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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May 22. 2024

우산도둑 사건

서울특별빌라 시리즈 1(313호의 시점)

원룸에 살며 우산꽂이를 마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신발장이 회탁한 빛으로 축축해지게 되거나, 집안에 물이 튀게 되어 휴지로 닦아내야 하거나, 결국은 문손잡이에 한 개의 우산만을 두고서는, 그 우산을 어딘가에 (이를테면 회사나 학교 같은 곳 말이다.) 두고 오면 존재론적 회의를 느끼며 편의점에서 우산을 구매해야 하는 것이 원룸 거주민의 의례다.

이렇게 원룸과 우산꽂이의 관계성을 줄줄이 열거하는 것에서 알아차렸을 테지만, 나도 원룸에 거주한다. 내가 사는 원룸은 서울특별시, 지상구 낙원동 서울특별빌라, 촌스러운 이름의 거주지다. 닭장과 같이, 한 방에 한 명이 살고 있는, 수십 개의 호들이 모여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서울특별빌라는, 방음이 그닥 잘되지 않아 옆집이 기타를 친다거나 말다툼을 한다거나 할 때에, 음악을 감상할 수도 흥미진진하게 팝콘을 집으며 싸움을 구경할 수도 있는 문화체험의 기회가 왕성한 원룸이다. 먼젓번에는 413호 남자의 생일이었는지 내 머리 위(짐작했겠지만 나는 313호에 살고 있다.)에서 친구들이 떼로 모여 생일 축하파티를 하는 것을 자장가 삼아 나는 쓸쓸히 어두운 방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서울특별빌라의 인구밀집도와, 서로의 사생활을 낱낱이 알고 있는 정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은 이쯤이면 되었고,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지난 장마철에 서울특별빌라에서 일어난 우산도둑 사건에 대해 낱낱이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다. 지난 장마철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원래 비가 길게 그리고 자주 오는 기간이 장마철이라지만 지난 장마철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을 제하고는 비가 그친 날이 없다시피 했다. 당연히 원룸 사람들은 공동현관을 나설 때마다 우산을 챙기고 다녔고, 매번 어딘가에 갈 때마다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만 핸드폰을 만지거나 가방을 들어야 하는 일은 물론 귀찮았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방점은 보관에 있었다. 우산꽂이를 원룸안에 마련하기는 어려웠고, 사람들은 복도에다 우산을 펼쳐 말려두는 척하며 보관을 겸하고는 하였다. 복도는 가지각색의 우산들로 채워져 있었고, 복도를 다니려면 외줄 타기를 하듯 한발 한발 벽 끝을 사뿐히 걸으면서 다녀야만 했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민원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짠돌이로 근처 동네에 소문이 난 우리 집주인이 먼저 그런 일을 했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아! 시간순으로 말하자면 먼저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공지가 붙었다. 공지의 내용이라 함은 이러하니,


복도에 우산을 말리지 않기 바람. 통행에 방해가 됌!


