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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식을 잃지 않는 인간이 되어라

by 염홍철


유발 하라리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역사학자이지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사피엔스>는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과거를 개관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50개국에서 출간하여 8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최근 여러 미디어, 강연, 콘퍼런스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체성, 자유,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설파하고 다닙니다. 그는 신뢰의 붕괴가 현대 위기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는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내놓은 바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다음 3가지 제언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다’라는 것입니다. 그 핵심적 의미는 기술, 정치, 직업,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하는 시대에 ‘안정’은 환상이며, 오직 ‘지속적인 적응력’이 생존의 열쇠라는 주장입니다. 하라리는 20세기처럼 한 직업, 한 정체성으로 평생을 사는 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인간의 본질까지 바꾸는 시기에는 ‘무엇을 아는가’보다 ‘배우는 법을 배우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정체성을 고정된 것으로 붙잡기보다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연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이야기’로 해석하지만, 실제 인생은 기승전결의 서사처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라리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내 인생은 이런 이야기다’ 혹은 ‘국가의 운명은 이렇다’라는 서사적 자기기만은 현실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종교, 민족주의, 이념 모두 결국은 인간이 만든 ‘서사 구조’ 일뿐이며 그것이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고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서사를 절대화하지 말고 사실 그 자체와 의식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비서사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관찰하라’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외부 세계와 불안한 내면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길은 ‘자기 인식’뿐입니다. 하라리는 실천적인 제안으로 명상을 통해 생각, 감정, 욕망을 ‘판단 없이 관찰’하는 연습을 강조합니다. 이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실존적인 훈련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보 과잉 시대에는 ‘더 많이 아는 것’보다는 자신의 주의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번 APEC 정상회담에서도 제기되었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가짜 뉴스의 해악과 테러의 공포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와 핵전쟁의 위협은 많은 불안을 야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재 사상가의 해법은 다름 아니고 ‘변화 속에서도 자기의식을 잃지 않는 인간이 되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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