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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gma Jan 04. 2025

필연과 자유의 궤적 위를 걷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우리는 자유로울 운명에 처해 있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우리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자유 또한 우리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서 되려, 자유의 무게를 느꼈다. 주어진 조건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그 자유는 무력하다. 자유란 것조차 조건이 상충되어야 발현하는, 또 다른 필연같이 느껴졌다.

내가 아는 인간 전문가가 그랬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필연대로 살아간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유전자, 대물림되는 성정, 그리고 어떤 환경에 닥쳤느냐에 따라, 개인의 기질 중 어떤 것이 어느 방향으로 발휘될지가 정해진다. 바로, 필연은 개인의 역동적인 운명을 뜻한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를 뜻한다. 결국 성격, 사고방식, 행동 패턴은 개인이 살아온 환경과 타고난 기질의 산물일 뿐이다.

내게는 그 말이 다소 씁쓸하고 슬프게 들렸다.


개개인 모두 자신의 세계에서는 우주이지만, 실제 우주와 역사에서는 스쳐지나가는 먼지 한 톨에 불과할 뿐이다. 마치 별들 사이를 부유하는 작은 운석처럼, 자신의 궤적을 그리지만, 우주의 관점에서는 아무도 그 흔적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등바등한다. 먼지 한 톨처럼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그 궤적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미 누군가 미리 정해놓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런 거다. 누구나 다른 환경이 주어졌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어떤 환경에 놓였을 때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100%정해진 건 아니어도, 계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 섭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이러니를 떠 안은 채 나아가는 과정이 삶과 평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두려움 속에서 용기를 내고, 모순 속에서 방향을 찾는 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온전한 인간의 삶이다.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함을 꿈꾸고, 제한된 조건 속에서 무한함을 추구하는 그 자체를 뜻한다.

그렇다, 이 역시 나의 필연이다. 인간의 법칙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정답을 찾아나서는 것,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나의 필연이었다.

모든 움직임은 고요함에서 비롯된다.  움직임이 있는 곳은 어디든 정지를 중심으로 두고 있고, 정지 상태가 바로 움직임의 원인이 된다. 고요 속에서 방향을 찾는 것은 개인의 내면과 운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과도 같다. 고요함은 시작점이며, 움직임은 그로부터 피어오른다.

개인의 운명 역시 자신의 내면이라는 정지 상태에서 시작해 방향성을 얻는다. 즉, 개인의 운명의 중심은 바로 자신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자신은 앞으로의 자신을 형성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자 필연이 된다.

누구나 자신만의 조건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쓴다. 마치 매 순간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필연과 자유 사이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쓴다. 운명은 바꿀 수 없지만,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의미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개인이 가진 조건은 시작점일 뿐, 그 위에 어떤 이야기를 쓸지는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운명을 재정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직면하고, 작은 행동이나 선택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인생은 폭우 속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바람과 폭우는 인생의 필연이다. 그러나,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그 바람에 몸을 맡기되,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바람 속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면 된다. 춤이 어설프고 비틀릴지라도, 그 춤의 흔적은 바람 속에서 길게 이어질 것이다.

우주는 진공 속에서 모든 움직임을 간직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어디로든 뻗어나가는 먼지처럼, 자신만의 궤적을 남기며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 우주는 지구와 달리 물체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중력과 마찰이 없기 때문에,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물체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선택은 길게 이어지며, 우주의 진공 속 먼지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필연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과 기질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정의한다.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 만든 영원한 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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