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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Jan 16. 2024

Chocolat

예민함의 최고점.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종목.

나에게 있어 초콜릿은 최악의 종목이었다. 

INBP를 하면서 처음 초콜릿 템퍼링을 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어색한 초콜릿 템퍼링 도구에 손을 어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초콜릿은 작업대에서 줄줄 흐르고 있었고, 교수님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식은땀이 흐르던 그날. 그때부터 초콜릿 공포증이 생겼다.


초콜릿은 '온도조절'이 가장 중요한 품목이다. 초콜릿의 종류, 제조사별로 다르겠지만 적정 온도의 녹이는 온도까지 완전히 잘 녹여준 후, 요구하는 온도까지 내려주고, 다시 작업성과 광택을 위하여 온도를 높이는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1. 잘 녹이기. 

커버춰초콜릿은 코인 형태로 가공되어 나온다. 그 상태의 초콜릿을 중탕을 하여 매끈한 상태로 녹여주어야 한다. 온도가 높으면 초콜릿이 꾸덕하고 중심이 타 있는 경우도 있다. 덜 녹이면 템퍼링이 완전히 깨지지 않아서 새로 하는 템퍼링이 잘 먹지 않을 수 있다.


2. 잘 내리기. 

초콜릿별로 요구하는 온도까지 덩어리 없이 매끈하게 잘 녹였다면, 잘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템퍼링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대리석법, 접종법, 수냉법. 나는 주로 대리석법을 사용하는 편이다. 가장 안정적으로 온도가 떨어지는 기법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일 년 동안 이것만 하다 보니 가장 익숙한 방법이다.

대리석법으로 설명을 하자면, 아주 깨끗한 (물기가 하나도 없고, 알코올로 소독이 완전히 된) 대리석 위에 녹은 초콜릿을 부어준다. L자 스패출러, 초콜릿용 스크래퍼를 이용하여 대리석에 넓게 펴준다. 그리고 곧바로 스패출러와 스크래퍼를 이용하여 모아준다. 이때, 넓게 펴진 초콜릿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당연히 그 상태로 굳기 시작한다. 긁히지 않은 부분이 없도록 전체적으로 펴고 - 모으는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 주면, 요구하는 온도까지 내려갈 것이다. (만약 너무 내려갔다면, 그 초콜릿은 회생하긴 어려우니 다시 녹여서 템퍼링을 깨 주고 템퍼링을 다시 해야 한다.)


3. 다시 잘 올리기.

초콜릿의 온도를 다시 올리는 이유는 광택과 작업성을 위해서다. 내려간 상태의 초콜릿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꾸덕해지고, 완성된 초콜릿에 광택이 적다. 

여기서 또 주의해야 할 점은, 너무 많이 올리면 또 템퍼링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조금씩 온도를 올려서 최대 온도 직전까지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만 하면 초콜릿이 뚝딱 완성되지는 않는다. 만약 봉봉초콜릿을 만들게 되면, 디핑용 가나슈 (혹은 앵테이외흐)를 만들거나, 몰드에 색을 입혀서 물라주 해준 후 가나슈를 채우고 다시 막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 제과점이나 드물게 존재하는 초콜릿 가게에서 1구 (대략 지름 3cm)에 2,000원가량의 가격에 초콜릿을 판매하는 이유이다. 

애초에 초콜릿의 가격이 높다. 가장 유명한 깔리바우트, 발로나 등의 초콜릿 회사의 커버춰 초콜릿의 단가가 높고, 가나슈 안에 들어가는 생크림, 초콜릿, 혹은 견과류 프랄리네 (구운 견과류와 캬라멜을 곱게 갈아낸 페이스트)의 단가도 생각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초콜릿을 주로 만드는 사람의 수는 적은 편이다. INBP 우리 기수만 하더라도 초콜릿만 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한 명~두 명 정도였다. 초콜릿이 생소하기도 하고, 아직 한국에서는 많이 소비되지 않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작년 1년은 유명 제과점에서 초콜릿만 만들면서 일했다. 많아봐야 500g의 초콜릿을 사용하던 내가 5kg을 템퍼링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덕분에 템퍼링을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곧 다가오는 발렌타인데이. 시즌 메뉴로 초콜릿을 만들어볼까 싶다. 

그렇게 싫어하던 초콜릿이어도 계속하는 이유는, 성공했을 때의 만족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완성 후 반을 칼로 갈랐을 때 마음에 드는 두께, 반짝거리는 표면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 한동안 초콜릿 작업을 하면서 후회도 엄청 할 예정이다. 아마 이 말을 가장 많이 할 것 같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이지.'


그리고 제품을 다 완성하고 나면 이 말을 가장 많이 할 듯하다.

'이래서 내가 요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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