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마지막 글을 찾아보니 1월 25일에 멈추어 있다. 그간 세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이벤트가 있었지만 결론은 아버지는 살아계시다.
지난겨울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은 육 개월이었는데 그 날짜로 따져보면 이제 한 달 남짓 남았건만. 현재 항암을 다섯 차례 받은 아버지는 걷고, 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드실 수 있다.
십 킬로가 넘게 빠졌던 체중은 어제 보니 삼 킬로 정도 증가했다. 지난주 다녀온 항암치료에서 담당의가 놀랐을 정도니 기적까지는 아니지만 선방하고 있다.
나~이쓰!
우리 집 꼬마들은 할아버지가 3박 4일 항암 치료를 꼬박 받고 퇴원한다고 소식을 전하면 내게 늘 말한다.
나~이쓰!
여섯 번째 글에 병원에 입원하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이틀 정도 지나 갑자기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아무런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찾아왔었다. 그때 내가 잠시 아버지 곁을 지켰었는데 글이고 뭐고... 내가 아무 말이나 끄적이고 싶었던 그 순간도 내게는 헛되다 느껴지고 글을 쓰려고 앉았다가도 이렇게 아버지를 팔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가끔 내 글을 읽어주시던 누군가는 오래도록 올라오지 않는 글에 "그 사람,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혼자 생각한 날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두세 번의 위기를 잘 버티는 날이 있었고, 지금 잘 견디고 계시다.
이후로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매주 월요일마다 3박 4일 동안 병원살이를 하고 있다. 이제는 제법 같은 처지의 병원 이웃이 생긴 부모님은 퇴원 날이 되어 모시러 갈 때면 호두과자 좀 사 오라며, 꼭 A지점에 들려 흰 앙금으로 사 와야 한다고 전화를 넣으신다. 그리곤 그 친해진 이웃들에게 호두과자를 쥐어주시곤 잘 버티다 2주 뒤에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오신다지. 끈끈한 그들만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항암 환자들은 대체로 같은 병동에 배정되지만 요즘처럼 의료대란과 뭐... 기타 등등으로 다른 과의 병동으로, 다른 층으로 배정받으면 처음에는 불안하다. 그것조차도 아무렴 어때가 되어 얼른 집에나 갔으면 좋겠다는 식의 마음이 먹어진다면 이제 그들은 초짜의 딱지는 떨어졌다고 본다. 보호자들은 여기서 정보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민간요법, 식이요법, 병원과 의료진의 스타일 등 나만 환자 아니고 이제 너도 나도 프로페셔널한 환자인 그들은 서로 온갖 효과를 본다는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이 끝나야 끝난다는 긴 항암과의 리그에서 승리 혹은 경기를 좀 더 연장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냥 한 팀이 된 듯 내 형제보다 가까운 친척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된다.
아버지는 날짜로 따지면 한 달 삼십여 일 중, 삼분의 일을 병원에서 삶을 보내고 계신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셨던 날이 있다. 이게 사람 사는 거냐며.
눈치껏 아버지를 말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날 옆에서 간병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본 나로서는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한 오만 정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 빠지는 소리란 건 바로 이런 것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낀 날이다.지난달 아버지가 입원하실 무렵 감기를 심하게 앓던 어머니는 혹시 몰라 코로나 검사까지 하고 병원 갈 짐을 싸고 계셨다. 출근하고 아이들을 케어해야 할 걱정에 내가 하겠다는 말은 차마 먼저 나오지 않던 나는 그새 아버지가 숨넘어갈 듯 힘들었던 그 시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러다 또 스스로를 얼마나 원망하며 살아가려고 그러는지... 망각하고 있음이 두렵다.
이 가운데 이제는 능숙하게 짐을 챙기시는 어머니가 때로 안쓰럽게 느껴진다. 입원 3일째가 되면 일부러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 병원에 들러 어머니와 김치찌개를 먹고 온다. 맹맹한 반찬 속에 때로 아주 매운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시기가 어머니 말로는 딱 입원 삼일째! 그 순간이라고 한다. 큰 문제가 없다면 다음날이면 퇴원을 하겠지만 그래도 삼일째 김치찌개를 드시고 싶다는 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일까.
김치찌개, 너는 어머니의 무엇이냐.
2024년 5월 8일. 이제는 없을 것 같은 어버이날을 맞은 아버지는 어버이로서의 임무를 위해 아침 일찍 어머니랑 집을 나서 5개월 만에 손주들 등교를 시키러 아침에 등장하셨다. 아이들은 이번학기 매주 수요일 7시에 집을 나서고 있는 중이다. 교장선생님께 사정을 말해 일주일에 딱 하루 일찍 등교할 수 있게 부탁을 드렸다. 가끔 교문 앞에서 만나는 주무관님께 일찍 도서관을 열어주셔 감사하다고 정말 허리가 부러지게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란... 그렇게 오늘도 일찍 출근해야 하는 엄마를 따라 아이들은 새벽밥을 먹고 등교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이 멋진 할아버지는 몸이 좀 나아지자마자 손주들 등교를 시켜주러 오셨다.
덕분에 아이들은 유부초밥을 먹고, 사과를 먹고, 우유 한잔 쭈욱 마시고 그렇게 여유 있게 등교를 했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오늘을 어떤 마음으로 품고 살아갈까. 자식인 나는 일이 늦게 끝났다는 핑계로 식사 한 끼, 카네이션 한 송이 드리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역할을 오늘도 이렇게 멋지게 해내시다니.
오늘 저녁을 치우며 잠시 앉아있는 내게 우리 둘째가 말한다.
"엄마, 죽으면 다시 태어나나? 어디 가는 거지?"
"죽으면 태어나지 않아. 그냥 그렇게 끝이 나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이 순간이 중요한 거야."
"그런데, 쇼*에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그러던데."
"그런 거 믿지 마. 다 거짓말이야. 죽으면 그냥 가족들 마음속에 계속 있는 거야."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엄마 나는 다시 태어나면 또 엄마 아들로 태어날 거야."
...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나에게 첫째와 막내는 놀랐다. 엄마 왜 그러냐며. 둘째 보고 너 엄마보고 뭐라고 했냐고 다그친다.
우리 둘째만 멋쩍어하며 자기도 뭔가 올라오는 마음이 있는데 참는 듯 눈만 껌뻑이며 고개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