맞춤법을 무시한 도발적인 공지였다.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으며 우산을 복도에 보관하는 것도 금하지 못하였다. 서울특별빌라의 1층부터 5층까지 도합 백미터가 넘는 복도는 펼쳐진 우산들의 시위현장이 되었다. 닭들은 더 큰 공간을 필요로 하다고 구구거렸고 집주인은 그저 달걀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이었다. 닭장 같은 원룸은 여전히 비좁았으나 우산만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서울특별빌라 주민들은 독했다. 악독한 집주인(집주인은 501호부터 505호를 자신의 집으로 쓰고 있었다. 물론 그 방들은 원룸이 아니었다.) 밑에서 같이 살아가려면 우산 혁명이 필요했다. 서울특별빌라의 사람들이 주로 적을 둔 학교인 서울특별대학교 커뮤니티에서는 익명으로 서울특별빌라의 집주인을 욕하는 글과 복도에 우산을 그만 전시해두고 좀 돌아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글들이 팽배하며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에 대항하여 매일매일 집주인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단체 문자였다. 집주인은 우리 모두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집주인은 일부러, 새벽에, 한 2-3시쯤 되는 시간에 단체로 문자를 발신하였다. 내용이라 함은 매번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공지의 ctrl+c, ctrl+v에 불과하였지만 서울특별빌라 주민의 단잠을 깨우기에 적절한 시간에 예약문자를 걸어놓는 집주인의 계략은 허구한 날 울려대는 재난문자가 되어 서울특별빌라의 계엄령을 상징하는 조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서울특별빌라’라는 키워드와 혹시 모르니 ‘서울특별’ 및 ‘ㅅㅇㅌㅂ’이라는 키워드까지 익명게시판에서 알림설정 해두었다. 무언가 역사적인 일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날부터 내 휴대폰은 불나듯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주된 알림 내용은 대강 이랬다. <아니 집 개같이 좁아서 우산 둘데 1도 없는거 뻔히 알면서 우산 집안에 두라는거 실화냐> <집주인 매번 새벽에 문자보내는거 차단했다 ㅁㅌㅊ> 등의 내용이 익명게시판을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익명게시판을 통하여 집단행동이 시작되었다. 무려 ‘월세 하루 늦게 보내기 운동’이 개시된 것이다. 짐작컨대, 하루하루 월세가 들어오는 것을 매번 회계장부에 기록하며 금화를 쓸어담는 것마냥 장부를 쓰다듬을 집주인의 성격상, 월세가 들어오는 것이 하루만 늦어져도 안색은 새파랗게 변할 것이며, 다음날 월세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안심하겠지만, 하루하루 매번 월세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화산이 터지기 직전처럼 새빨간 얼굴로 변하여 경찰을 부를까 말까를 고민하며, 휴대폰에 1,1,2를 누르겠지만 차마 전화기 모양 발신 버튼을 누르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약 일주일 동안 월세를 하루 늦게 받았던 집주인은 화가 물씬 났는지, 가끔 503호쯤의 위치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애꿎은 와이프에게 지르는 것이 목격(단어 선택이 적합하지는 않다. 추측일 뿐이다.) 되었다. 집주인이 항복할 것이 예정되었다. 민중은 승리하기 마련이었다. 프랑스 혁명처럼, 6월 항쟁처럼, 서울특별빌라에 민중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중순 어느날, 서울특별빌라에 전동 드라이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위이잉- 소리가 아침 7시부터 울려퍼지며 서울특별빌라 주민들의 아침 단잠을 깨웠다. 그동안 익명게시판에서 발생했던 소요에 대한 집주인의 시끄러운 복수였다. 서울특별빌라의 이름으로 익명게시판은 또 한번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단잠이 깨어 7시에 외출 준비를 하였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옷을 대충 챙겨 입었다. 수업은 9시에 시작되는 지루한 교양강의였지만, 아침 댓바람부터 부지런함을 강요받은 김에 아침 조깅을 하고 수업에 대충 나갈 요량으로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평소처럼 우산의 행렬을 피해 복도 끝을 외줄 타기하듯 나갈 생각이었지만, 막상 나와보니 진귀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철제 바(bar)였다. 길이는 2m쯤 되어 보이고 두께는 약 5cm 정도 되는 철제 바가 복도 옆면, 엘리베이터와 301호 사이에 설치되어있었다. 그리고 밤에 줄지어 존재감을 자랑하던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모두 조용히 접혀 철제 바에 걸려있었다. 시위가 진압되었다. 공유지의 비극이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된 순간을 나는 목도하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으려 내려감(▽) 버튼을 누를 때부터,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갈 때, 문이 닫히며 마침내 한 틈도 남겨두지 않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철제 바를 지켜보고 있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실제로 마주한 민주화 시위대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내 가슴은 무언지 모를 붉은 기운으로 번져갔다. 나는 이후 학교 운동장을 뛸 때도,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지루한 한국사 교양강의를 들을 때에도 서울특별빌라의 변혁에 대해 반추하였다. 7월 28일이었다.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기로 모두에게 선포된 날이었다.


평화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비극은 새로운 비극으로 비화되고, 세상 모든 약속과 화평은 깨지기 위하여 존재하였다. 나는 이 사실을 차츰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래, 한동안은 모든 것이 안온하였다. 마치 밖에선 비가 내리는데 단단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것처럼, 기나긴 평화의 느낌이 서울특별빌라의 공기를 감싸고 있었다.


