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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Dec 08. 2024

전력전자 엔지니어라는 나의 직업

전문성과 개성

누군가에게 나를 직업적으로 소개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나는 나의 직업을 Power electronics engineer (전력전자 엔지니어)라고 소개를 한다. 어느 회사에서 직급이 무엇이다라는 식의 자기소개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내가 속한 회사나 직책보다는 내가 하는 일 그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직업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전력전자 엔지니어는 전력을 이용해서 돌아가는 모든 기계를 만들 때 항상 필요한 사람이다. (물론 모든 회사가 전력전자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다른 분야 엔지니어이지만 전력전자에 적당한 지식이 있는 엔지니어들이 그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전력은 전압과 전류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기계마다 그리고 심지어 한 기계 안에서도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크기와 형태가 모두 다르다. 예를 들면 전기차 안에서 사용되는 전압과 휴대폰 안에서 사용되는 전압이 같지 않다. 전기차 안에서도 모터를 구동하는데 쓰이는 전압과 자율주행을 소프트웨어에 필요한 전압이 다르다. 때문에 이렇게 전력의 전압, 전류를 중간에서 변환해 주는 기기장치가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기기장치를 만드는 사람들을 통칭 전력전자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이렇게 전압과 전류를 변환하고 제어하는 기계장치들은 주로 회로 보드 안에 전력반도체가 올려진 형태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아무 기계나 열어보면 초록색 기판 위에 여러 반도체들이 올라가 있는데 그중에 일부가 전력을 변환하는 전력반도체들이다. 때문에 전력전자 엔지니어가 일할  있는 회사는 무한정 많다.  


우선 나를 포함해 많은 전력전자 엔지니어들은 전력반도체 회사에서 일한다. 전력반도체회사에서 전력전자 엔지니어들은 직접 반도체를 만든다기보다는 주로 실제로 이 전력반도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피드백을 주게 된다.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은 어떤 전력반도체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전력이 사용되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전력전자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가령 자동차 회사에서는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 많은 전력전자 엔지니어가 필요하고 태양광 전력 사업에서도 전력전자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데이터 센터에도 대량의 전력이 사용되기 때문에 IT회사들에서도 많은 전력전자 엔지니어를 뽑는다. 그래서 전력전자 엔지니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갈 수 있는 회사가 무한정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력전자 엔지니어들이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전문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전력전자 안에도 다양한 세부분야가 있으며 자신이 그중에서 어디에 특화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와 함께 한 연구실에서 석사, 박사 공부를 한 친구들 중에서도, 그리고 직장에 와서 만난 친구들도 각자 다른 전문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와서야 DC-DC 컨버터라는 것이 나의 적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로 이것에 특성화를 시키기도 결심했다. 전압은 크게 DC와 AC로 나뉘는데 나는 그중에서 DC전압을 다른 크기의 DC 전압으로 바꾸는 컨버터에 나를 특성화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DC-AC 컨버터에 특성화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는 배터리에 좀 더 특성화되기도 하며 또 다른 친구는 전기차와 같은 곳에 들어가는 전기모터에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특성화시키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 하나에 자신의 한 가지에 특화시키기보다는 보다 넓은 범위에서 전체적인 전기 설계를 하는 것에 자신을 특성화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어떤 것에 특성화될 것인가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개인에 따라 무척이나 다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전기차 업계에서 오로지 전기차에서의 전력전자 엔지니어로 자신을 특성화시키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전력 반도체 업계부터 전자기기업계, 전기차 업계 등등으로 자신의 업계를 끊임없이 변경하면서 다양한 업계에서 계속해서 적응해 가면서 커리어를 키우기도 한다. 또 다르게는 DC-DC 컨버터를 전문으로 하는 엔지니어라도 그 DC-DC 컨버터 안에서도 단 하나의 컨버터에만 집중해서 평생 동안 그것을 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넓은 범위의 DC-DC컨버터를 총 아우르는 일을 하기도 한다. 너무 좁은 범위를 자신의 전문성으로 한정해 버리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자신이 이직할 수 있는 회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다. 반대로 자신의 전문성이라는 범위를 너무 많이 넓혀 버리면 그 어느 것에서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렇게 비슷한 일을 하는 전력전자라고 하더라도 각자 개개인은 자신이 어떤 것에 특화되어 있는지가 매우 많이 다르다. 다만 그럼에도 우리가 모두 전력전자 엔지니어라고 묶일 수 있는 이유는 서로 간에 전문성은 다소 다르더라도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질문할 수 있을 정도의 대화 가능한 정도의 전문 지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어디에 특성화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직장에서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주어지는가가 중요하지만 미국에서는 이직이 아주 흔하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직장을 바꾸거나 직장 안에서 일을 바꾸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나와 같이 일하는 팀에서도 나처럼 DC-DC컨버터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특화할 것인가를 정했다면 그 분야에서 정말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문제는 아무리 내가 나의 전문성의 범위를 정한다고 해도 이것이 끝이 없다는 것에 있다. DC-DC 컨버터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실험실에서의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하고, 시뮬레이션 툴도 다양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며 다양한 이론에도 빠삭해야 한다. 물론 이론에도 너무나 다양한 이론이 있다. 제어이론에도 밝아야 하고, 다양한 전력 회로를 해석할 줄 알아야 하며, 회로 보드를 제작하는 지식 또한 풍부해야 한다. 평생 동안 일하고 공부해도 다 마스터하지 못하는 방대한 양의 지식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정말 다양하게 자신을 특성화시킬 수 있고 또 정말 넓고 깊은 지식이 필요한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그래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참 좋은 생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흔히 하는 오해가 엔지니어는 다 똑같이 기계만 보고 기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엔지니어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모여서 함께 일하는 집단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다. 


