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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필 Aug 25. 2024

90년 전통의 프랑스 빵집에서 배우는 단순함의 위대함

3대째 이어져 오는 가장 프랑스다운 빵집 <포알란> Poilâne 이야기

긴 여름휴가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일곱 살 첫째는 파리로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 1위로 늘 바게뜨를 꼽는다.

바캉스 기간 동안 동네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빵집인 에릭 카이저(Eric Kayser)에서 쎄레알 바게뜨를 사서 딸에게 안겨주고, 이번에는 나의 최애 빵을 사러 갈 차례.

근처 모노프리 슈퍼로 가 포알란(Poilâne)의 호밀빵, 빵 드 세글르를 바구니에 담았다.

모노프리 슈퍼에서 팔고 있는 포알란 빵들


1932년에 문을 연 포알란은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파리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빵집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심플 이즈 더 베스트"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점점 화려하고 다채로워지는 파리의 빵/디저트 씬에서 미쉬(사워도우빵), 호밀빵, 플란, 애플타르트, 크로아상, 버터쿠키 정도의 메뉴만 유지하며 창업 때의 수공 레시피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포알란의 상징인 미쉬(miche/사워도우) 빵은 돌로 간 밀가루, 게랑드 소금, 물과 천연효모, 이렇게 단 네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꽁빠뇽(Compagnon), 즉 동반자라고 불리는 숙련된 제빵사들은 지름 30cm 크기의 커다란 빵반죽을 일일이 손으로 빚고, 여기에 포알란(Poilâne)과 빵(pain)을 뜻하는 <P> 자를 큼지막히 새긴다.

이렇게 완성된 빵반죽은 화덕 오븐 안 뜨겁게 달구어진 돌판 위에 올려져 한 시간 동안 구워지는데, 빵 한 덩이의 무게가 1.9kg에 달한다.


파리 근교 비에브르(Bièvres)에 위치한 메종 포알란에서는 매일 미쉬만 2500개가 만들어진다. 

이 빵들은 포알란의 파리 지점 다섯 군데와 2000년에 연 런던 지점뿐만 아니라 파리의 큰 슈퍼마켓과 수많은 카페, 식당에도 들어간다.

미쉬 하나는 워낙 크다 보니 슈퍼에서는 미리 슬라이스 된 1/4개 혹은 반 개 포장을 판매한다.

급할 때는 슈퍼에서 포알란 빵을 사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포알란 빵집에 직접 가는 걸 좋아한다.

포알란 빵집에 직접 가면 당일 만들어진 빵을 원하는 만큼 무게로 달아 살 수 있고, 자르지 않고 통으로 구입한 미쉬는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갈 때 가져가는 단골 선물이기도.

(포알란의 사워도우빵은 일주일까지도 상온보관 가능하고, 냉동보관 했다가 상온에 잠시 두거나 바로 토스트 해 먹어도 좋다.)

심지어는 <P> 대신 원하는 이니셜을 새긴 미쉬를 미리 주문도 할 수 있어, 연말 파티 때 인기가 좋다고 한다.


포알란에 갈 때는 늘 "오늘은 오늘 먹을 빵만 사서 나온다!" 결심하지만, 가게를 나올 때는 늘 양손에 주렁주렁 달고 나온다.

미쉬는 기본이고, 나의 최애 빵인 빵 드 세글르는 미쉬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호밀빵이다.

짙은 색감과 거친 식감이 특징이고, 씹으면 씹을수록 커피콩처럼 구수하면서 쌉싸름한 맛이 난다.

조금 특별한 날에는 빵 오 노아(pain aux noix)를 산다.

호두가 26% 들어간 사워도우빵인데, 고소한 호두 씹는 맛이 좋고 치즈, 샤커트리와 정말 잘 어울린다.  

플란(flan)은 바삭한 패스츄리지에 우유와 설탕으로 만든 커스터드 크림을 채워 화덕에 구운 디저트인데 많이 달지 않아 좋다.

대망의 타트 오 폼(tarte aux pommes), 사과 타르트는 반드시 가게를 나서며 바로 베어무는 것이 비공식적인 룰이다.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겠는 날은 차라리 다음 기회에 사기로 미룬다.

재료는 사과, 밀가루, 버터, 물, 소금, 계란이 다인데 어쩜 이렇게 바삭하고 신선하기까지 한지! 

단순해서 더 아름다운 이 맛을 온전히 즐기려면 꼭 사자마자 먹어야 한다.


포알란의 빵 드 세글르, 호밀빵
라클렛 먹는 날에는 포알란의 호밀빵과 호두빵이 빠질 수 없다.




