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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Dec 01. 2024

땡스기빙데이를 회사 일하는데 써버렸다

회사 일과 커리어 개발

매년 그랬듯 이번 땡스기빙데이 또한 오랫동안 기다려온 연휴였다. 미국은 연말이 되면 쉬는 날이 급격하게 많아지는 편이다. 한국의 추석과 그 개념이 비슷한 11월 말경의 추수감사절 연휴가 그 시작이다. 많은 회사들이 목요일과 금요일을 쉰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사람들이 추수감사절이 있는 그 주 자체를 통째로 쉬거나 혹은 하루 이틀 정도는 휴가를 내서 주말 포함 5일 이상을 연달아 쉬도록 일정을 조절하곤 한다. 그래서 땡스기빙 전후로 회사가 급격하게 조용한 분위기로 바뀌곤 한다.


반면 나는 공식적인 이틀의 휴가를 제외하면 땡스기빙 전후로 휴가를 쓰지 않는다. 이유는 사람이 몇 없는 사무실에 와서 일을 하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일을 하는 기간에 일을 하는 것은 함께 일을 하면서 다양한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에 많은 이메일 연락에 답장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토론을 하고, 다양한 미팅참석을 하다 보면 실제로 집중해서 일을 하고 뭔가를 이루어내기가 힘들 때도 있다. 혼자 조용히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없는 실험실에 혼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것 또한 나름대로 운치 있는(?) 일이다.


올해 땡스기빙데이 연휴에도 연휴 전날부터 회사가 매우 한산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 하나를 시작했다. 그런데 혼자서 일을 하다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그 솔루션을 찾아내는 일은 도파민이 분비되는 일이다. 아마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풀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하다 보니 도파민 분비가 평소보다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일찍 퇴근을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일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 내가 시작한 일을 완전히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적게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최소 3-4일은 해야지 완성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다. 사실 땡스기빙 연휴 때 많은 계획들이 있었다. 회사 일 말고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땡스기빙 연휴 때 하려고 해 두었던 모든 계획들도 엉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내 머릿속은 회사 일로 가득 차 있어서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던 지경인 것이다. 결국 회사 컴퓨터를 다시 켰다.


결국 땡스기빙 전날 밤부터 시작해 땡스기빙을 온전히 회사일을 하는데 쓰고 그다음 날 새벽녘이 되어서야 내가 계획한 일은 끝났다. 3-4일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던 일인데 하루종일 일에만 집중하니 생각보다 일을 빨리 끝내고 다행히도 땡스기빙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이웃에 사는 친구집 방문과 그다음 날의 약속은 깨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휴를 꼬박 회사 일을 하는데 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봤다. 내가 특별히 회사에 애정이 많아서? 결코 아니다. 내 글을 여러 번 본 사람은 알 테지만 나는 이직시도까지 했던 사람이다. 물론 사정상 이직이 불발되기는 했지만. 내가 휴식 없이 일만 열심히 하는 열정가라서? 물론 이것도 아니다. 물론 나는 나의 직업에 많은 애정이 있기는 하지만 "해야지" 해놓고 미뤄놓은 회사 일들도 산더미처럼 많으며 무엇보다는 나는 쉬는 날을 무척 좋아한다. 아무런 계획 없이 빈둥빈둥 거리는 시간마저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이토록 회사 일에 몰입한 이유는 결국 내가 이 일을 잘 해냐면 내 커리어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이다. 커리어 개발이란 결국 내 이력서에 쓸 것을 추가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생각한 대로 되어서 이것이 내 성취가 된다면 내 이력서에 괜찮은 한 줄을 더 쓸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휴 동안 쉬면서 하던 일을 중단하고 돌아왔을 때 기억이 잘 안 난다던가 하는 등의 이유로 이 성취가 사라질까 봐 그토록 일에 몰입했던 것이었다.


미국 이력서에는 자신이 졸업한 학교, 현재 직장과 직급뿐만 아니라 내가 그 회사를 다니면서 했던 일과 성취 또한 자세하게 적게 된다. 때문에 어떤 학교를 졸업했고 어떤 직장에 어떤 직급으로 얼마나 오래 머물렀냐도 보긴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고 무엇을 성취했냐를 더 중요하게 보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회사에 머무르면서도 더 좋은 일, 더 많은 성취를 위해 개개인이 노력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일을 너무 많이 준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나의 커리어 개발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더 주지 않는다고 컴플레인하는 경우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회사에서 지금 하는 일이 결국 자신의 잡마켓에서의 가치를 올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회사 일이 곧 내 커리어 개발, 즉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좋은 문구를 넣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 입시 전문 강사가 이런 말을 하는 걸 우연히 들은 기억이 있다. 중고등학교에 가면 최상위권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 중하위권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 왜 그럴까? 최상위권 학생들은 이미 공부를 잘하니 좀 덜해야 하고 따라잡아야 하는 중하위권 학생들은 더 열심히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이야 말로 정말 뛰어난 성실성과 두뇌를 타고나서일까? 그 강사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이미 좋은 공부습관과 공부방법을 아는 학생들이다. 때문에 그들은 공부를 하면 하는 만큼 성적이 오른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보상이 따라오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중하위권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공부습관과 공부 방법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 봤자 결과로 나오지 않으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불성실한 게 아니다는 설명이었다. 탁월한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일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고 그것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수 있으며 그것이 좋은 이력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혹은 회사 내에서도 더 좋은 팀으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나에게 직접적인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히 해봤자 회사만 좋은 일이고 나에게는 득이 되는지 안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나의 귀한 시간도 회사의 귀한 자원도 낭비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많이들 하곤 한다. 이 사회에 많은 좋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들 말이다. 물론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기분 좋고 보람 있는 일이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서 하는 일은 보람은 될지언정 강한 동기부여는 되지 않는다. 


내가 더 성장하려면 더 이기적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것을 빼앗고 나쁜 일을 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내 커리어 개발을 하겠다는 이기심 말이다. 이것만이 나에게 그 누구도 주지 못하는 강한 동기부여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혹여 이것은 해도 나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 이런 일을 하게 되면 과감하게 그것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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