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비엄마일까 정신병자일까
정신병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온 신경이 한 곳에 쏠려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감정이 널뛴다. 생리예정일 5일 전부터 내 모습이다.
11월에는 매일 산부인과에 가서 배란초음파를 봤다. 난포 터지는 주사도 맞았다. 의사가 내준 숙제일에 엄청나게 집착했지만 결과는 불발이었다.
12월에는 산부인과에 가지 않았다. 배란테스트기도 띄엄띄엄 했다. 배란일에 구애받지 않고 이틀에 한번씩 관계를 해서 확률을 높이자는, 새로운 전략이었다. (내 감정기복 땜에 힘들었던 남편이 제안함)
그리고 지금, 12월 생리예정일이 3~4일 남은 시점에 다시 한번 정신병이 도졌다. 지금까지의 '증상놀이'와는 뭔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에 얼리임테기에 손을 댄 것이다.
이번엔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 이유:
1. 일주일 동안 운동을 못했는데도 복근 쪽 배가 계속 땡긴다.
2. 원래는 아랫배가 쿡쿡 쑤시는 느낌만 들었었는데 이번엔 정확히 Y존이 쿡쿡 쑤신다.
3. 가슴이 부풀고 아픈 게 PMS와는 차원이 다르다.
4. 살짝 감기기운이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두 줄을 봤다. 그리고 새로운 정신병의 영역을 열었다.
그런데 임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몽사몽간에 테스트를 하느라 흡수부 MAX선 위로 소변이 튀었다. 즉, 은근히 흔하다는 임테기 오류일 수 있다. 아, 소변을 안전하게 컵에 받아서 서로 다른 종류의 임테기 두 개로 비교해봤어야 하는데. 생각이 짧았다.
2. 12/20 첫소변과 12/21 첫소변으로 2회 검사했는데 어제에 비해 선이 더 진해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
3. 임신극초기에는 잠이 쏟아진다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빨리 아침 돼서 임테기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에 계속 깨고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어제는 심지어 10시에 잠들어서 새벽 1시에 깨서 아침인 줄 알고 임테기 들고 설침. 하..
그리고, 만약 임신이 맞다고 한들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남편 정자검사 결과 정상정자 비율이 0.5% 미만이다. 논문 뒤져본 결과 유산확률 30% 이상... 화학적유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이러고 있다. 첫소변 후 3시간 지났는데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다시 요의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물 마시면 호르몬 농도 옅어질까봐..... 이번엔 기필코 컵에 받아서 테스트해봐야지............ 이게 정신병이 아니면 무엇일까?
12월 31일에 여수 향일암 일출제에 가서 삼신할매에게 등을 올리려고 숙소 예약도 다 해놨다. 거기가 진짜 영험하거든...거기서 4년 전에 5,000원짜리 소원을 빌었었는데 이뤄졌다. 병원에서도 기적이라고 했다.
과학에 기대지 않으니 샤머니즘에 기대게 된다. 과학자인 남편은 미치고 팔짝 뛰려고 하지만 뭐 어쩌겠어. 그럼 정자왕으로 다시 태어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