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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허로이 Jun 27. 2024

[읽기] 포스트 트루스, 리 매킨타이어

요즘 특히, 세상의 '현상'에 대한 이해에 목마른 중이다. 변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들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는 나는 원래 그랬다는 듯 기꺼이 다른 옷으로 바꿔입는 선택을 말 그대로 목도할 때, 감정 대신 이성을 작동시키고자 애쓴다. '왜'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야 함이 서글프다 여겼을 때 만난 책이다.


탈진실은 새롭지 않다. 참과 거짓을 일일이 구별할 수 없는 인간의 인지론적 한계, 유인만 주어지면 언제든 거짓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인지 편향 안에서 늘 발생해 온 현상이기에, 탈진실은 익숙함을 내포한다. 그런 탓에 가짜 뉴스는 누군가에게 정보성과 기타의 전략적 유용성을 지니는 한, 형태를 바꾸어가며 지속될 것이다.


당연하지만 모든 말은, 어떤 방향이든 의도가 있다. 그것의 선의 또는 그 외의 다른 무엇이라 할지라도 '의도 있음' 자체만은 진실일 것이다. 진정성이란 겨우 그 정도이려나. 그런 생각으로 '진정성이라는' 책을 다시 펼쳐 들고, 무리하며 함께 읽기 시작한 '포스트 트루스.'


읽고, 생각하고, 그러다 또 읽다 보면, 목마른 줄 몰랐던 것에 대한 목마름이 다시 생겨난다. 스스로가 가진 부족함 때문이라 여겼다가, 몰라주는 주변인들에 대한 원망이기도 했다가, 결국은 이 정도밖에 모르겠다는 체념이기도 하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까닭은, 이렇게 손 한 뼘만큼이라도 이해하고 싶고 그래서 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본 것을 unseen 할 수 없고, 알게 된 것을 unknown으로 할 수 없듯이, 인생은 어쨌든 움직여 가게 되어 있고, 기왕이면 깨달음도 함께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작가가 본 AI의 세상이 궁금해진다. 이 신기술의 등장 이전에 쓰인 탓에, 관련된 힌트를 찾을 수 없었다. 문자의 시대와 인쇄의 시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독자가 나름의 유추 정도는 해 볼 수 있겠다. AI시대에서 탈진실과 가짜뉴스는 어떤 모습인가. 구별하는 일조차, 그에 대한 고민조차 그저 무색한 노동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모두 다 인간의 욕구 안에서 태어난 것들이지만, 애초에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 혹은,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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