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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Lee Sep 05. 2020

다섯 번째,

나의 술책-4

개망신의 사전적 정의는 "명예나 위신을 아주 크게 망침. 또는 그런 큰 망신"을 뜻한다. 앞서 말했던 전 직장 선배에게 큰 개망신을 줬다. 

내가 일했던 곳은 외신을 다루고, 이를 잘 번역하고 시청자에게 실수 없이 잘 전달해야 하는 생각보다 예민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번역한 내용이 늘 맞는 것이 아니다. 그 내용이 그간의 지금까지의 상황을 통해 해석을 해야 한다. 가령, "이번에는 금리를 많이 올리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하면 '많이'의 기준이 대체 얼만큼인지 알아야 한다. 그저 문장 그대로를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과연 저 '많이'가 어디 기준일 때 많이일까, 다른 곳들은 '많이'일까? 이런 근거들도 다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이런 차이를 알지 못했던 그 선배는 CG 감독에게 자신이 해석한 것이 맞다며 우기고, 자막을 바꿨었다. CG 감독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이 이건 아닌 거 같다고 한번 더확인해보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G 감독한테 '이거 제가 책임져요. 책임질 자리에 있으신가요?"라는 재수 없이 말을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지금 미국 연방에서는 이런 상황인 거고, 미 행정부는 이런 상황인 거고, 과거 이런 모기지론 사태 때도 이렇게 했었고,.... (중략) 그만큼 미국이 자신들이 경제가 좀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런 척도예요." 뭐 이런 식으로 여러 상황 들을 쭉 나열했다. 그것도 그 선배가 개망신당하기 딱 좋은 제작국장 앞에서. 갑자기 아침에 CG 감독과 말다툼하고 있는 선배를 보고 제작국장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들어왔었다. 나는 그것까지 계산하며 말한 게 아니었다. 그 선배가 CG 감독에게 재수 털리게 말을 했기에 나도 욱하는 마음에서 지금껏 공부했던 것들이 술술 이어져서 나왔다. 제작국장은 조용히 듣더니 "그럼 긍정이가 말한 대로 잘 요약해서 자막 뽑고, 작가들한테 알려줘" 하고 갔다. 그 이후로 선배는 자신의 주장이 짓밟혔다고 생각해서 나를 바로 테라스로 부르고는 온갖 사람들의 핑계를 대면서 '네가 이런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나한테 너 버릇없다고 하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그러니.'라고 했다. 참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참 이 사람이 무식하고 남은 자존심 하나 열심히 지켜내는구나 하고 좀 이해 아닌 이해를 했다. 화도 안 났다. 이상하게 말도 안 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졌다. 

테라스에 불려 가서 1시간 정도 그 선배의 뒤끝을 한참 듣고 나니 밖에서 사람들은 나를 걱정했다. 내가 표정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나오고 하니 정말 너무 욕 사발을 마셔서 애가 멍해졌다며 나의 동정론이 확산됐다. 

그다음 날부터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나를 동정하기 시작했고, 내가 부탁하는 건 모든지 들어줬다. 그리고 내 의견을 늘 우선으로 들어줬다. 왜냐면, 내가 그 선배보다는 더 이 일에 열정적이고 잘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그 당시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그 선배에게 개망신 준 이후로 그 선배의 꼬장은 더욱 나날이 힘들어졌다. 뭐만 하면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걷는 소리도 크다고 눈치를 줬다. 이상하게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니 그냥 자존심 하나 지키려고 발악하는구나 하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그 선배를 더 열 받게 했고, 날 망신 주려 애를 썼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 선배를 분위기를 흐리는 '빌런'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빌런'이 없는 자리에서 우리는 참 잘 단합이 되었고, 일도 다 이끌어졌다. 우리끼리 밥을 먹으러 가고, 커피를 마셨고, 회의도 따로 했다. '빌런'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며 이 부분들은 이렇게 바꾸겠다며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아침의 분위기는 '빌런' 뺀 나머지는 다 열정적이고 파이팅 넘치며 생기가 돌았다. 그럴수록 '빌런'은 날 더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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