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룡 Feb 18. 2024

20대에 다시 배우는 걸음마

뇌출혈 다리 재활기

어떤 사람들은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중환자실에서의 생활을 꼼꼼히도 기억하던데 나는 집중치료실에서의 어떤 순간부터 제대로 정신이 깨어난 것 같다. 그전까지의 기억은 아주 부분 부분이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내 몸의 일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건 일반병실에 가면서부터였다.


일반병실에서 다리와 발의 문제를 확실히 느끼게 된 순간은 소변줄을 떼고 처음 엄마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을 갔을 때였다. 일단 신발을 신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는데, 신발에 발을 넣는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 쉬운 슬리퍼였는데도 발이 신발에 제대로 들어갔는지 또는 신발에서 발이 빠져나와있을 때에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걷는 건 엄마의 부축을 받으면 어찌어찌 화장실 까지는 가능했지만 혼자 바지를 내려 변기에 앉고 뒤처리를 하고 또다시 혼자 일어나는 이 당연한 과정을 혼자 하진 못했다. 그냥 나는 기저귀와 소변줄이 아니라 변기에 볼일을 보는 것뿐, 모든 과정에서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건 매한가지였다.


병원 생활동안 여러 환자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과정을 혼자 해낼 수 없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꽤나 큰 절망과 슬픔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혼자 가보려다 낙상한 환자를 한번, 낙상할뻔한 환자를 한 번씩 본 적이 있다. 필자 또한 일주일정도 혼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수가 없었는데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일순 있지만 회복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절망감은 충분히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간병을 해주었는데 간혹 잠들어있는 엄마를 화장실이 가고 싶어 깨울 수밖에 없을 때, 너무나도 괴로웠다.(필자의 엄마는 병원에서 잠에 쉬이 들지를 못해 한번 깨면 다시 잠에 들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재활의 첫 시작은 변화한 자신의 몸상태를 확실히 인지하는 것이다. 사실 낙상의 가장 큰 원인도 이것이다. 아직도 내가 걸을 수 있다고, 내 몸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자 내딛는 순간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변화한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기란 매우 쉽지 않으나 이 과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그 고집으로 인해 재활이 어려워지게 된다. 특히나 연세가 있는 분들은 쉬이 인정하려 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다는 고집이 심해져 치료의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 까지도 다 힘들어지게 된다.


나의 경우 일단 가장 심한 문제는 감각의 떨어짐이었다. 애초에 신발을 제대로 신지도 못하니 그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처음 나의 상태를 수치로 표현하면 오른쪽이 100%라고 했을 때 왼쪽의 감각은 거의 10-20%까지 떨어져 있었다. 온도와 통각조차도 둔감하게 느꼈으니 말이다. 오른쪽에는 아플 정도의 자극을 왼쪽이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감각은 계속해서 자극을 주다 보면 느리지만 자연적으로 회복이 되기 때문에 일단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재활의학과로 전과하기 전 첫 재활치료를 받을 때 걸음의 모양새부터가 일단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마음속으로는 이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걷지만 실제론 지나가는 휠체어도 피하지 못하는 몸이 된 것이다. 무언가를 잡지 않고, 누군가가 잡아주지 않으면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었으며 처음 혼자 서있게 되었을 때 어찌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마치 내가 처음 걸음마를 뗐을 때의 그 뿌듯함과 경이로움을 20대에 들어 느끼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는 그 아이 스스로가 뿌듯함을 느낀다기보단 지켜보는 가족이 뿌듯함과 행복을 느끼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특별한 기분을 느꼈다는 생각에 황홀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재활"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풀어보면 다시 살아난다는 뜻인데 재활의 과정에서 느끼는 것과 꼭 맞는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면 움직일 순 있지만 감각의 문제 때문에 다리가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힘도 줄 수만 있는 것이지 이전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균형 감각도 많이 안 좋았고, 처음 보행연습을 했을 당시는 계속해서 몸이 왼편으로 기울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왼쪽을 향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건 걸음은 왼쪽을 향하나 왼쪽의 시야가 트이지 못해 장애물을 피할 수가 없었다. 치료사분이 틀어주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원래 걸음이 아주 느린 편인데 보행연습을 할 초기에는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고 조급함을 느껴서인지 오른쪽만 다급히 움직였다. 걸음이 왼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려면 일단 시선을 멀리 두고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시선을 멀리 두면 자연스럽게 걸음이 가운데로 맞춰지는데 이게 운전과 매우 흡사하다고 느꼈다. 초보운전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차선을 넘어가지 않을까 인데 이때도 앞 유리 너머로 시선을 멀리 두면 자연스럽게 차선을 맞출 수 있다. 나는 이 과정을 거쳐 운전을 단련했었고 보행연습도 이 과정을 거쳐 장애물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시야만 넓어져도 그다음은 연습하기가 쉬워진다. 계속해서 걸음의 방향이 정면을 향하게 연습해주다 보면 보행자체도 안정적이게 되고 병원에서는 전문적인 재활로 계속해서 다리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운동을 시켜주기 때문에 나는 재활치료 시간 외에도 하루 삼시세끼 밥을 먹고 나면 항상 엄마와 보행연습을 했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화장실도 혼자 다니게 되고 재활병원으로 전원 했을 때는 병실과 병동에서 느리지만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느리더라도 보행이 안정적으로 되고 난 후엔 간단하게 균형감을 키우는 운동을 시작하고 재활을 시작한 지 30일이 넘었을 땐 약하게 근력운동까지 할 수 있는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어서 와, 재활병원은 처음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