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보고
이 글에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감상 전이거나 감상 중인 분들은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도 모를 거예요.
이 글을 부탁했던 동료가 있다. 실망시키고 싶진 않지만,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은 내 깜냥으로 이해하기 버거운 작품임을 고백한다. 수많은 해석 콘텐츠를 보고서 어렴풋이 이해하는 듯했지만, 디테일한 상징과 행간을 모두 읽어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기승전결이 완벽한 촘촘한 짜임새로 감상을 담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번 감상문은 생각나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써보려고 한다.
#. 「진격의 거인」은 러브 스토리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읽혔다. 전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남자주인공 에렌 예거(이하 에렌)와 그를 죽여야 하는 여자주인공 미카사 아커만(이하 미카사). 애꿎게도 이 둘은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연인 사이다.
'모든 거인의 구축(驅逐)'이라는 사명이자 운명을 안고, 에렌은 자신의 무지내전근을 쉴 새 없이 끊어져라 깨물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가졌다. (이 모습에서 아무리 꿈속이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목을 베는 카마도 탄지로의 결기가 겹쳐 보였다) 거인의 박멸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는 건, 곧 언제라도 주저 없이 떠날 수 있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미카사는 그런 에렌이 털끝하나라도 상할까 노심초사하며 에렌을 수호한다.
떠나야만 하는 에렌, 그런 에렌을 늘 기다리는 미카사. 의도했는지 공교로운지 여자주인공 미카사의 이름은 스페인어로 '나의 집(Mi casa)'이라는 뜻을 지녔다. 미카사는 자신이 에렌을 죽여야만 비로소 에렌이 더 이상 자유로부터 벗어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에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다녀와, 에렌
모든 시간을 엿볼 수 있었던 에렌은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이런 결말을 선택해야 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이 잘리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결연함과 두려움이 아닌 아련하고 애틋한 표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미카사를 눈에 담으려 애쓴다. 에렌이 이런 결말을 선택한 이유가 인류의 구원이라기보다 사랑의 완성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다정한 탓일 게다.
#. 유독 어떤 단어나 문장이 특별한 억양을 만나면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아로새긴다.
ただいま(타다이마, 다녀왔어)
일본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애니를 볼 때마다 이 대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찡하달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이유로, 떠나고 싶지 않지만 떠나야 하는 사람들, 떠나면서도 분명히 다시 올 것을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다녀왔다'는 한 마디에는 묘하게 서글픈 감정이 있다.
이 작품에서 '다녀옴'은 단순한 무사귀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파라디 섬과 마레 제국에는 미카사와 에렌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많은 전사와 병사들이 있다. '다녀왔다'는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피보다 진한 물을 나눈 동료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 살아남고자 인간이길 포기했던 작중 수많은 캐릭터들이 간절히 하고 싶었던 말, '다녀왔어'에는
집에 가서 쉬고 싶다
가족들을 보고 싶다
아무 일 없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나의 죄와 과오를 지워내고 싶다
와 같은 복잡다단한 맥락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진격의 거인」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가면서 작가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아마 아니겠지만, 뜨거운 가슴속 열정을 자극하려 수도 없이 외친 "心臓を捧げよ!(심장을 바쳐라!)"보다도 사샤 브라우스(이하 사샤)의 "ただいま(다녀왔어)" 한 마디에 꽂힌 나는 제발 심장만은 안 바쳐도 되니 그들이 그저 무사히, 안온하게 다녀오기를 응원하며 긴 여정을 바라보았다.
#. 한때 크리스천이었던 내가, 이 작품을 보고 구약 성경 한 챕터에 기록된 '욥'이라는 인물이 떠오른 것은 어떤 연유일까.
어느 날, 사탄이 하나님께 내기를 건다. 욥이라는 가진 것 많고, 믿음이 깊은 신자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면 하나님을 욕할 것인지 아닌지. 사탄은 하나님의 컨펌을 받고 사고와 전염병으로 욥의 재산을 모두 빼앗고, 자식들까지 몰살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사탄은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 욥에게 질병을 내린다면 결국 하나님을 욕하게 될 것이라며 또 한 번의 시험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한 번 더 이를 허락하고, 사탄은 욥에게 피부병을 내린다.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욥을 향해,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그냥 죽어 버리라고 악담한다. 욥은 태연자약하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끝끝내 욥은 지쳐만 가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결국 자신을 위로하려 찾은 친구들로부터 '네가 잘못할 만한 짓을 했겠지'라는 비난까지 받자, 욥은 자신의 결백을 하나님 앞에서 직접 항변하게 해 달라 절규한다.
이윽고 하나님이 욥의 앞에 나타나고, 욥은 자신의 짐작에서 비롯된 원망을 자책하고 회개하며, 나 따위를 위해 친히 강림까지 해주신 당신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고백한다. 결국 하나님은 결국 욥에게 더 큰 복을 내린다.
이래도 내가 좋아?
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향한 사랑을 입증받고 싶어 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경멸이라는 감정이 왜 그리 쉽게 솟구쳤는지.
