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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ie Choi Jul 24. 2024

지금 2030은 '감각의 제국'이 생각나게 한다.

영화 감각의 제국이 생각나는 사회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회고한다.

이번 글은 정제없이 그냥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작성하려고 한다.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우리가 접하는 모든 뉴스들이 이슈가 다들 서로를 원망하고 있는 것들로 많이 귀결되고 있는 듯 하다.


본인은 최대한 유튜브 알고리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거부하고자 하여 뉴스에 관심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이 상황에서 문득 이 알고리즘에 대해서 무서움과 역겨움을 알게 되었다.

나도 한동한 재미와 쾌락만을 추구해오고 있었다는 것.

이제 벗어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두서없이 회고록을 작성한다.


일본 영화 중 '감각의 제국'이라는 영화가 있다.

1930년대에 일어났던 아베 사다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성도착자 커플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성인이 되어서 해당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감각의 제국'은 대단히 유미주의적인 작품이라 표현한다. 표현 수위가 굉장히 포르노를 연상시킬 정도였으며 이게 예술적 가치를 가진 영화인지 포르노 즉, 쾌락만을 위한 상품인지 구분이 어려운 영화였다.
음모 노출은 예사이고 실제 정사씬이 그대로 나오고 성기를 절단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도덕성·대중성을 따지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영화의 주인공이 자기 파괴적인 애정과 육체적 집착에 빠지는데

그래서 이 작품을 지금의 2030 시대상과 굉장히 닮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도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도파민'이라는 단어에서 여기까지 흘러왔다.


이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마치 플렉스, 욜로, 스웨그, 스껄 하물며 정말 경악스러웠던 것은 트위터라는 음지?에서 행해지는 정말 감각의 제국 현실판이 트위터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들이 '멋짐'과 '자기홍보'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 또한 너무나도..놀라웠다.


우리는 감각의시대, 도파민이 판을 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각적인 자극과 쾌락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듯 하다.

시끄러운 강남역 1번 출구 근처 오피스텔에 있다 지금은 그래도 조용한 곳으로 이사를 해서 다행이나.


강남역 1번 출구 쪽에 있으면서 살면서 한번 경험해볼까 말까한 경험들

그리고 젊은 청춘들의 이성에 대한 본능과 서로를 유혹하기 위한 행위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이제와 극적으로 생각해보니 지금 시대가 너무나도 에피쿠로스적 행복 즉, 쾌락적 행복 추구에 절어져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최근 2030세대의 '풍' 발병율이 극도로 높아졌다.

알코올에 절어있는 자 들이 너무 많고 쾌락만 탐닉하는 자들이 더욱 더 많아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마약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고, 책임없는 쾌락이 하나의 오락으로 작용이 되고 있다.


에피쿠로스적 행복 추구는 중독에 빠지기 너무 쉽다.

10대 때 부터 꽤 많은 동년배 그리고 10대 20대 친구들이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에피쿠로스적 쾌락을 학습을 해왔던 것 같다. 한때 학창시절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정신이 여기저기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물질적 풍요가 행복이라고 대답하는 다수들이 많아지게 되는 결과가 된 것 아닐까? 이 상황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 같다.

그러니 도파민이라는 단어에 다수가 공감하고 호응하고 밈처럼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이게 시작이라고 본다.


이런 쾌락의 중독은 물론 자신을 망가뜨리기 너무 좋은 환경에 놓여진다.


에피쿠로스적 행복의 위험점을 하나씩 정리해봤다.

(중독의 위험은 앞전에 설명했으니 넘어가고)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목표 설정과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에피쿠로스적 행복은 현재의 쾌락을 중시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이나 성취를 위한 노력을 경시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더 깊은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적 행복 추구는 개인의 쾌락을 우선시하기에, 사회적 책임감과 도덕성을 저해한다. 개인의 쾌락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행동을 정당화하게 된다. 이는 사회 전체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에피쿠로스적 행복 추구는 필연적으로 공리주의와 사회주의로 치우치게 만든다고 하는데,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하며, 이는 때로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물질적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경시하고, 물질적 평등을 위한 강제적인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면, 일시적인 만족감은 얻을 수 있지만, 지속적인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 쾌락은 일시적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강도가 줄어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이는 심리적 불안과 불만족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정리된 내용들을 본다면, 우리의 MZ 세대의 문제들로 꼽히는 모든 이슈들과 꽤 비슷한 점들이 보인다.


지금 MZ 세대의 무기력함, 도파민들, 유튜브, 릴스, 무책임한 행동들, 내로남불, 자신이 넘는 선은 Ok 그러나 남이 넘는 선은 절대 No 등등


지금 정말 다수의 MZ 세대의 친구들이 에피쿠로스적 행복에 절어져 있는 상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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