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1실

by 혜진

"여기서 네가 제일 멀정하니까 네가 갖다 놔!"


내 맞은편 대각선 침대에 누워 있던 뇌출혈 환자가 다 먹은 식판을 반납하고 오던 나에게 말했다. 본인의 식판도 병실 밖 복도 수납대에 갖다 놔달라는 말이었다.


이내, 그 옆에 창가 쪽 냉장고 근처 침대자리에 누워있던 발목이 부러진 할머니 환자가 질문했다.


"새댁이지?"

"아니요. 결혼한 지 15년 됐는데요."

"애기는 몇 살이야?"

"애기 없어요."

"왜 애기가 없어?"

"..."

"냉장고에 진미채가 있는지 좀 봐 봐. 아니, 그거 말고, 검은 봉지, 그래 그거 뭐야? 우유는 누가 두고 간 거지? 깍두기는 없어?"


할머니는 당신의 발과 손이 되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딱 나인 모양이었다.


내 양 옆에는 팔이 부러진 환자와 마찬가지로 뇌출혈 환자인데, 내 맞은편 환자와는 달리, 골든 타임을 놓쳐 언어 능력과 운동능력을 상실해 누워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할머니가 계셨고, 따님이 상주하며 간병을 도맡아 하고 계셨다. 그 따님 분은 자신의 어머니를 간병할 뿐 아니라, 병실의 모든 환자들의 간병인 인 듯했다. 환자들의 식사가 끝나면 식판을 밖에 가져다준다던지, 발목을 다친 할머니가 원하는 반찬을 꺼내 준다던지 하는 역할까지 맡아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거동이 전혀 되지 않았고, 말도 겨우 대답만 하는 정도였다. 당연히 대소변도 따님이 직접 받거나, 헬프 간호사들이 와서 갈아주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잔잔한 분위기를 만들며, 커튼 뒤로 소곤소곤 자신의 어머니에게 얘기하는 소리는 매우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통화를 듣고 있자니 형제자매들은 바빠서 못 오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바쁜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엄마에게 전하는 모습과 5일 뒤에 오는 큰 언니의 소식을 전하며, 그전까지 빨리 회복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로 어머니와 다짐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울렸다.


5인 1실과 같은 다인실의 분위기는 대략 이렇다. 새벽에 응급환자가 들이닥쳐, 조명을 켜도 이해해야 하고, 운동 능력을 상실한 뇌출혈 환자의 배변을 새벽 2시에 갈아도 그 냄새를 견뎌야 하며, 머리에 핀 조명을 달고 새벽에 돌아다니면서 혈압을 재고, 채혈을 하는 간호사를 위해 조용히 팔을 걷고 내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다른 환자의 가족 혹은 가족들이 와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떠들더라도, 커튼 뒤로 같이 들어주고, 때로는 그 가족이 싸 온 간식을 얻어먹기도 하며, 가족이 떠난 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수술을 받거나, 보험 진단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병을 진단받은 환자는 맞은편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줄 수도 있다.


그날따라 병실에는 방문객이 많이 들이닥쳤다. 대한민국 사람은 빈손으로 오지 않지. 다들 저마다 제철 옥수수, 감자, 방금 튀긴 도넛 등을 싸왔는데, 남일에 관심 많고, 또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그 발목에 붕대를 하고 있던 할머니는 당뇨가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같이 먹고 즐기는 이 분위기가 좋아 간호사의 만류에도 주어지는 간식을 다 드시고는 밤에 혈당이 높게 나와 결국 인슐린주사까지 맞으셨다.


"내가 뭐랬어? 드시지 말랬잖아."

"아이고, 혈당이 진짜 높게 나왔네. 다음에는 안 먹을 게."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방금 튀긴 도넛은 누가 봐도, 건강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당뇨환자들은 조심해야 하는 음식 재료라는 것을 알 텐데... 간호사가 드시지 말라고 하는데도, 다른 환자와 그 가족은 세상 사람 좋은 척하며 권했고, "아이고, 이거 먹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할머니는 열심히 받아 드셨다.


다리가 불편한 그 할머니는 화장실을 가실 때마다 호출 버튼을 눌러서 대기하고 있는 헬프 간호사들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 옮겨 타시고, 휠체어에서 변기로 들려 옮겨져야 하는 불편을 겪으셔야 했는데, 그날 따라 화장실을 자주 가야 했던 할머니는 결국 어두운 병실 안에서 '쿵'하는 소리를 내며 휠체어를 혼자 타다가 넘어지셨다. 그야말로 생난리. 새벽교대 간호사는 할머니를 나무라기 시작했고, 헬프 간호사들도 달려와 왜 호출버튼을 안 누르셨냐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아니, 부르기 미안해서 그랬지."

"뭐가 미안해? 이게 더 미안한 거야!"

"아잉, 화내지 말아."

"화내는 게 아니고, 걱정되니까 그렇지."


대화는 점점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호출 버튼을 왜 안 누르셨어요?"

"눌러도 안 오던데?"

"저희 안 온 적 없어요."

"이상하다. 아무리 눌러도 안 와서 내가 혼자 해보려고 했지."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호출을 했는데 헬프간호사가 오지 않아 할머니가 혼자 휠체어를 타려다가 넘어진 것은 생각보다 큰 일이었다.


헬프간호사가 다시 와서 따져 물었다.


"할머니, 우리가 언제 안 왔어? 우리가 안 온 적이 있었어?"

"아니, 항상 왔는데, 이번에 아무리 눌러도 안 와서..."

"할머니, 호출 버튼 이거 보이죠? 이거 눌러서 안 오면, 여기 빨간색 버튼 누르셔요. 호출 버튼이 고장 났나 봐. 여기 옆에 둘게요."

"우리 안 온 적 없어요. 아셨죠?"

"알지. 그럼."


다시 병실 간호사가 찾아와서 정리를 했다.


"할머니, 어디 아픈덴 없으세요?"

"아니, 없어."

"없지? 있으면 말해야 해. 이거 버튼이 고장 났나 봐. 앞으로는 이거 빨간 버튼 눌러."

"혼자 가려고 하지 말고, 꼭 우리 불러야 해."

"그러게. 버튼이 고장 났나 보네."


그들은 암묵적인 합의를 본 듯했다. 간호사들의 입장에서는 할머니가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안 오게 된 상황에 대한 답변을 마련해야 할 듯했고, 할머니 역시, 이 일이 불거지면 성가스러운 각종 CT를 비롯한 검사를 받아 봐야 하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버튼이 고장 난 것으로 마무리하고 넘어가는 듯 보였다.


그렇게 다음 날,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난 일에 대해 간호사의 탓을 하기 시작하며, 병실 간호사 및 헬프간호사 몇 명을 뒷담 화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서 그랬다는 할머니의 대응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거나, 어쩌면 할머니는 이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 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0여 년 전, 고작 신장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 2박 3일을 입원하면서 본 간호사들은 의사보다 더 희생적이었다. 간호사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라면, 그들은 천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각자에겐 역할이란 게 있다. 그 역할만 잘해도, 사회가 혹은 병실이 안전하게 훈훈하게 돌아갈 수 있다. 간호사의 역할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렇다면 환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작가의 이전글가볍게 다가온 무거운 장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