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그럴지도 모르는 나에게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하루하루 사는 모습이 허깨비인 것 같고
너 스스로 느끼기에도 네가 너무 예민해진 것 같고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아무 생각 안 하고 몇 달 있고 싶지
그래. 너 많이 지쳐 보인다.
20년이야.
뭔가 큰 일을 한 게 아니라도
하루하루 출퇴근을 이어오는 것만으로도
너 정말 대단해.
쉬고 싶으면 잠시 쉬어도 될 것 같아.
별 거 아니야.
그렇게 끙끙 앓을 일 아니라고.
숨쉬기가 갑갑하고 두통이 오고 가끔 손이 떨리고 그랬는데.
쉬면 갑자기 다 좋아질 줄 알았거든?
그런데
쉰다고 몸 아픈 게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진 않아.
나이 들어서 아팠던 거였나 싶은 생각도 들어. 후후.
그래도 일할 때의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아.
왜 그런 거 있잖아. 머리감을 때 일 생각하는 그런 사소한 것부터 말 한마디에 내 온 신경이 집중되고 눈앞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나를 덮칠 것 같은.
그런데
어떤 날은 지루해서 일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어. 가끔 아주아주 가끔.
그래도 나는 쉰 것을 후회하지 않아.
길다 싶다가도 이게 뭐 길어 싶기도 해
돈이 없어서 조금 맘이 쓰이긴 하는데
쉬려고 조금 모아뒀어.
옷 안 사고 머리 안 하고 화장 안 하고
외식비 아끼고 그러면서 버티고는 있어.
밖에서 보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맘을 졸였나 싶어서
예전의 내가 안쓰러워.
근데 일하면 또 그러겠지?
그래도 예전 같지는 않을 거야. 조금 덜할 거야. 분명히.
왜냐면 세상이 넓다는 걸 나는 이제 조금 알게 됐거든.
잠깐 쉬면서 고생한 나도 다독거리고
내 가족도 다독거리고
집 정리도 하고……이런 것이 좋아.
집에서 아이들 등교할 때 인사하는 것, 참 좋아.
나는 나와 이야기를 많이 했어.
나와 걷고 나에게 말하고 내 이야기를 들었어.
인생 뭐 있니?라고 하는데
인생 뭐 있는 것 같아.
그렇다고 마냥 행복한 건 아니야.
마냥 행복한 삶이 있을까.
그저 이 푸른 행성에서
작지만 큰 존재로
때로 전전긍긍하며, 자주 웃으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잠시 멈추어도 좋아.
경주마처럼 달리다가
내 눈을 덮던 무언가가 없어지니
세상이 보이고 가족이 보이고
내가 보여.
잠시라서 좋아.
잠시라서 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