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의 기록
혼자 하는 첫 장기 여행을 작년 11월 말에 떠났다.
혼자 인천공항을 가고,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익숙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덜 된 떠남은 늘 미련이 남아 눈물이 났다. 그게 부끄러운지 혼자 화장실에 앉아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괜찮을 거라고 끊임없이 되새겼다.
하지만 늘 그랬듯, 떠나면 괜찮았다. 진짜로 괜찮은 건지, 혼자여서 괜찮아야 했던 건지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괜찮으니 다행이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적응하는 것은 나에겐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처음 인도에 갔을 때도, 매번 전학을 다니며 새로운 친구를 만났을 때도, 그렇게 다시 미국으로 떠났을 때도, 늘 해왔던 것이었다. 200% 내성적인 내가, 조금이라도 먼 친척을 만나면 경계의 눈빛으로 아빠 뒤에 숨어버리던 내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니, 웃길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13살 겨울,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채, 출석 일수만 겨우 채우고, 졸업장도 아빠가 대신 받아줬던, 처음으로 집을 떠나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 순간,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스물넷 인생의 반 이상을 여행하며 보낸 찐 여행자였고 나는 그 사실에 조금은 우쭐해졌다. (여행을 떠났을 당시 내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울 게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만 생각하고 행하면 되었다. 여행지에서 꼭 봐야 하는 것들이 보기 싫으면 쿨하게 패스하면 되었고, 하고 싶은 것들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부리고 싶은 늦장을 다 부리고 나서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두 달이 지났을 즘에는 매일 입는 옷 두 벌을 제외하면 그다지 필요한 것들도 없었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나 자신도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여행을 한 124일의 시간은 내가 10+년간 여행을 한 찐 여행자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었고, 나만의 스타일로 계속 여행하고 싶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으며, 나를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친해지는 시간이었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을 찾고 나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기엔 조금은 짧은 시간이었고, 비록 일찍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내가 나 자신이 되기까지, 무려 4개월이란 시간이 걸렸고, 나는 감히 그 4개월을 내 인생에 없어선 안 됐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여행은 계속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