철제 바에는 보통 10개에서 12개 사이의 우산이 걸려있었다. 노란색 꽃무늬의 화려한 우산부터 검은색 장우산까지, 투명한 비닐우산부터 골프장용 우산까지, 모든 우산이 총집합해 있었고, 서울특별빌라 주민들의 집은 각자 우산 한 개와 물이 뚝뚝 떨어질 1제곱미터 정도의 넓이 만큼 넓어졌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한층 더 행복해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마도 8월의 초입, 5일인가 6일에(정확한 날짜가 중요치는 않을 것이다.) 학교 익명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키워드 알림을 설정해 놓은 나는 그 글이 올라오고 댓글이 달리는 것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글의 제목이라 함은 <ㅅㅇㅌㅂ 빌라 우산 도둑 누구냐>였다. 글의 내용은 요컨대, 서울특별빌라의 우산 중 가장 화려한 노란 꽃무늬에 파랑 배경의 우산을 누군가 훔쳐갔는데, 그 우산은 무슨 무슨 브랜드의 고가 우산이며, 우산을 다시 철제 바에 되돌려 놓지 않으면 집주인에게 꼰질러서 CCTV를 돌려볼 것이며, 합의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소중한 우산을 공용 공간에 방치하는 것도, 사실은 우산에 그만한 돈을 들어가면서 과소비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모든 건 그저 ‘그러려니’라는 세상의 법칙을 통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다만 문제는 CCTV의 유무에 있었다. 물론 서울특별빌라 1층부터 5층까지의 복도에는 CCTV의 모양을 한 물체가 각 천장마다 달려있었다. 그렇지만 돈을 아낄 수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아끼고야 만다는 철칙을 가진 구두쇠(그래 우리 집주인 말이다.)의 성격상 그 CCTV가 실제로 무언가를 촬영하는 진짜 카메라인지 혹은 그저 모형일지는 모를 일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익명게시판의 게이(‘게’시판 ‘이’용자 말이다.) 들의 댓글이 달렸다. <CCTV 그거 구라다 ㅋㅋ> <그러게 그렇게 비싼 걸 왜 들고 다님> <나같으면 우산에 그 돈 안쓴다> 등의 신랄한 비판과 비꼼이 댓글 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며, 나는 인간의 철칙, ‘내 불행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것을 뇌 주름 사이사이에 넣어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타인의 불행이 온전한 타인의 불행으로 남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우산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점차 세 명이 되어가고 다섯 명이 되어갔다. 따라서 서울특별빌라의 1층에는 몸에서 뚝뚝 물을 흘려가며 뛰어 들어오는 사람들이 자주 목격되었다. 나는 한동안 그들이 흘린 물의 자국을 볼 때마다 불행의 정수와 같이 느껴져, 최대한 바닥의 물을 피하여 걸어 다녔다. 바이러스처럼 우산의 부재는 퍼져나갔다. 비상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우산의 결락, 빗물의 범람, 재난은 서울특별빌라를 덮쳐왔다. 서울특별빌라 닭장의 닭들은 모두 날개를 펼쳐 푸닥거리를 하고, 꼬끼오- 하고 울었다.


철제 바는 공허와 맞닿아있었다. 철제 바에는 이제 어떤 우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봄의 풍경처럼 형형색색의 우산 꽃이 피어있었던 철제 바는 이제 우산꽂이로써는 걸러져 거름이 되어갔다. 바는 지문 자국만 남아있었고, 꽃잎의 모든 잎새는 떨어져 갔다. 이제 긴 장마철을 버티기 위한 각자도생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힘없는 평화는 공허할 뿐이었고, 감시 없는 공공재는 모두 불태워져 재가 될 뿐이었다.


우산도둑은 과연 누구였을까? 익명게시판에서는 추측이 활개쳤다. 생일파티를 하던 413호가 우산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제보가 있었고, 집주인이 어디 한번 세입자들 엿먹어보라고 자신의 집에 우산을 전부 훔쳐다가 자신의 넓은 집안에 숨겼다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진짜 우산도둑이 누군지 본 적은 없었다. 우산도둑은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하였고, 서에 번쩍하였으니, 우산도둑을 실제로 목격한 자는, 장님 CCTV밖에는 없는 것이 자명하였다.