내용이 절반쯤 전개될 때까지 원작자에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경멸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어머니가 죽고, 동료들이 죽고, 죄없는 사람들이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다, 이 콘텐츠는 안에 있는 캐릭터들에게도, 밖에서 지켜보는 시청자에게도 끊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신념처럼, 사상인 듯 주입한다. 그래서 나중엔
에라 모르겠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로 해라
반쯤 포기한 채로 서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이를테면 에렌이 '자유의 노예'가 된 것, 미카사 스스로 에렌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선택을 하면서도 "다녀와, 에렌"이라고 말하는 것,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하고 고향이 쑥대밭이 되어 본 슬픔을 아는 에렌이 같은 방법으로 마레국을 망가뜨리려는 결심을 한 것, 거인을 소멸시키는 가장 확실하고도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인 지크의 안락사 계획을 거부하고 자기 사람들을 지키며 분란의 싹을 잘라내고자 더욱 극단적으로 인류의 80% 절멸이라는 막대하고도 불가피한 희생을 선택한 것(에렌아, 타노스도 반밖에 안 죽였다 ㅠㅠ), 자신을 학대하여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프리츠 왕을 대신해서 선택하는 죽음만을 비로소 죽음으로 받아들인 유미르까지.
극의 흐름만 따라가다 보면 끊임없이 등장하는 모순형용을 받아들이기 참 힘들었다. 그저 선택의 이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념이 깃들어 있다 믿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모든 수수께끼는 에렌이 시조의 거인으로서 위력을 발휘할 때 밝혀진다. 우리를 미치도록 슬프고 억울하게 만들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면에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고자 치밀하게 계산된 행적들이 있었다는 반전이 「진격의 거인」 작가를 원망스럽게도, 리스펙하게도 만드는 포인트다.
자유를 갈망하는 에렌의 배후에는 알고 보니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는 선택을 감행해 거인에 대한 분노를 키우도록 긴밀하게 설계된 미래의 에렌이 모든 때, 모든 곳에 존재했다. 한층 더 들어가면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코딩돼 버린 자유의 노예 에렌과 그런 에렌에게 사랑이라는 이유로 속박된 미카사. 이 둘 역시, 돼지를 풀어주고 프리츠 왕에게서 "너는 자유다"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사냥꾼들의 희생양이 돼 노예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던 유미르에게 자신을 자유케 해 줄 후손으로 선택받았다. 미카사가 비로소 영원한 사랑과 자유를 위해 에렌의 목을 베자, 유미르 역시 프리츠 왕에 대한 애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욥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로, 궁극에는 타노스로 수많은 억까와 불행을 감당한 명실상부, 이 작품의 주인공 에렌 예거에게는 위로와 경의를, 이런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창조해 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에게는 경탄과 찬사를 동시에 보내는 바다.
#. 원작자 이사야마 하지메의 메시지와 설득하는 방식 모두, 도통 납득할 수 없는 지점도 많다.
무구한 얼굴로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의 얼굴이 왜 이렇게 선한 걸까
그렇게 순박한 얼굴로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육전을 벌이는 이 거인들에게 죄책감이라곤 없는 걸까
그리샤 예거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무지의 거인들이 마레 제국 내 차별받는 에르디아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작가의 치밀함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내가 아무리 입체적인 캐릭터를 좋아한다지만, 이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차마 보기 힘들 정도의 불행한 서사를 입히지는 않았어도…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작가에 대한 앙탈(?)을 부려보자면 작품 중반부까지는 너무나도 보기 힘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몇몇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아니었다면, 완주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했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이, 그것도 쉽게 죽어나갔다. 인간의 욕심과 그로 인한 전쟁의 잔악무도함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지만 좀 더 스무스한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지.
캐릭터 소모(?), 낭비(?)도 심했다. 초반에 등장했던 조사병단 캐릭터들은(에르드, 페트라, 보자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지만 여성형 거인의 격투술 한 방에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고, 한네스도, 사샤도, 케니 아커만도 존재감에 비해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램지와 하릴...... 정말 이렇게 소모시켜 버릴 캐릭터인 거야?! 하아 ㅠㅠ
그치만 작가에게 가장 화가 났던(?) 순간은 에렌과 히스토리아 사이에 갑분사(랑) 모드를 넣어 히스토리아 복중의 애 아빠가 에렌이 아닌지 헷갈리게 했던 장면이다. 시조의 거인과 왕가의 핏줄이 만나야 부전의 맹세니, 땅울림이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무슨 농부 애를 임신했는지, 에렌 애를 임신했는지 교묘하게 헷갈리게 한 점이 아주 찝찝하다. (실제로 히스토리아와 에렌이 꽁냥대자 싸늘하게 지켜보고 있는 미카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에렌은 정말 미카사를 사랑했거든
에렌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아르민을 좌표로 불러 죽기 전 허심탄회하게 진심을 털어놓는 순간은 실로 찌질한 흔남의 전형을 보여준다. 온갖 멋있는 척, 결연한 척은 다 해놓고 미카사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적어도 10년은 자기만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아유, 그렇게 목소리를 깔고 세상을 어쩌고저쩌고 하던 에렌이 너무 짜쳐져서 놀랐지만 또 얼마나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까, 짠했던 장면이기도 했다.
