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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an 05. 2025

너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

피드백에 대처하는 방법

"너는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 이 말은 지금 회사에 취업한 지 1년이 조금 흘렀던 시절 내 상사에게 들었던 피드백이었다. 이 말을 듣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내 나름대로는 매우 억울했다. 나는 문제 해결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 게 아니라 나도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들이 있었지만 그저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입장에서 일부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엔지니어에게는 많은 자질이 필요하지만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문제해결능력이라고 늘 자부했기 때문에 내 상사의 이런 말은 나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매우 억울한 마음에 나의 태도를 180도 바꿨다. 가장 먼저 바꾼 것은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꾼 것이었다. 무언가를 했다라던가 뭐가 문제라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다와 같은 수동적인 보고들을 완전히 지웠다. 그 대신 뭐를 했는데 이러이러한 새로운 점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법은 이러이러할 것 같은데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확인해 보겠다와 같은 적극적 보고를 늘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내 상사와 나의 미팅내용도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내 상사는 아주 자세히 이해하고 들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실험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나 새로운 이론들이 있으면 적극적 토론이 이루어졌고 상사와의 1대 1 미팅은 원래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어서 진행되고도 다 끝나지 못해 늘 아쉬움을 남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전에 내가 수동적 보고를 할 때에는 1시간이 모자라기는커녕 30분도 채우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 뒤로 나의 상사는 나의 문제해결능력을 높이 샀는지 어려운 문제나 자신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풀어보라고 요구하는 경우들이 빈번해졌다. 이런 요구들이 간혹 힘들기는 했지만 그만큼 나의 태도를 위한 노력이 성과를 낸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것은 내 상사에게서만이 아니었다. 하나의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그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나에게 컴플레인을 걸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 일을 하면서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는 말을 하면서 정확히 내 일과 남의 일을 나누곤 했다. 내 나름대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는 의미였지만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매니저 입장에서는 나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에 화가 난 듯 보였다.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해 따지기 시작했는데 나를 다른 엔지니어와 비교하면서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내 입장에서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면서 따지기 시작했고 큰 말싸움으로 번졌다. 나와 먼 자리에 앉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말싸움은 격했다. 


말다툼을 하고 나서 얼마나 화가 나는지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고 둘 다 화난 상태에서 우리의 말싸움도 몇 날 며칠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 상사가 나를 뜯어말려서 말싸움이 끝이 났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와 다른 엔지니어를 비교하면서 나를 깎아내린 그 매니저의 태도는 매우 괘씸했지만 내가 일을 하면서도 책임감 없이 일을 진행한 면도 있었다. 나는 내 일만 하고 빠진다 라는 입장이었지만 프로젝트 팀에서는 엔지니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일을 맡아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랐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그 뒤로는 열일 제쳐두고 그 프로젝트 일을 빠짐없이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한번 대판 싸우고 나니 더 이상 싸움거리를 만들지 말자는 의도도 있었지만 또 다르게는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이 프로젝트에 신경을 덜 썼다는 자기반성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평가를 받을 때 나는 또다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을 각오를 했다. 그런데 의외로 Excellent라고 정말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마도 큰 말다툼 후에 전향적으로 바뀐 나의 태도가 모두의 마음에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때의 말싸움 때문에 내 상사는 나에게 "나는 네가 더 나은 행동을 보이길 기대한다"는 따끔한 한마디를 남겼다. 평소에 부드럽게 말하는 내 상사가 더 나은 행동을 보이라고 냉정하게 말하자 나도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에 상사에게 찾아가 원인이 무엇이든 일하면서 말싸움을 벌인 것은 내가 잘못한 일이라고 사과했고 내 상사는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타고나기를 독특한 외강내유(?)의 성격을 지녔다. 부당한 지적을 당했다고 느끼면 내 입장을 설명하면서 맞붙어 싸울 때가 많다. 그렇게 격하게 말싸움을 하고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못한 점도 있다는 반성의 마음도 생긴다. 그래서 그렇게 싸워놓고는 상대방이 해달라고 한 것을 결국 다 들어주게 된다. 미안하다고 사과도 한다. 내 주변 친구들도 나에게 "너는 참 성격이 수용적이다"라는 칭찬(?)을 하곤 한다.


회사에 와서 처음에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부정적인 피드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칭찬을 받을 때가 더 많고, 수고했다,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쁘지만 언제나 모두에게 그런 칭찬을 들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불평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의 행동을 고치기 위해 지적을 할 수도 있으며, 때때로 내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억울하게 나쁜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일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나에게 큰 숙제와 같았다. 그저 앞에서는 "네네"라고 적당히 듣는 척 처신하고 뒤돌아서서는 상대방의 말을 아예 무시하거나 뒤에서 욕을 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내 입장을 설명하면서 말싸움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다른 엔지니어가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걸 잘 아는 것인지 뜬금없이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줬다. 자기는 이렇게 한다고 했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억울하게 잘못을 지적당한다거나, 기분이 나쁜 일이 있다거나 그런 일이 생기면 집에 가서 머릿속에 필터 하나를 만든다고 했다. 오늘 들었던 지적 중에 기분이 나쁘거나 억울한 일은 모두 필터로 제거해서 버려버린다고 했다. 그럼 깨끗한 물만 남는데 그 깨끗한 물속에는 내가 고쳐야 할 것들이나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들만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 깨끗한 물만 남기고 나머지 찌꺼기들을 모두 버리는 연습을 매일 해보라는 것이었다. 탁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귀를 열고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피드백을 열심히 듣기로 결심했다. 물론 상대방이 하라는 대로 무조건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가 주는 피드백이 말도 안 되는 경우들도 많고 나의 주관과도 다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을 모두 듣고 그중에 깨끗한 물로 걸러낼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은 깨끗한 물로 정화해서 내 안에 담아두고 쓸모없는 것들은 버려버리면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는 것은 잠깐 마음이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내 커리어에 무엇이 잘못되어 가는지도 모른 채로 절벽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은 아무도 나에게 나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손해만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부드럽게 "네"라고 대답하고 뒤에서는 무시해 버리는 성격을 지녔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더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그런데 또 돌이켜보니 그렇지 못한 성격 때문에 나는 내 능력보다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도 든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면 억울해서 고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말싸움을 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서 내 행동을 고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따끔한 지적에는 고개 숙이고 반성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나에게 그런 피드백을 해준 그 사람들의 공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든다.


엔지니어로 일을 해나가면서 귀를 열고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귀를 기울일 만한 가치 있는 피드백이 많았으면 좋겠다. 더 바란다면 나를 위해서 따끔하게 지적하고 고칠 것을 알려주는 피드백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내 안에 담아둘 만한 깨끗한 물들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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