그렇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빗물이 묻은 꼬리는 물을 흘리기 마련이었다. 서울특별빌라는 인구수에 비례하는 인재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 한명이 우산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다. 그 방법이라 함은,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감시하며, 우산도둑 사건의 시발점, 노란 꽃무늬 우산을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탐정은 312호, 내 옆집의 여자였다. 312호 문고리에는 쿠키모양으로 장식이 있어 내 눈을 사로잡았는데,(아무래도 직접 만든 것만 같았다.) 평소 도수 높은 안경에 곱창 밴드로 묶은 긴 머리, 상의와 하의가 세트인 파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던 그녀는 가끔 복도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특유의 무심한 듯한 인사로 나를 알아봤다는 표시만 할 뿐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무심하고도 특이한 인사에 그녀에 대해 지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총총거리는 발걸음에서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심을 하였다.(내가 자의식 과잉인걸까?) 그런 그녀가 우산도둑을 찾아내기 위해, 평소 공부하던 CPA 책들도 전부 집어치운 채 노트북을 펼치고, 중고거래 사이트들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그런 그녀는 노란 꽂무늬 우산을 대한민국 중고거래 사이트 중 제일인 캐럿시장에서 발견하였고, 판매자와 메신저를 주고받다, 서울특별빌라와는 멀리 떨어진 왕십리역 8번 출구에서 중고거래를 하기로 약속을 잡고 만 것이었다. 기가 막히고 코도 막히는 기개를 지닌 여성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궁금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 사연이라 함은 이렇다.


밤 10시였다. 빗소리가 창밖에서 들리고 있었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붙잡고 보고 싶지도 않은 동영상들을 스와이프해가며 시간을 버리고 있었다.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가 보니 312호의 그녀가 문 밖에 서있었다, 얼굴은 발그레해진 채였다. 그리고 그녀는 손짓으로 나에게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봤고, 나는 집안 꼴이 더럽기는 하지만 괜찮다는 뜻을 손짓으로 전달하였다. 방음이 워낙에 되지 않아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서울특별빌라에서는 비밀 얘기를 하려면 손짓발짓 귓속말을 전부 동원해야 함은 생활의 지혜였다. 그녀와 나는 그렇지만 더욱 발전된 방법으로 비밀 얘기를 나눴다. 노트북을 펼치고 한글 파일을 열고 타자를 통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우산도둑 사건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우산도둑을 잡겠다는 그녀의 계획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고, 그리고 나에게 조력을 구한다는 타자를 치는 그녀의 손을 재빨랐고, 눈은 애교를 담아 물기 어려있었으며, ‘도와주세요 ㅋㅋㅋ’를 입력하는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하였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범인을 잡는다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도 우산도둑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어쩌면 그녀에 대해서도), 나는 왕십리역 8번 출구 근처 어딘가에서 그녀가 중고거래를 하는 것을 지켜봐 주기로 하였다.


8월의 중순이었다. 8.15, 광복절이었다. 우리모두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정부가 빨간날로 지정해준 날이었으며, 우리에게는 어쩌면 우산도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상징적인 날이 될 날이었다. 나는 왕십리역 8번 출구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아 그녀는 빈손으로 범인으로 추정되는 작자를 마주하러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주인공은 제일 늦게 자리에 도착하는 법, 역시나 범인은 약속 시간에 10분가량 늦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 또렷하게 범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황 모자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한 남자, 내가 복도를 지나치며 목례로 인사를 해왔던 남자, 생일파티에 나를 빼고 아주 재미나게 놀았던 그 남자, 그래 413호의 그 남자였다. 나는 413호의 남자가 어울리지도 않는 꽃무늬 우산을 들고 왕십리역에서 그녀와 마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손에서는 땀이 흘렀다, 저 범인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나는 그녀와 의논했었던 바를 실행하기로 하였다. 스마트폰을 들고, 식은 땀이 흐르는 손으로 지문인식을 몇 번 실패한 뒤에, 패턴을 풀고, 아맞다 패턴을 풀지않아도 카메라는 쓸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카메라를 켜서 그의 사진을 찍었다. 선명하게 413호 남자의 얼굴이 내 카메라에 찍혔고, 선연하게 찰칵 소리가 왕십리역의 시끄러움에 한 수저 얹을 때, 나는 413호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쌍꺼풀이 없지만 큰 눈, 오똑한 코, 인기가 많을 만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잘생김은 당황스러움으로 덮어져 그 빛을 잃게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 당신이 우산도둑이었군요. 이미 증거는 제 휴대폰에 있어요. 우산들을 다 어디다 둔 겁니까?