#. 최종화를 보고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가 많은 유튜브 콘텐츠를 섭렵했다. 가장 재밌었던 건 침착맨의 <진격거월드컵>.
나의 최애캐는? 우선 2위부터. 2위로는 에르빈을 꼽겠다. 에르빈은 "신조오 사사게요!"의 현현이자 아이콘이다. 거인을 물리칠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기꺼이 동료의 목숨도(?) 미끼로 쓸 수 있는 희생정신과 냉정함. 조사병단 최고의 전력인 리바이를 플레이어로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 단장 자리를 한지에게 넘긴 판단력. 에르빈은 말 그대로 이상형이자 이상향에 가까운 캐릭터다.
에렌이 자유의 노예라면, 에르빈은 호기심의 노예다. 이 점이 내겐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마 많은 여성독자들은 최애캐로 리바이를 꼽겠지만 이 자는 왠지 슬램덩크의 서태웅, 윤대협 같아서 정이 안 간다. (내가 리바이보다 나은 건 키밖에 없다) 하지만 리바이에게 가장 감화된 한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에르빈과 아르민 모두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 거인 척수액을 아르민에게 주사한 장면이다.
아직 리더십에 어울릴 만한 판단력을 보여주지 못한 아르민과 최소 10인분 이상의 몫을 해낼 에르빈 중 한 명을 살리라면 누구라도 에르빈을 선택했을 것이다. 더욱이 에르빈은 리바이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동료이자, 리바이가 유일하게 존중하며 복종하는 상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바이는 아르민을 살린다. 바로 아르민의 목표가 벽 너머에 있는 바다를 보고 싶다는 데 반해, 에르빈의 목표는 그의 대범한 스케일과는 정반대로 고작 에렌의 생가 지하실에 가보는 것까지였다는 이유에서다.
장기전이 될 거인과의 전쟁에서 역사의 진실만 알면 싸울 의지와 동기를 잃어버리고 말 에르빈보다 앞으로의 조사병단을 이끌 재목으로 아르민을 택한 리바이의 선택, 그 선택이 결국 에렌을 멈춰 세웠고 인류를 구원하기에 이르렀다. 어찌하다 보니 리바이 칭찬이 되었는데, 죽기 직전,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도 손을 들어 선생님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호기심의 노예, 에르빈이야말로 하나도 멋지지 않은 의도로 멋짐을 뿜뿜한 매력캐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1위는? 단연 쟝 키르슈타인(이하 쟝)을 꼽겠다. 의외라고?! 침착맨은 쟝을 코니1, 코니2 수준으로 치부했지만 ㅋㅋㅋ 쟝은 가장 현실적인 판단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휴머니즘을 보여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우선 쟝은 시종일관 리스크가 큰 조사병단은 꿈도 꾸지 않고 안락하고 신변이 보장되는 헌병단에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훈련받는다. 하지만 절친 마르코가 남긴
넌 약하지만 그래서 우리들을 지휘하는데 더 어울려
다 같이 약한 우리의 모습을 넌 잘 알고 있으니까 다들 널 따를 거야
이 한마디로 각성해 곧 죽을지도 모르는 조사병단에 들어가고, 잠시 헌병단의 안락함을 만끽하러 예거파에 몸담았다가 결국 땅울림을 막기 위해 한지 조예(이하 한지)를 따라나선다. 다분히 인간적이지 않은가.
쟝은 아르민에는 못 미치는 지성, 미카사나 라이너에는 못 미치는 입체기동술을 보유했지만 가장 육각형의 인재에 가깝다. 아르민의 부재 시에는 아르민을 대신할 수 있는 전술가로, 조사병단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로 아커만 일족도 아닌 주제에, 최후에는 시조의 거인 목을 날려버리는 리바이급 대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쟝을 1위로 꼽은 건 그의 인성 때문이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미카사의 연인, 에렌과는 태생부터 다르기에 사사건건 그에게 꼽을 주지만 '네가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사람인지 증명해 보라'는 냉철한 판단 하에 끝까지 에렌을 지켜내는 의리, 그리고 미카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시리즈 내내 단 한 번도 미카사에게 결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우직함.
짝사랑 많이 해본 남자는 안다. 저렇게 마음을 감춘 채 그것도 바로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쟝, 실로 대단한 사내다. 아마 미카사가 에렌의 사후에 쟝을 남편으로 받아들인 건 이런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남자에 대한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고.
신나서 글을 쓰다 보니 분량과 난이도 조절 모두 실패한 수능 출제자 같다. 「진격의 거인」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 미친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싶겠지만, 한 번이라도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내 얘기에 맞장구치며 언제라도 밤새도록 떠들 수 있을 것만 같은 글을 쓰려 애썼다.
차마 두 번 볼 용기도, 엄두도 나지 않는 작품이지만 언젠가는 꼭 한 번 더 보리라 다짐해 본다. 이런 수작을 볼 수 있게 해 준 한이람 작가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엄청 짜임새 있는 글을 기대하셨겠지만 이 따위로밖에 쓰지 못해 송구하다며, 양해도 구해 본다.
잘 다녀왔어요ㅡ 정말 재밌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