 중에 아예 빡센 곳을 선택하겠다는 내가 이상한가.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필요에 근거해 나의 쓸모를 확인해 오곤 했다.
그렇게 간단한 품의 하나 쓰는 일도 쩔쩔매던 내가, 이제는 생판 모르는 일을 맡겨도 어떻게든 해볼 수는 있을 만큼 성장했다. 나한테 일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비단 가족과 친구들 때문이 아니어도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해도 괜찮겠구나 싶은 또 하나의 이유를 제시해 주었다.
요즘 들어 일이 엄청 많은 것은 아닌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지쳐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나는 단언하며 살았다. 내게 번아웃(Burn-out)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사실 나는 엄청난 격무에 시달려 본 적이 15년 간의 직장생활을 통틀어 영업일 기준으로 채 두 달도 안 되는 것 같다. 맡은 직무의 속성도 그러했고, 언제나 '완성도보다는 납기'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했기에 큰 고민 없이 일을 잘 쳐내왔던 것 같다. 그러다 정말 지치면 눈치 1도 보지 않고 휴가도 곧잘 썼다.
최근 석 달간 직장에서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어딘지 모르게 고장난 사람 같다. 정확한 직무를 밝힐 수는 없지만, 번아웃에 반대되는 보어아웃(Bore-out)이 올 리도 없을텐데. 내 일은 이런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가 10이라고 한다면 내가 맡은 일은 대부분 3~4 정도로 마음먹고 출근했다가 실제로 3~4 정도하고 퇴근하면 되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일이 많아 죽을 것 같다는 사람들이 보통 8~9 정도 마음먹고 출근하다 10까지 가는 식이다. 절대적인 업무량으로 따지자면 내 일이 결코 많다고 볼 순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터지는 경우가 이따금 발생한다. 그때의 업무량을 7~8 정도라 치면 역치가 낮은 일(3~4를 기대한 상황에서)이었기에 피로도는 더욱 극심해진다. 예상이 8이고 실제가 10인 경우보다 예상이 3인데 실제가 7인 경우가 더 기빨릴 수도 있는 셈이다. 여기에 매뉴얼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꽃같은 사람이 걸릴지, 똥같은 사람이 걸릴지 알 수 없어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번아웃도, 보어아웃도 아니면 도대체 뭘까.
(오늘 제 글은 몹시 불친절하군요. 콘텐츠 마케팅의 핵심은 이탈 방지인데, 지금 몇 번이나 이탈을 유도하는 것인지 ㅋㅋㅋㅋ)
세상에, 이거다! 브라운아웃(Brown-out)이구나.
업무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업무 타임라인이 늦어지거나, 사소한 실수가 잦아지는 것 같다
회의나 목표수립 등 팀 활동에 소극적으로 참여한다.
의사결정이나 함께 논의하는 자리에서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거나 팀이 성장하는 것을 봐도 감흥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명의일세. 허준이야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진단은 정확한데 처방이 아쉽다. 처방전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처방전을 쓸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게 조직생활이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쌓이면 꼭 상사나 조직과 부딪치게 된다. 뉴비일 땐 시켜서 하는 일에 대해 큰 반감이 없었다. 잘못에 대한 지적도 당연하겠거니 했다. 그렇게 수많은 합리와 성공의 레퍼런스를 쌓았고, 나만의 노하우라는 게 생기기도 했다. 이따금 노하우를 살려 좋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때마다 인간이라면 으레 가진 인정욕구가 최대치로 발현됐고, 그걸 충족해 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제 내 아이디어는 후배들에게 여실히 밀리고, 이해가 안 가는 의사결정에는 찍소리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이다.
이게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는 거지? 왜 이따위 결정을 하는 거지?
생각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 건가. 그렇다고 딱히 야망캐라거나 보직 욕심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팀장 자리에 욕심 없다고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엄청 욕심 있는 줄 알까봐 늘 몸과 입을 사린다.
아마 나도 그 자리에 가면 똑같아지겠지
가늘고 길게 오래가는 편이 나랑 잘 맞는다. 그런데 도통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의사결정의 세계는 참을 수 없어져만 간다. 왜 야수의 심장을 한낱 가축의 몸에 심어주었느냔 말이다!!!
아주 혹시... 딱 일하는 데만큼만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넘어서 버린 것은 아닐까. 머리만 너무 굵어져 버린 게 아니냔 말이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익힌 일의 기술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일을 받으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할 수 없는 일은 고사나 위임, 할 수 있는 일은 매진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의 선후, 경중, 인과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따라 감정은 최대한 배제한 채 처리한다.
그런데 이놈의 회사는 대개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에게 넘겨 버린다.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선후와 경중, 인과는 수시로 바뀌며 그 어느 일 하나도 온전히 처리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피드백과 논공행상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결부돼 6살짜리 우리 아들도 안 그럴법한 유치한 이유들로 (물론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일에 진심이었던 이들을 차별하고 배제한다.
나는 그런 것들에 지쳐버렸다.
가끔 신입사원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적성에 맞고, 이 커리어를 통해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라고 구라와 희망사항 사이 어디쯤에 서서 외쳐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신서유기」에서 보던 고요 속의 외침이 떠오른 건 왜일까. 코빠뜨리긴 싫지만, 냉소만 늘어갈 뿐이다.
일에서 자아를 찾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 나는 일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았던가. 내 일이 인류애나 사회 발전에 아주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던가. 내 일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인가. 어쩌면 일면식 한 번 없었던 누군가를 괴롭게 만드는 일은 아니던가.
그래도 너는 돈을 벌어
'생계를 해결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있잖아
바보야! 그건 일의 의미가 아니야. 목적이지. 일에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든 부여라도 할 수 있으려나.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하나쯤은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6시에 맞춰 기상알람은 울려대고, 헐레벌떡 지하철에 올라 미어캣마냥 자리에 앉은 이들 중 나보다 빨리 내릴 것 같은 관상을 스캔한다.
보아하니 고시생! 노량진에서 내리겠군
책을 폈지만 졸고 있는 친구에 대한 안쓰러움보다 저려오는 내 오금이 급선무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고시생이 아닌 외대생. 다정하게 배신당한 나는 겨우 내려 출근 도장을 찍는다.
일은 하기 싫어 죽겠지만 나도 모르게 보고서의 오탈자를 검수하며 불릿이 층위에 맞게 잘 들어갔는지 고민한다. 어떤 일에서는 효율을 좀 더 고민하고, 어떤 일에서는 동료의 딥빡에 대해 마음 쓰며, 또 어떤 일에서는 완성도에 집착하기도 한다.
일의 의미는 모르겠고, 이렇게 그냥 한다 일을. 그렇게 일을 했더니 오늘 동료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맞다. 사실 오늘 글은 자랑하려고 쓴 거다.(이걸 여러분 아니면 누구한테 보여주겠어요 ㅠ)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일하는 나’라는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까지는 누군가의 필요에 근거해 쓸모 있는 사람 같긴 하다.(그게 꼭 윗사람일 필요는 없지, 암암)
행여나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카이저소제급 반전에 기분 나빠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