- 정의감에 사로 잡혀가지고는 별 음모를 다 꾸몄네, 더러운 자식들. 내가 우산도둑으로 보여?


- 네, 당신이 아니면 누가 우산을 훔쳤다는 거죠?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유구무언하였다. 그는 우산도둑이었다. 그는 공공의 이익에 무임승차한 도둑놈이었고, 천사의 얼굴로 무고한 우산을 꾀어낸 제비놈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해류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배처럼, 장마철에 땅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오는 빗방울처럼,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난 뒤 흥부의 회계장부처럼 순조로웠다는 이야기이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1,1,2를 누르고 전화 걸기 버튼을 누를까 말까 하며 옥신각신, 네 잘못 내 잘못을 그와 그녀와 내가 다투고 있을 때, 근처 1차선 도로에서 경찰차가 지나갔다. 정말 귀신같은 타이밍에 등장하는 드라마 속의 택시처럼, 경찰을 부르지 않아도 경찰이 온 것이다. 소설같은 이야기다. 나는 택시를 잡듯 손을 높게 들어 경찰차를 잡았고, 우리 모두는 어색하게 경찰차 뒷자석에 앉아, 비좁음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음을 얻으며, 서울특별빌라로 향하였다, 마치 해류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배처럼 말이다.(비유가 맘에 들어서 한번 더 써본다.) 그리고 나와 그녀는 경찰차 뒷자석에서 몰래 손을 잡았다. 범인을 가운데에 앉혀두고, (감히 나쁜놈에게 넓고 편안한 자리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의 등 뒤로, 마치 영화 ‘헤어질 결심’처럼 슬쩍 손을 잡고는, 얼굴만은 마주하지 않고 창 밖을 보며, 슬쩍 콧노래를 부르며 서울특별빌라에 도착했다.


413호는 인산인해였다, 아니, 우산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우산많네라고 해야 할 것만 같다. 그의 방에는 1층부터 5층까지 걸려있던 수많은 우산들이 있었다. 역시 괴도답게 편의점 비닐우산은 하나도 훔치지 않았으며, 골프장 우산, 명품 우산 등등의 우산만은 훔쳐 자신의 안목을 과시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중에 413호 자신의 우산은 어디 있었는가 하면,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문고리에 걸려있는 우산은 그의 센스를 반영하듯, 파도 무늬에 주황 배경이 있는 특이한 그림이 있었다. 나는 그 우산을 보고 역시 인싸는 다르구나 생각하였지만, 무언가 서슬퍼런 기운을 순간 뒤에서 느꼈다. 경찰이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울 때에,(센스있는 괴도에게 합격목걸이가 주어진 셈이다.) 그의 표정이 중력에 이끌려 조금씩 밑으로 떨어질 때에, 그녀가 웃음을 지으며 우산도둑을 잡은 것을 자축할 때에, 나는 보았다. 그녀가 등 뒤로 무언가를 숨긴 것을.


우연이었을까? 그 뒤에, 그의 우산이 쿠키 모양으로 잘려 조각나, 4층 엘리베이터부터 413호까지의 복도에 널려 있던 것은 말이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서 과자를 흩뿌리며 나아간 것처럼, 그의 우산조각을 따라가면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서울특별빌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전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인간의 존재란 얼마나 미욱하고도 작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 그 수많은 새로운 사건들과 이를 쫓을 수 밖에 없는 개미의 심정이란, 정말 참혹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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