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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윔지테일 Dec 08. 2024

반달 소나타_혜성

<달> 짙은

 머리맡에 울리는 진동소리. 갑자기 번뜩 뜨이는 눈은 아직도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눈 대신 손으로 찾아낸 핸드폰은 4시 30분을 알리며 계속 미세하게 본인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새벽 기상을 시작한 이후로 모닝콜을 진동으로 바꿨다. 옆 자리에 자고 있는 K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더 정확할까. 잠버릇이 심한 K와는 결혼할 때부터 다른 침대를 썼다. 모닝콜만 아니면 K를 깨울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본인의 코골이에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하긴 했지만.


나도 내가 K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등살을 이기지 못하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떠난 미국 유학. 우리는 대학교 내 한인 학생회에서 만났다. 으레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만나는 유학생끼리의 연애인 줄 알았는데. 장거리 연애는 죽어도 못한다는 K와 결혼식장에 들어선 건 순식간이었다. 우리의 부부 유형을 분석해 보자면, 좁은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도 눈에 띄는 워너비 그 자체였다. '대학 졸업도 못할 것 같던 이민 1.5세 남자가 유학 온 한국 여자와 결혼하더니 점점 사람 구실 하더라'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으니까. 시부모님 조차 자식 결혼 잘 시켰다는 칭찬을 들었다. 아직도 손자를 못 본 게 안타깝지만 그게 뭐 대수냐며. 미국 이민까지 왔는데도 그저 그렇게 살아갈 것 같던 아들놈이 결혼하고서 교회도 나가고 새 사람이 됐으니 시부모님이 싫어할 건더기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K의 노력 없이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변화의 시작에는 내가 있었다. 미국 내에서 건실한 한인으로서 생활하는 데에는 한인교회만 한 것이 없기에, 무늬만 기독교 신자인 남편을, 종교라면 질색인 내가 데리고 다녔다. 참을성 없이 몇 주 만에 무슨 일만 있으면 회사를 때려치우던 버릇도 뜯어고쳤다. K가 한국 식당 하나 없는 깡시골에서 회사 직원들과 한국 음식으로 회식을 하고 싶다는 말에 우리 집을 파티룸으로 꾸미기도 했다. 정작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면서. 남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즐겼던 K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명성이 쌓이자 이름 있는 대기업에 가겠다며 갑자기 거주지를 바꾸자고 했고, 나는 군말 없이 그 길에 동행했었다.


 우리 또래의 교회 사람들은 K에게 항상 궁금해했다. 어떻게 결혼을 한 뒤로 모든 것이 잘 풀리는지. 본인의 결정대로 살 수 있는지. 어떻게 나는 그걸 다 군소리 없이 해주는지 말이다.


- 서로에게 당연한 건 없다고 얘기해 주거든. 고맙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아.


 K의 대답에 사람들은 항상 반짝이는 눈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할렐루야 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미혼의 신자들은 결혼이 좋냐, 좋은 결혼 생활은 어떻게 유지하냐, 질문을 퍼부었다. K는 다시 어깨를 으쓱이며 답을 이어갔다. 그랬다. 우린 그런 워너비였다.  




 항상 아침을 힘들어하던 나였기에 아마 내가 4시 반에 일어나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안다면 미국에 보냈더니 사람이 철들었다며 놀랄지도 모르겠다. 겨우 떠지는 눈을 비비며 침실을 나와 출근 준비를 마쳤다. 옷까지 갈아입고서 거실에 나와 토스트 하나를 뜯었다. 그리고 집어드는 책 한 권. <한 방에 끝내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 자격증>. 경리로 미국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온갖 데이터, 숫자와 친해져야 했다. 하던 게 도둑질이라고, 처음 제대로 돈 버는 방법을 영수증 정리로 배운 탓에 한국에 돌아가서 글로 밥 벌어먹을 방법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데이터 분석 자격증을 따서 한국에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였다.


