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할 때
새로운 땅에 던져진 듯한 그 막막한 기분이 좋다.
언어가 낯선 해외는 더 좋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막막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눈치도 볼 것 없다.
그러나 일상은 여행이 아니다.
스치는 곳이 아니라, 내일 또 보아야 하고 부대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하듯이 단단하게 일상을 누리고 싶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는 언어는 참 어렵다.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으나, 해석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병아리라고 들려도, 병아리인지 미나리인지 닭인지 오리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제일 어려운 건 나다.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리는 나를 볼 때,
나는 가슴이 횡격막 아래로 쑥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제는 어떤 문제가 와도 백점이 나올 것 같은데
막상 시험을 치려니 잠이 안 오고 막막하고
허수의 걱정과 변수가 내 머릿속을 다 헤집을 것 같은,
나는 왜 이다지도 갈팡질팡 하는 것일까.
그래서 걷는다.
내 생각 속에서 나와서
책 속을 걷고, 숲 속을 걷고, 음악 속을 걷는다.
조각한 것 같은 시의 언어 속을 걷는다.
겨울이 와도 단단한 나무기둥 사이를 걷는다.
공기 속을 채우는 선율 속을 걷고 또 걷는다.
나는 걸으며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리는 나에게
시를, 산을, 음악을 준다.
흔들리는 네 마음을 이런 것들로 채워보라고.
존재하지 않는 걱정으로 가득 찬 네 머릿속을 비우라고
계속 걷는다.
무릎이 아파도 걷는다.
덤벼라, 세상아.
네가 아무리 단단히 채워도 너는 흔들리는 존재라고 계속 말해보아라.
내가 비록 흔들려도 내가 비록 주저앉아도
나는 나를 다시 채워, 단단하게 할 것이다.
네가 아무리 내 귓가에 속삭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