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허로이 May 27. 2024

[보기] FBI: Most Wanted (미드)

그 밖의 사용기

9/11 직후, 세상은 더욱 잔인해졌다. 테러의 잔인함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세밀하고 치열하며 고집스러운 잔인함을 낳았다. 더욱 의심하고, 미워하고, 비난하더니, 희생자들과 그 지인,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능가하는 비극이 이어진다. 마치 모두를 미워하라는 지령이라도 받았는지, 무관한 관계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경멸이 줄줄이 엮여서 자라났다. 한 가족의 비극은 하나에서 멈추지 않았고, 차곡차곡 그러나 방향 없이 퍼져나갔다.


그 시절을 지낸 이들은 피해자이면서 생존자로 불린다. 그렇게 부르자고 소리 높여 나선 이가 박수를 받을 때, 실제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이들은 자신의 그림자에 숨었다. 애초에 생존자로 불리고 싶었을 리 없다. 생존의 정의는 그저 심장이 뛰는 것만이 다가 아니므로. 누가 붙여낸 정의(definition)인가? 우리가 가해자의 시선에 올라타는 순간, 결국은 또 다른 희생자, 피해자가 생겨난다. 이들이 간신히 자신을 버텨가며 복수를 향해 나아가고, 마침내 그들만의 결말에 닿기 직전, 그것들도 삶이니 지켜달라며 다른 목소리가 정의를 울부짖는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그때는 그런 세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세상이라고.


맙소사, 세상이 달라졌다 한들, 피해자들의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시간의 흘렀음이 피해자의 세상이 바뀌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전쟁과 복수, 테러를 외치는 자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또 가져가는데, 그로 인한 상실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고통에 짓눌려 점점 작아져만 간다. 살아남아 장하니 생존자라 이름 붙여 주겠다는 가진 자들의 위선을 견뎌낸다 한들, 고통이, 아픔이, 피해가, 상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피해자들은 되갚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복수의 연쇄가 대를 이어 그다음 세대까지 끌어들이는 카르마가 닿는 곳은 어디일까?


언제든 시작해야 한다. 교훈을, 복수를 끝내기 위한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하며 또 듣는 행위를 이어가야 한다. 지치지 말고 복수와 싸워내야 한다. 끝나지 않을 싸움에서는 멈추는 것이 곧 지는 것이다. 세상 한구석까지 몰리는 순간에도 외쳐야 한다. 말해야 한다.

각자의 과오에 관하여, 지켜내야 할 가치에 관하여.


Why do we kill people to prove that it's wrong to kill people?
                                                             From: FBI: Most Wanted


매거진의 이전글 달콤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