  제대로 이해하는지 알 수도 없는 글자들을 잔뜩 읽다가 책 한편에 있는 QR코드를 핸드폰에 읽혔다. 그때 안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K가 일어난 모양이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대로 가방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와 밖에 세워진 자동차에 올라타니 핸드폰에서 동영상이 켜진 소리가 들린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데이터 분석 기획의 이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핸드폰을 자동차와 연결해 카오디오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회사로 운전해 가는 자투리 한 시간도 소중했다. K와 이혼을 할 준비를 하려면 그것조차 부족했다. 더 이상 K와는 살 수 없다. 이미 이혼하자고 얘기했고, 대놓고 한국 갈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K는 아직도 내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잊을만하면 어렵게 나를 불러내서 이런 얘길 하는 거다.


- 오늘 교회 가서 목사님이랑 상담할까 하는데, 갈래?

- 왜? 가서 목사님한테 내 마음 돌려달라 하게? 너 때문에 부부 상담도 다녀왔고, 거기서도 이미 난 끝났다고 확인했잖아?


 내가 뱉은 말 한마디에 K가 어떤 대응도 못하고 풀이 죽어 그대로 뒤돌아서 방에 들어가 망할 놈의 게임을 하는 것. 그게 요즘 우리의 대화 패턴이었고, 그 사건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쩌다 보니 결혼 생각도 없던 내가 미국에서 K와 결혼하게 된 건 나를 사랑해 준다는 것, 그리고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 그뿐이었다. K에게 한 번은 왜 나랑 사귀고 결혼할 생각을 했냐 물어봤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 나는 너처럼 아는 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어. 내가 어떤 주제를 꺼내도 너랑 대화가 되는 게 너무 신기해. 너랑 있으면 배울 게 많아서 좋아.


 그냥 나를 사랑해 주는 모습이 좋았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친구들이 모두 눈에 밟혔지만 그걸 모두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신혼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K의 눈을 바라보면 그냥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그걸 돌려줄 방법은 그의 곁에 오래도록 있는 것이었다. K는 그럼에도 나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바랐다.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알까 고민하다 아이를 갖겠다고 했다. 사실 아이도, 결혼도 나에게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으니까.

 

 엄마는 여느 엄마와 다름없었지만 여느 엄마와는 달랐다. 나를 사랑했기에 나에게 잔인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카페 알바를 할 때 막창집에서 회식을 한 적이 있었다. 밤늦게 아르바이트하는 걸 좋아하지 않던 엄마는 퇴근 시간 한참 넘어서 기름쩐내를 옷에 가득 묻히고 온 나에게 이게 무슨 냄새냐며 타박을 했다.


- 저녁 알바끼리 막창집에서 회식하고 왔어. 베란다에 옷 두고 올 테니까 그만 뭐라고 해요.

- 막창? 저번에는 곱창 먹고 왔잖아. 넌 무슨 아저씨 같은 음식을 먹고 다녀. 엄마는 먹은 적도 없는데. 누가 너한테 그런 음식 가르쳐 줬어? 너 원조교제하니?


 본인이 알려주지 않은 것을 내가 알 때마다 엄마는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몇 해를 두고 싸웠지만 엄마는 학교 외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누구에게 조언을 얻으려 해도, 특이한 엄마의 존재는 상대방에게 '우리 엄마는 저 정도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위안과 가십만 될 뿐이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의 이야기인 척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게 내 대학을 결정할 줄은 몰랐지만. 가끔 엄마는 내가 쓴 글을 몰래 읽어보고는 했는데, 집안 얘기를 떠벌린다며 분노하듯 싫어했다. 나는 내 이야기는 그렇게 글로써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광호를 만나기 전까지는.


 하루는 광호와 둘이서 평일 알바를 할 때였다. 광호랑 인사 정도만 주고받는 사이라 어색했는데, 광호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 호빠? 그게 아들한테 할 소리야? 차라리 진짜 호빠를 다니는 게 낫지! 그래야 돈 많은 여자 하나 잡고 그놈의 집구석에서 당장이라도 나갈 테니까!


