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씀..
2045년, 저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10년 넘게 헌신해 온 직장을 퇴사하면서 말이죠. 오늘은 제 모교인 대학교 안에 카페를 차리고, 첫 장사를 하는 날입니다.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마스크를 끼며 장사 첫날을 기대합니다.
새내기 때 생각한 꿈을 30년 만에 이룬 셈이었습니다.
30년 전 교내 카페는 학생들에게 공부방이자, 놀이터이며, 쉼터였습니다. 아아로 숙취를 해소하는 술꾼들, 가위바위보로 몰아주기 내기를 하는 학생들, 팀플레이 과제를 하는 학생들까지, 언제나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는 공간이었죠.
그때 "여기에 카페를 차리면 돈 좀 벌겠는데? 나중에 직장에서 질리면 내가 여기에 카페 차려서 사장님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죠. 사실 돈보다는 낭만이 있잖아요. 학생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는 카페 사장이 된다는 것이 말이죠.
소식적 상상을 하며 첫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개강 첫날인데, 생각보다 학교에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대학교 입시 준비 인구가 줄고, 대학이 많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봤지만, 그래도 예체능이 유명하고, 불교학교에 다녔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이잉' 자동문 센서에 반응하며 문이 열렸습니다. 첫 손님은 외국인 친구들이네요. 한국어를 할까, 외국어를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한국어로 주문번호를 불러주며 커피를 드렸습니다. 그다음 손님들도 외국인입니다.
그다음, 그다음도. 하루 종일 장사를 했지만, 한국인 학생은 10팀정도 받은 것 같습니다. 한국 대학굔데 외국인이 더 많아진 것 같네요. 줄어든 입시생 수를 외국인 유학생을 많이 받으면서 학생 수를 유지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젊은 층 인구가 줄었나....' 괜히 씁쓸해집니다.
첫날 장사를 마쳤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30년이 지난 대학교는 정말 많이 바뀌었더군요. 카페는 더 이상 학생들이 중심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보단 교직원, 대학원생, 교수님들의 쉼터, 세미나실로 바뀌었습니다. 학기 초 인지 아직 말도 어눌한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카페가 전체적으로 조용했습니다. 시끌벅적한 30년 전 분위기는 없어지고, 차분한 카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학생들이 야외에 풀밭에 앉아 커피를 즐기기를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카페 내 테이블과 의자를 줄이고 슬리핑색이나 다른 것들을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퇴근을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동대입구역 6번 출구를 이용해 지하철을 타러 내려갑니다.
35년 전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전진이 여기서 춤을 췄었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관심도 없겠죠? 하긴, 대부분 외국인 친구들인데, 30년 전 한국 예능에 관심이 있을리가요.
'삐빅, 2000원입니다.' 지하철에 들어섭니다. 개찰구 앞에선 아주머니가 직원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아니 글쎄 나 어제까진 무료로 탔다니까? 왜 못 들어간다는 거야?"
"어르신, 오늘부터 법이 바뀌여서 77세 이상부터만 대중교통 무료 이용이 가능하세요"
저런, 뉴스에 나오던 대중교통 무료 이용 나이 개정안이 오늘부터인가 보네요.
10년 전 65세에서 70세로, 5년 전에 75세로 올라가더니, 또 올라갔습니다.
지하철에 타니, 파란색 청년 좌석이 비어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교통 약자석, 임산부석이 따로 있었는데, 요즘은 청년 좌석이 새로 생겼습니다. 청년들이 별로 없으니 여기 앉아라~라는 거죠.
자리에 앉아 유튜브를 켭니다. 알고리즘이 '대학교 청년 인구 감소, 국내 30개 대학만 남아', '인구절벽 체감 10년째, 대한민국 소멸까지 30년'이런 영상들이 올라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 전, 생동감 넘치는 대학의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좋았고, 그 에너지가 떨어질 때쯤 그것을 채워주는 카페 사장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대학은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요즘 사회가 그런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새싹보다 고목들이 많아진 세상. 전체적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사회의 모습이요.
꿈을 이룬 날이지만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오늘 밤 꿈을 꾼다면, 30년 전 카페로 돌아가 정신없이 커피를 타는 사장이 되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