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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윔지테일 Dec 15. 2024

반달 소나타_그날

<Full Moon> 넬

- 왜, 몸 팔아서 돈 번다고 하시니?

- 뭐?

- 신경 쓰였다면 미안. 그냥. 나는 괜찮다고. 우리 엄마는 나 고등학교 때 내가 곱창구이 좋아한다니까 원조교제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거든.

- 뭐라고?

- 그래서 내가 글 쓰는 것도 안 좋아하셔. 나는 이런 것도 다 글로 써버리니까.


 광호는 전화를 끊은 뒤 내뱉은 혜성이의 말에 놀랐지만 그걸 바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방학이 낀 평일 저녁이라 해도 홍대는 홍대. 큰 규모의 카페를 감당하기 위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의 등장에 그 흐름이 끊겨 버렸다. 둘은 입을 다물고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저 눈빛을 주고받는 시간이 조금 늘었을 뿐. 손목이 나가라 그라인딩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10시. 둘은 새벽 알바와 간단한 인수인계를 끝내고 카페를 나섰다. 평소처럼 목례를 하고 가려는 광호에게 혜성이가 한 마디 건넸다.


- 날도 추운데 밥 먹고 가자.

- 나 순댓국 먹으러 갈 건데.

- 그럼 같이 가. 근처야?


 광호는 고갯짓으로 혜성의 퇴근길 반대방향을 가리키며 걸었다. 말없이 뒤쫓아오는 혜성에게 말을 거는 광호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 집에 연락 안 해도 괜찮아?


 아무래도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딸아이를 걱정할 부모님 생각이 난 것이지만 이를 들은 혜성이의 대답이 생각보다 가볍다.


- 왜? 순댓국집이라 그러면 얼마 받냐고 물어볼 텐데?   


무심한 듯 내뱉은 혜성이의 말에 광호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남들 같음 순댓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나 싶겠지만 둘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광호의 전화 한 통으로 둘은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개인적인 대화는 인사 정도였는데 도플갱어같이 닮은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안 순간. 망설임은 사라지고 침묵 속 공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자 마음으로만 생각했던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 너야말로 네 여자친구한테 연락하지 그래.

- 요새 냉전 중이라.


 광호에게 여자친구가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 해도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데 그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리 없다. 광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귈 생각은 없었다. 사실 광호가 아니라 그 어떤 누구와도 연애,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혜성의 연애조차 막아버렸다. 지금 느끼는 광호를 향한 호감은 드디어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 기쁨이 너무 컸다. 다만 말로써 엄마 이야기를 한 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떤 식으로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것뿐이었다.


 아무 말 없이 광호의 뒤를 따르다 보니 온 거리를 비추던 네온사인은 사라지고, 어느새 골목길 끝에 조용히 자리 잡은 '24시 정통 순대국'이라는 간판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24시'라고 크게 쓰인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혼자 밥을 먹는 몇몇 중년의 남자들이 초록색 소주병을 친구 삼아 밥을 먹고 있었다. 뚝배기에 얼굴이 가릴 정도로 고개를 박고 순댓국에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좌식 자리 한쪽 구석에는 식당 종업원인 듯 한 아주머니가 몇 개의 방석을 포개어 베개 삼아 베고 누워 있었다. 광호는 익숙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식당 구석에 있는 식탁으로 가며 나에게 묻는다.


- 너도 순댓국 먹지?


혜성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광호가 주방을 향해 외치며 자리에 앉았다.


- 이모님. 저희 순댓국 두 개요.


광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주방 이모가 나와 광호를 쳐다봤다.


- 깜짝이야. 잘못 들은 줄 알았네. 누구야?

- 카페 직원이요.


 광호의 심드렁한 표정이 재미없었는지 주방 이모는 다시 몸을 감췄다.


- 집 가기 전에 여기서 밥 먹고 가거든. 맨날 혼자 왔는데 두 개 시키니까 놀랐나 봐.

- 왜, 집 가서 안 먹고.

- 밥 차리겠다고 달그락 거리다가 엄한 소리 듣느니 돈 쓰는 게 낫지.


