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의 사용기
여전히 전문 철학서는 열 장을 못 넘기지만, 최근 철학 카테고리 서적을 완독 하는 횟수가 늘었다. 내게는 엄청 놀라운 일이다. 이유가 궁금했기에, 스스로의 변화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물론, '나이' 요소는 제외한다. 계산해 보니 루소는 38살에 정치 이론가 명성을 얻었고, 메리 셸리는 21살에 '프랑켄슈타인'을 썼지 않은가? 단순 비교의 대상으로 적절치 않지만, 그럴듯하다고 가정했다.
무엇보다도, 친숙한 동시대 사례와 해석 덕분에 꽤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역자의 글솜씨도 한몫했지만, 내용 자체가 이론서를 표방하지 않을뿐더러, 연이어 등장하는 철학자들 이름에도 작가는 나를 주눅 들게 하지 않았다. 읽는 이가 이 정도는 알겠지 싶은 가정을 깔고 쓰인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겠다. 이런 배려가 가능한 것은 작가 자신이 어마어마한 독서량을 축적한 채 써내려 갔기 때문이겠다.
시작하자마자 절반까지 달렸다. 철학서인 줄 알았는데, 경제서적이었다가, 문학서인 줄 알았는데 마케팅과 브랜딩이 튀어나온다. 인류사인가 싶다가 철학서로 다시 변모하는데, 애초부터 나는 이런 범주화 시도는 왜 했는지? 어쩌면 세상의 많은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인과로만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작가는 진정성이란 가치의 근원을 찾는 인간의 노력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내는가를 해석하고, 글 전체에 냉소 대신, 피시시 웃게 만드는 위트와 따뜻한 시선을 심어 두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도대체 왜 이 모양이지?" 대신, "아, 세상이 이 모양인 게 그래서 그런가 보군" 싶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쳤다. 한 권의 책을 연속해서 두 번 읽기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