나에게 그냥 동네 예쁜 빵집이었던 포알란이 특별해진 건, 8년 전 우연히 읽게 된 뉴요커 매거진의 글 때문이었다.

"Bread Winner"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나의 관심을 끈 건 현재 오너인 아폴리나 포알란의 인생사였다.

아폴리나 포알란의 부모님은 그녀가 18살 때 헬리콥터 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아폴리나는 평소처럼 제빵소로 내려가는 대신 아버지의 사무실로 올라가 아버지의 책상 앞에 앉았다.

그렇게 그녀는 포알란의 경영을 맡게 되었다.  

이듬해 하버드대에 합격해 미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녀는 포알란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내내 낮에는 학업을, 밤에는 프랑스에서 팩스로 도착한 매출기록을 회계정산하며 포알란을 지켰다.

그리고 아폴리나 포알란의 포알란은 천이백만 불 (한화 158억 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쯤되면 뉴요커 매거진의 글 제목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그녀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족과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 (breadwinner)이 되었고, 결국 빵의 승자 (bread winner)까지 되었으니까.


아폴리나 포알란의 조용한 팬이 된 후로 지금까지, 가끔 올라오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엿보거나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보곤 한다.

빵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의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그녀의 내면은 잘 구워진 포알란 미쉬빵의 겉면처럼 단단해 보인다.

아폴리나 포알란이 언젠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말이 기억난다.

"달은 제빵사의 해이다. 달은 내 마음에 특별한 별이다." (The Moon is a baker's Sun. The Moon is a special star to my heart.)

매일 아침 7시 15분 신선한 빵을 내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녀는 해 대신 달과 함께 일해왔을까.




아이들과 포알란에 들릴 때면 직원들이 꼭 푸니시옹(punition)이라고 하는 버터 비스킷을 아이들 손에 하나씩 쥐어준다.

"이거 너한테 주는 벌(푸니시옹)이야" 하면서.

이보다 더 환영받는 벌이 어디 또 있을까.

밀가루 또는 다른 곡물가루, 설탕, 버터, 계란으로만 만들어진 포알란의 비스킷은 포장도 예뻐서 파리를 찾은 손님들에게 자주 선물하는데, 나를 위해 산 적은 거의 없다.

티타임 때 한 두 개씩 꺼내 먹어야지 하고 사놓고서는 그 자리에서 끝장을 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유명 셰프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르보비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로 이사한 이유 중 하나로 "포알란에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가고 싶어서"를 꼽는다.

가장 단순하면서 질 좋은 재료로 멋 부리지 않고 만들어진 포알란의 빵과 파티서리에는 기본의 미학이 있다.



<빠리냠냠 레시피> 포알란 빵으로 만드는 타르틴 2종


포알란의 빵을 활용하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다.

식사빵은 물론이고, 좋은 가염버터를 사다가 쓱쓱 발라 먹기만 해도 좋고, 며칠 지나 빵이 건조해지면 계란과 우유를 섞은 물에 담가 빵뻬르뒤 (프렌치토스트)로 만들 수도 있다.

아폴리나 포알란은 어렸을 때 일주일 동안 먹고 남은 딱딱한 빵 위에 치즈 녹인 것을 올리고 올리브유를 뿌려 먹는 것이 주말 가족 전통이었다고 한다.


내가 애정함을 넘어서 생활의 일부분인 음식을 소개한다. 

포알란의 빵 (보통 미쉬나 호밀빵)으로 만드는 두 종류의 타르틴 (오픈 샌드위치)이다.


첫 번째는 땅콩버터+바나나+초콜렛의 조합이다.

땅콩 100%로 만든 땅콩버터여야 하고, 바나나는 적당히 무른 것이 좋고, 초콜릿은 다크초콜릿이 좋다.

아침, 점심, 간식, 디저트, 모든 포지션에 능한 올라운더로, 지난 몇 년간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먹어왔다.

땅콩버터, 바나나, 초콜릿 타르틴


두 번째는 요즘 같은 무화과철이 시작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는 쉐브르치즈+무화과+호두의 조합이다.

양젖으로 만든 쉐브르 치즈는 독특한 산미가 특징인데, 무화과의 진득한 단맛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고소한 호두를 올려 에어프라이어기에 치즈가 살짝 녹을 정도만 돌린다.

꿀까지 조금만 뿌려 먹으면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음~ 소리가 난다.

쉐브르 치즈, 무화과, 호두 타르틴

두 종류의 타르틴 모두 포알란 빵으로 만들었을 때, 그 진가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거친 빵은 쉽게 불지 않고 꼭꼭 정성스레 씹어 먹을 수밖에 없어 모든 재료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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