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쓰멍'(doucement)과 '싸쥬'(sage)
"On fait doucement."
"Elle est sage!"
프랑스에서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들 중에
"두쓰멍"(doucement)과 "싸쥬"(sage)가 있다.
두쓰멍은 가볍게, 부드럽게, 살살, 천천히 등의 뜻으로 통용되는 단어이다.
공원이나 크레쉬(어린이집)에서 3세 이전 유아를 대하는 부모, 선생님, 누누(보육도우미)들은
"농!(Non!)", "안 돼!" 대신 "두쓰멍!"을 먼저 외친다.
아이가 물건을 던질 때, 친구를 때릴 때, 미끄럼틀 위에서 위험하게 뛸 때,
아이의 팔이나 몸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말해준다.
두쓰멍, 가볍고 부드럽게, 살살 천천히 다시 해보자.
아이가 기고 걷기 시작하면 세상은 위험하고 아이가 하면 안 되는 것 천지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데다가 부모와의 애착을 우선적으로 필요로 한다.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연령의 아이에게 너무 날카롭고 강한 "안 돼!"는
아이를 가르치고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보다는 깜짝 놀라고 무서운 정서만 남길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말은 그것을 내뱉는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지 않던가.
안된다는 말을 반복할수록 정말 육아는 안 되는 일만 가득 찬 암울한 일이 되어버릴까 두려웠다.
갓 돌 지난 아이에게 나쁘고 위험한 행동은 알려주되 '내가 너를 사랑하고 아껴서 알려주는 거야'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는 바로 이 '두-쓰멍'이었다.
'사알-살, 부드-럽게'를 일러주다 보면 그걸 말하는 나의 행동과 감정도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졌다.
(대락 3세 이후, 학교에 들어갈 쯤부터는 부드러운 "두쓰멍~"보다 단호한 "농!"이 점점 우세를 차지하게 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는 뜻을 눈빛과 말투에 꽉꽉 담은 "농!"은 옆에서 보는 나 같은 어른까지 순간 쫄게 만드는 권위가 있다.)
싸쥬는 얌전하고 착하고 말 잘 듣고 말썽 부리지 않는 아이를 얘기할 때 쓰이는 말이다.
어른 입장에서 "좋은 아이"를 통칭하는 표현인 셈이다.
아이에게 "너 참 싸쥬하구나" 하면 배시시 웃는 아이의 얼굴을 만날 수 있고,
부모들은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에게 "오늘 우리 아이가 싸쥬했나요?"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쌰쥬를 그저 순종적이고 조용한 아이를 강요하는, 수동적 공격성이 담긴 단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가 있다.
아이들을 주어에서 빼면, 싸쥬(sage)는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임신 전후 과정과 출산까지도 산부인과 의사 대신 산파, 즉 싸쥬팜(sage femme)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혜로운 여성'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Sois sage, " 싸쥬하라고 말할 때는, '너의 현명함과 지혜를 이용해 판단하고 행동하라'라는 뜻이 담겨있는 셈이다.
부모가 중요한 대화중이거나 식당 등의 공공장소에 있을 때 아이에게 쌰쥬하라고 미리 일러주는데,
이는 '협박'이라기보다는 아이에게 스스로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고, 주변의 다른 이들 또한 생각해 달라는 '협조' 요청이다.
따라서 싸쥬한 아이들은 기가 죽고 풀이 죽어 큰소리 못 내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되려 그들은 밝고 예의 바르며 타인들과 공존하는 법에 익숙하다.
나는 아이들과 늘 한국말로 대화하지만 '싸쥬'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불어 그대로 쓸 때가 많다.
나에게 자칫 '얌전해라', '착하게 해야지'라는 말습관이 생겨 '착한 아이 증후군'을 만들까 하는 괜한 염려 때문이다.
종종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네가 잘 생각해 줘"라고 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나에게 '두쓰멍'과 '싸쥬'는 프랑스인들이 가진 아동에 대한 개념과 육아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고, 내 육아 일상에서도 유용하게 잘 활용하였다.
두 표현 모두 결국은 그것을 말하는 부모를 향하는 말이 아닐까.
모두의 조금 더 부드럽고 지혜로운 육아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