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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보 Jan 16. 2024

아버지를 기록합니다.-3

넌, 나의 프린스!

  진단받은 이후로 아버지가 가장 아쉬운 일은 '운전'이다. 아버지는 사업하기 전 삼십 대 초반까지 버스, 화물차를 운전하셨었고 심지어 월남 참전 중에도 운전병이셨다. 운전이라면 아버지에게 자존감 그 자체라고 할까? 그런데 지금 운전에 손을 놓고 있으니... 아마도 이 상황이 암보다도 아버지를 더 불편하게 하고 있을 거란 건 매일매일 이놈의 운전으로 큰소리가 한 번씩 나는 아버지 어머니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오늘도 항암 전 신경과 진료를 보러 타 병원에 다녀와야 했는데 기어코 본인이 운전을 하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에게 우리는 두 손을 들어버렸다. 그렇게 못 믿겠음 옆에 타고 가면 되지 않냐는데 난 웃음이 나지만 어머니는 머리에서 김이 나고 있음을 안다.


 차에 타자마자 손가락장갑을 양쪽에 끼고 시동을 걸고 출발! 아버지가 장갑을 끼고 운전하는 것이 일종의 본인만이 가진 운전습관  같은 거라 생각한 적이 있는데 건선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핸들을 맨손으로 잡고 운전하다 보니 상처가 나고 아파 선택한 방법이 란 건 최근에 안 사실이다.

항상 운전자의 입장에 있던 사람이 조수석에 앉아야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남편과 각각 운전을 하지만 멀리 이동시 주로 남편이 할 때가 많다. 솔직히 적당히 졸기도 하고, 핸드폰도 하고 조수석에 앉은 나는 눈치가 보이는 것 빼고는 편한 마음이다. 그런데 버지는 완벽한

                         "내가 세상에서 운전 제일 잘해."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새 차를 뽑아 오신 기억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D사의 왕자 차였는데 그때는 제법 고급진 중형세단이었다. 핸들을 돌려 창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에 정말이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그날이 생각난다. 아직도 왕자차가 집에 온날 뒤에 앉아 시내 한 바퀴 드라이브를 했던 그날의 설렘이 잔잔하게 남아있다.

  토요일에도 학교 가는 국민학교 시절, 학교가 끝난 토요일 아버지, 어머니 함께 설악산을 간 날이 있다. 일박이일 설악산 여행이라니 지금 생각하니 참 대단한 분이다. 어떻게 그 장거리를 혼자 운전하셨을지... 젊은 시절 화물차 기사를 했던 아버지는 부산이고 강원도고 하루에도 왕복으로 다니셨을 것이기에 심지어 놀러 가는 그 길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셨던 것 같다.

어려운 그 시절 아버지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그것은 운전이지 않으셨을까. 그런데 운전대를 놓으라 하고 있는 이 상황이니.

아버지는 지금 정말  시간이 감옥 같겠다. 집에서 몇 발작 사부작사부작 걷기만 해야 하는 이 상황이.

   왕자 차 이후로 아버지는 두 번째 차를 타고 계시는데 아버지의 왕자차는 얼마지 않아 도둑을 맞았다. 그 옛날에는 뭐 블랙박스고 CCTV도 없던 시절이니 찾을 길은 만무했다. 그리고 다음에 타셨던 그랜다이저는 이십 년을 타고도 백만 원에 파셨으니 아버지의 차 사랑이야 말하려면 입이 아프다.

그리고 지금은 시야가 좀 넓게 보였으면 좋겠다셔서  SUV를 타신다. 그런데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께 돈 많이 벌어 외제차 사드리겠다 약속을 하곤 했는데 그 외제차는 언제 사드릴 수 있을까. 그 많이 번다는 돈은 언제 즘 벌이가 끝나는 걸까. 요즘처럼 흔한 외제차 시대에 우리는 뭘 그리 아끼고 고치고 살았나 싶다. 이번에 재산 좀 정리하시면 벤*부터 한 대 장만하시 했더니 에이~하며 웃으신다.

"아부지, 벤* 사시면 아까워서 십 년은 더 사시지 않을까?"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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