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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Jun 22. 2024

그래도 교실에 간다.

그것도 아주 씩씩하게

정신의학과를 꾸준히 다니기 시작했고 그 사이 개학을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 두려웠다. 숨이 막힐 때마다 걸음을 멈춘 탓에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걸어가지 않는 날에는 일찍 와서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한참을 울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한참을 울고 또 숨을 고르고 기도까지 마치고 나면 유치원에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비어있는 신발장만 봐도 숨이 가빠지던 나는 신기하게도 교무실에 들어가면 너무나도 멀쩡해졌다. 내가 병원에 다닌다는 걸, 약을 먹는다는 걸 나 자신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무실 문만 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생님들과 농담을 나누고 내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가끔은 사람들 몰래 필요시 약을 먹어가면서 버티는 내 모습이 때로는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교실에 들어가면 나는 더욱더 힘이 났다.

내가 무너지면 고작 네 명 밖에 안 되는 우리 아이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특수교육 실무사님, 특수학급 방과 후 선생님, 통합학급 선생님, 학부모님 그 외에도 나와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서로 신뢰 관계를 쌓아 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내 자리를 더욱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부러 더 밝게 행동했다. 이 또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공황발작이 시작될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졸였다. 또 우울하고 불안한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교무실과 교실에서 누구보다 힘을 냈던 나는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무섭고 두려웠다. 특히 학부모님들에게 더욱 그랬다. 아이들의 작은 상처 하나에도 벌벌 떨게 됐고 이걸 학부모님에게 전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나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살았다. 꼭 무슨 일이 있지 않아도 매일이 그랬다. 아이를 칭찬하는 전화를 하려다가도 수화기를 들다가 멈칫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은 꿋꿋이 했다.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내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겉으로 보면 나는 너무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었고 지난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버텨내고 있었다. 사실 아동학대 관련 조사는 학기 중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지난 일도 아니었다.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유치원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매일이 무기력했고 몸살이 난 듯이 몸이 아팠다.


기를 쓰고 버티는 동안 내 증상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유치원이나 그와 관련된 공간이 아니어도 시도 때도 없이 공황발작이 시작됐고 집, 교회, 길거리 할 것 없이 숨이 막혀왔다.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은 나를 더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는 유치원을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매일 교실에 갔다.

이게 날 더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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