 이번에는 혜성이가 웃음이 터졌다. 그 말을 시작으로 둘은 갑자기 입이 풀렸다. 사실 입이 풀렸다고 해봤자 본인 엄마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이 원했던 건 엄마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나는 너를 알고 있다는 긍정이었으니까.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들의 인사, 'I see you.' 그게 필요했었다. 잠시 후, 아까 방석을 베고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납작하게 눌린 옆머리로 순댓국과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혜성이 소주를 밀어내며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 저희 소주 안 시켰는데요.

- 시킬 거 같아서요.


 한 마디를 내뱉고는 아주머니는 다시 본인이 누웠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문득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은 카페 종업원들을 게임 속 NPC처럼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해 본인들의 비밀을 있는 대로 발설하고는 했다. 가끔 누가 와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갈 때면 그 이야기는 카페 내의 가십처럼 퍼졌다. 그걸 잘 아는 사람들이 단골집에서 그런 얘기들을 떠벌렸으니. 오히려 소주를 건네받은 게 당연한 일이었다. 둘은 다시 입을 다물고 여느 중년 남자들이 그렇듯 순댓국만 바라보며 밥을 먹고 가끔 소주 한 잔씩 나누어 마실 뿐이었다.

 

  뚝배기와 소주 한 병을 비운 두 사람은 말없이 가게를 나섰다. 취기에 살짝 알딸딸한 상태로 찬바람을 맞으니 저절로 크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 멀리 떨어진 번화가의 네온사인이 무색하게 밝게 비추는 보름달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멍하니 달을 쳐다보고 있는 혜성 옆에서 광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 나도 담배나 배울까.

- 맛있긴 한데, 난 후회 중. 왜 배우려고 하는데.

- 글 쓰는 사람들이 스트레스 푼다고 꼭 하는 세 가지가 있거든? 술, 담배, 커피. 나는 술도 그닥이고 담배는 안 피우니 커피만 마시는데. 그래도 좀 답답해서.

- 담배의 좋은 점은 내가 보기엔 하나밖에 없어.

- 뭐?

- 내 한숨의 길이가 보인다는 것.

- 그거 좋네. 나는 겨울에만 보여서 아쉬웠는데.


하며 혜성이 입김을 불어 달을 향해 내뱉는다.


- 내 숨이 달까지 가 닿을 수 있을까.

- 과학적으로 설명해 줘?

- 아니. 알고 있으니까 하지 마.


 혜성의 말에 광호는 최대한 깊게 담배를 빨다가 달을 향해 연기를 내뱉었다. 담배 연기가 달을 향하는 듯하다가 하늘에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뿌연 연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일까. 혜성이 급하게 다시 입김을 불어봤지만 하얀 입김보다 더 하얀 달빛에 묻혀 사라졌다. 광호가 그런 혜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심한 듯 혜성의 손을 잡았다. 놀란 혜성이 광호를 바라봤지만 광호는 여전히 담배를 태울 뿐이었다.


- 뭐 하냐.

- 춥잖아.


 혜성의 침묵에 광호는 고개를 돌렸다. 몇 달을 같이 일하면서도 혜성의 눈을 제대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꼭 어린 시절에 같이 밤산책을 하듯 졸졸 쫓아다니던 달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광호는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내고 대신 혜성의 입술에 가 닿았다. 광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것도 잠시, 혜성은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광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광호의 담배향 가득한 입술을 받아들였다. 담배 냄새 안 좋아하는데. 그런데 그게 광호라고 생각하니 아무 상관도 없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광호와 혜성은 서로의 입술과 멀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떨어져 길을 걸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혜성이 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뗐다.


- 나 저기서 버스 타고 가야 해.

- 기다려 줄까?

- 아니.


 혜성의 거절에도 광호가 대답을 하지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망설이자 혜성이 광호의 양팔을 꽉 잡았다. 추워서일까. 혜성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 아무 일도 없던 거야.

- 그렇지만.

- 우린 그저 서로를 발견해서 기뻤던 것뿐이야.

- ... 그래.

- 내일 봐.

- 그래. 내일 보자.


 혜성은 미련도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멀리 있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광호도 그런 혜성을 등지고 걸어가다 뒤를 돌아 혜성을 바라봤다. 혜성이의 입김이 길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Full Moon> 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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