나도 오랫동안 내가 과연 어떤 전문성을 가진 전력전자 엔지니어가 되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이 고민이 사실 내가 석사, 박사를 하는 내내 했던 고민의 핵심이었다. 과연 이렇게 논문을 쓰는 게 맞는 걸까? 박사 졸업을 꼭 해야 할까? 이런 내가 했었던 고민들의 기저에 깔린 근본적인 질문은 사실은 내가 정말 어떤 전력전자 엔지니어로 포지셔닝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나는 태양광 변환에 사용되는 컨버터에 대해서 박사 학위논문을 썼지만 솔직하게 나는 그런 신재생 에너지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전력전자 안에서도 제어 알고리즘을 짜는 쪽으로 나를 특화해 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코딩을 잘하지 못하며 나보다 그것을 훨씬 더 잘하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포기했다. 전기모터를 구동하는 전력 컨버터에 전문성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전기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도 싫었고 전기 모터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높은 전압을 다루는 전력전자 엔지니어가 되어볼까 라는 고민도 했지만 소심한 나는 높은 전압에서 일하는 게 무서워서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어떻게 포지셔닝을 해야 할까 확실치 않을 때 나는 데이터센터 등에 들어가는 DC-DC 컨버터 일을 맡게 되었고 그렇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찾은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남을 보면서 나와 비교를 하곤 한다. 특히 나와 비슷한 사람일수록 비교는 더 쉬워진다. 나와 함께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던 친구들과의 비교가 더 쉬운 이유이다. 그리고 이렇게 누가 더 잘났는가 라는 비교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 누구라도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렇다.


이러한 비교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국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인 것 같다. 내가 남들과 다르게 어디에 특화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답을 쉽게 할 수 있으면 더 이상 타인과의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내가 남들과 다 똑같은 사과라면 내가 얼마나 더 신선한지, 맛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비교를 하게 되지만 내가 남들과 다른 오렌지라면 그 자체로 자부심을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내 직업이 더 좋은 이유는 남들과 똑같은 선상에 서서 남들보다 더 뛰어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더 특별히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선택한 나의 전문성의 영역에서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길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남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특별한 개성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과정이 즐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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