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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an 05. 2025

다시 한번 의지를 굳게 다진다

내가 이 길을 택한 이유

휴가가 거의 끝나간다. 미국 회사들은 많은 경우 크리스마스 전부터 새해 후 며칠 동안 긴 휴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나도 지난 2주간 별다른 일정 없이 휴식을 취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긴 연휴에 계획을 세워 이것저것을 해보기도 했지만 올해만큼은 2주를 최소한의 일정만 가진 채로 거의 쭉 쉬었다. 영원히 정리될 것 같지 않았던 머릿속도 정리되는 기분이다.


사실 2주간의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몸이 아팠다. 표면상은 감기 증상이었지만 웬만해서는 아프지 않은 내가 며칠간을 드러누워야 했던 것을 보면 감기조차 견뎌내질 못할 몸상태일 정도로 나의 평소 상태가 나빴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나에게 2024년은 혼돈의 시간이었다. 난데없이 터진 계엄 때문에 나의 고국인 한국 또한 다사다난한 202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듯이 나의 2024년도 다사다난했고 그 다사다난이 끝나지 않은 채로 2025년을 맞고 있다.


2024년을 돌아보면 뿌듯한 것이 많다.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 2023년에 시작한 것을 마무리한 것도 많았으며 새롭게 시작한 일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감과는 별개로 많은 충격적인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많은 나날동안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으며 밤잠을 설치는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나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일을 대강 나열해 보면 이렇다. 나를 지금 회사에 뽑아주었고 우리 팀의 팀장이었던 사람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버렸다. 회사에서 여러 사람들이 해고되었다. 우리 팀에서 나를 많이 도와주고 마음이 통했던 사람 또한 갑작스럽게 해고되었다. 같은 프로젝트로 일하는 사람과 몇 날 며칠을 크게 다투면서 마음고생을 했다. 회사에서 일은 다 하고 제대로 된 인정을 못 받는다는 생각에 억울함을 느끼는 날도 많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맞을까에 대한 고민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나도 이직을 해보려고 했고 여러 번의 면접을 봤다. 그렇게 세 군데에서 오퍼를 받았지만 영주권 신청을 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아무 곳도 가지 않게 되었다. 등등등... 이 많은 일들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쓸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다른 글을 통해 써볼 생각이다.


2022년에는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2023년에는 정신없이 일을 배우고 성장했다면 2024년은 나에게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보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당장 몇 달 후에 우리 팀은 온전할 것인가? 몇 달 후에 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내 기분과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으며 밤잠을 설치는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솔직하게 말해 엔지니어로서 나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도 많다. 별별 생각이 다 들기도 했다. "내가 어쩌다가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서 먼 미국땅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나", "다 때려치우고 한국에 들어가 버릴까"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연말이 되어 몸 누워 버린 것도 이러한 정신적 혼란과 어떤 식으로든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롤러코스터 같았던 2024년이 끝나고 아무 생각 없이 2주간 쉬고 나니 마음이 다시 차분해진다. 내가 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을 해본다. 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어지러운 단어들을 모두 없애고 내 가슴 심장부에 있었던 것을 다시 꺼내본다.


어린 시절 처음 이공계인이 되기로 다짐했던 그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나에 대해서는 잘 알았고 그렇기에 이것이 내 길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다. 유학오기 전 대학을 다닐 시절에는 나에게도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일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랐다. 그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의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인턴이라는 걸 해본 그때 나는 나도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엔지니어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고 간절하게 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엔지니어들의 두 가지가 나를 매료시켰다. 하나는 나도 그들처럼 한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가진 지식으로 인류 기술의 발전이라는 큰 일에 작더라도 기여를 하고 싶은 바람이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정말로 간절하게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원해서 간절함으로 찾아온 이 길 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난관이 있으며 가시밭길도 있음을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편하게 살기 위해서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하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앞에서 말한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그 꿈, 그리고 이 세상에서 기술발전에서 어떤 작은 역할이라도 맡고 싶다는 그 열망으로 나는 내 길을 선택했다. 선천적으로 인내심이 없는 나는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이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아마 처음 미국회사에 취업했을 때 어려움을 겪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일찍 박사 유학하던 도중 더 이상 공부 못하겠다고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일찍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때 유학 가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원해서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인내심을 발휘하고 참을성 있게 나의 꿈을 밀고 나가면서 그래도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원래는 전혀 믿지 않았지만 요즘에 고민하게 된 니체의 말이 있는데,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이다. 나는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그 글에 코웃음을 치는 다소 특이한 습관(?)이 있다. 그래서 원래 이 말이 고통을 겪은 사람이 자신이 겪어온 고통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은 후에 여전히 성장은커녕 더욱더 사악해져 버린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저 말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저 니체의 말이 어쩌면 약간은 맞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면 몇몇 사람들은 보면 참 약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작은 어려움에도 괴로워하며 사소한 것들에 집착을 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이라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솔직히 있다. 보통 이들은 대체로 힘들지 않게 편한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난관을 뚫으며 살아온 사람을 보면 일하면서 어려움이 와도 의연하게 대하는 것을 보곤 한다. 그런 사람을 보면 때때로 기대고 싶기도 하고, 또 그의 그러한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마다 그 사람의 크기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타고난 성격도 그 사람의 크기를 결정했겠지만 어떻게 살아왔는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후자의 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가 시작된 이때, 나도 마음을 크게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타고나길 인내심이 없고 작은 어려움에도 금방 포기해 버리는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크기가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에는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길을 선택할 때 내가 앞으로 겪게 될 좋은 순간뿐만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모든 어려움도 다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나 다름없다. 2025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새로운 시작이다. 설사 그 결과가 나쁘더라도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의지를 굳건히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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