광호가 내뱉은 그 한 마디에 광명을 찾은 듯했다. 드디어 찾았다. 나와 같은 사람.




 출근을 해서 보니 한국에 있는 광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광호가 최근에 야간으로 근무 시간을 바꾸면서 내 활동 시간에 연락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연락을 자주 했던 건 아니지만.


- 통화됨? 상담 요청요

- 난 언제든 상관없음. 무슨 일?

- 여자. 너 남편 없을 때 통화하는 게 편하지?

- 응. 이따 퇴근할 때 문자할게. 아마 너 시간으로 4시. 나 퇴근 한 시간 걸림.

- ㅇㅋ


 이 상황에서 여자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니. 사실 광호에게 할 이야기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결혼한 이후로 광호도 나도 혹시나 있을 오해 때문에 연락이 조심스러워 뒤돌아 삼키는 말들이 꽤 많았다. 아무래도 여자 이야기로 길어질 것 같으니 나도 내가 할 얘기를 정리해 놔야 할까. 그래.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 저번 한국 출국 다음 날 이야기가 좋겠다. 한국에서 광호를 만나 점심 한 끼 같이 할 때까지만 해도 별 탈이 없었으니까.


 4년 만에 한국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2주 만에 다시 미국에 돌아간 날. 미국에서 잘 생활하고 적응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에 있자니 미국에 가기 너무 싫었다. 내 언어도 아니고, 친하게 지내던 모두가 없는, 오직 K만 있는 곳은 나에게 너무 공허하게 느껴졌다. 가족들과 교류가 활발한 편도 아닌데, 심지어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 거리는 엄마조차 오랜만에 보니 왠지 모를 안정감이 있었다. 게다가 출국 전 날, 엄마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 너 얼굴 너무 상했어. 사진 보니까 K는 보니까 얼굴이 폈던데. 니 인생 살아. K 인생 살지 말고.


 그래도 나의 삶은 이제 미국에 있는 것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선택한 삶인데. 미국행 비행기에서 한바탕 울어재끼고 나절 넘게 구겨 넣었던 몸을 비행기에서 겨우 떼어냈을 때 나를 데리러 온 K를 발견했다. 한껏 밝은 표정의 K에게 도저히 웃어줄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지만 일단은 나도 반가워하며 K의 차에 올라탔다. 그러다 K가 그 질문을 한 거다.


- 미국 다시 돌아오니까 어때?

- 미국 오기 진짜 싫었어.


 예전 같으면 거짓말이라도 '와서 좋다.', '여기가 이제 집이지.' 따위의 소리를 했겠지만 도저히 그런 말들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말을 들은 K의 침묵에 돌아봤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부부 사이의 바람이 금방 들키는 이유는 얼굴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메시지가 금방 읽히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K는 내가 한국에 두고 온 것들에 안쓰러워하지 않았다. 본인이 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서운해했다. 나는 또다시 너와 살기 위해 돌아온 건데.


 - 이제 그만 놀고 아이 가져야지.


 긴 침묵 끝에 K가 내뱉은 결론이란 게 결국 아이였다. 그제야 깨달았던 거다.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아, 나는 K의 트로피였구나. K의 뒷받침 이상의 의미가 없는 삶을 살고 있구나.




퇴근 시간이 되기만을 바라면서 시계를 바라본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미국에서 돌아갈 곳이 집 밖에 없다는 게 끔찍할 지경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으니 회사에 있는 시간이 제일 숨쉬기 편했다. 그래도 오늘은 퇴근길에 광호와 통화를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5시가 되자마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며 짐을 챙기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 같으면 10분 정도 더 있다가 회사를 나섰을 내가 급하게 짐을 챙기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 태양빛이 머물고 있었지만 어둑해지는 하늘 한편에 보름달이 크게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한국에도 아직 저 달이 떠 있을까. 광호에게 5분 뒤에 전화를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퇴근길이 이렇게 설레다니!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자마자 전화기가 울린다. 광호다.


- 어. 나 방금 차에 탔어.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인데?



<달> 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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